Self-counseling에서 얻은 최고의 육아팁

최근에 수강 중인 카운셀링 수업에서 삶의 고통스러웠던 순간에 대한 셀프 카운셀링 프로젝트를 과제로 받았다. 프로젝트 이름이 Suffering and Refuge 인데, 보자마자 1초의 망설임도 없이 생각난 주제가 있었다. 어쩌면 무난했다 생각할 수 있는 나의 30년 인생살이 중 그래도 ‘고통과 상처’를 논하자면 단연 생각나는 일이 였고 그 일을 주제로 삼는건 내겐 너무 당연한 일이였다. 그런데 문제가 있었다. 이 과제는 과거에 문제에 대해 기록하는 선에서 끝나는 것이 아닌 현재 나의 삶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고통에 대한 셀프 카운셀링이 주 목적이였다. 이런 맥락에서 내게 있었던 과거의 고통은 현재를 좌우 할만큼의 효능이 없었다. 이미 몇차례에 거쳐 치유된 상처였고 딱정이가 말라 떨여저 흉터조차 남아있지 않도록 주님께서 만져주셨기 때문에 굳이 과제를 위해 효능이 없는 고통을 쥐어짜낼 수는 없는 노릇이였다. 그럼 나는 고통이 없나? Suffering이라는 단어가 너무 무겁게 느껴져 무엇을 써야하나 고민 하던중 지금 현재 내가 마주하고 있는 ‘작은 고통’에 직면 해 보기로 했다.

내가 마주하고 있는 ‘작은 고통’은 다름 아닌 가끔씩 터져나오는 화(anger)였다. 화 안내는 사람이 세상 어디에 있고 잘 풀기만 하면 되지 화좀 내면 뭐가 그렇게 큰 문제인가? 오히려 화 안내고 쌓아두다 속병걸리는 거 보다 낫지! 라고 주윗사람들은 위로 해주었지만 그 안에는 나만 알 수 있는 심각성이 있고 화를 낼때는 늘 나만 아는 패턴이 있다.

나만 아는 심각성과 패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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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태어난 하율이가 벌써 돌이 되었다. 그리고 내 첫사랑 하루가 누나가 된지도 1년이 되었고 우리딸은 곧 만 3살이 되어간다. 어느 엄마가 안 그러겠냐만 우리 하루는 아침부터 밤까지 정말 사랑스럽고 예쁘고 내눈에는 최고다. 미국에 love you to the moon and back이라는 표현이 있는데 내 마음이 정말 그렇다. 달나라에 갔다가 다시 올만큼 그녀를 사랑한다. 하지만 참 이상하게도 내가 화나는 경우를 들여다 보면 항상 하루를 향하고 있고 그렇게 사랑스러운 딸인데도, 심지어 만 3살 조차도 안된 어린아이임에도 불구하고 하루의 어린아이 짓에 너그러히 넘어가지 못하는 나의 모습을 시시때때로 발견한다. 말이 좋아 ‘어린아이 짓’이지 이유를 알 수 없는 땡깡과 들어누움, 엄마가 지칠때까지 버팅기는 굉장한 고집과 말안들음 이런 행동들이다.

나의 화가 인내심을 뚫고 나올때는 주로 밤 시간이다. 그렇다고 밤에만 그렇다는건 아니다. 밤에 특히 심하고 동생 물때,운전할때, 말안들을때 엄마들이라면 상황은 굳이 말안해도 다 알꺼라 생각된다. 하지만 밤에는 이런 상황들이 보다 자주 일어난다. 하루종일 아이들과 씨름하다 이제 곧 육아의 쉼이 보일 무렵이자 나의 에너지와 인내심이 거의 바닥날 쯤 이다. 하루는 2살 넘어서 까지 밤에 최소 2번에서 3번 많게는 그 이상까지 깨어났다. (요즘에는 좀 덜해서 살것 같다) 게다가 아이 나이의 특성상 졸려 쌍커풀이 두툼하게 생길때 까지도 절대 안잘꺼라 버팅기며 잠드는것을 거부한다. 이런 상황이 반복될때 마다 나는 마음이 답답하고 그 흔한 ‘육퇴'(육아퇴근)가 나에게는 적용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화가난다. 게다가 아이들 따로 재우기에 실패한 우리가족은 결국 침대두개를 붙여 co sleep을 하고 있기 때문에 하루를 재우러 들어갈때면 이미 하율이는 다른 한쪽에서 잠들어 있는 상태이다. 다행히 하율이는 비교적 잘자서 재우는것도 아주 오래걸리지는 않고 밤 중에도 하루 한창때보다는 훨씬 덜깨지만 그러다 한번씩 하루 땡깡 부리는 소리에 하율이가 깨어나면 거기서 발생하는 좌절감과 화는 이루 말할 수 없다.

감사하게도 정말 감사하게도 머리로 몇번이고 생각했던 일을 저지르지는 않아 정말 다행이다. 하지만 하루가 자기직전 생때를 부리며 육퇴의 꿈을 묵살시켜 버릴때 심한경우 아이를 때리고 싶다는 생각도 해봤다. 여기서 때리고 싶다는건 그냥 단순히 엉덩이 까고 맴매 수준이 아니다. 훈육할때 엉덩이 맴매야 진작에 해봤다. 하지만 이런경우에는 그냥 생때이기 때문에 오히려 맴매는 더 큰 때를 유발할 뿐 들지 않았다. 화가 날때 나는 주로 말로 아이를 공격했다. 소리를 지르며. 지금 글을 쓰면서도 3살도 되지 않은 아이가 내가 화로 던진 이 말들을 어떻게 감당 할 수 있었을까 두려운 마음이 든다. 차라리 못알아 들었길 기억 못하길 기도하게 된다. 나는 주로 아이에게 협벽식의 어조로 ‘너 이렇게 하면 망태할아버지 한테 잡아가라 그럴꺼야!’ ‘너 그러면 혼자 옷장에 들어가서 타임아웃 시킬꺼야!’ 이렇게 잘못된 연결고리를 만들어 주었고 소리를 지르며 ‘너 정말 왜그러니!’ ‘왜 이렇게 엄마를 힘들게 하니!’ ‘좀자!!’ 하며 신경질을 부렸다. 신경질 부리지 말라고 내가 신경질을 부리며 화를 내고 모순의 연속이다.

일이 벌어지고 얼마나 오래걸리든 아이는 결국 잠에들고 그 후에는 후회가 쓰나미 처럼  몰려온다. 딸이 기댈 수 있는 가장 편한 자리가 되어주고 싶은 나의 품은 그 자격을 박탈당한 기분이 들고 좋은 엄마의 모든 조건이 나와는 상관없는 조항들로 느껴진다. 하루가 첫째딸이고 나 또한 첫째딸로 자랐기 때문에 누구보다도 그녀를 이해하고 받아주고 사랑해 주고 싶다 생각해 왔고 또 그럴 수 있을거라 자신 해 왔는데 조금도 너그럽지 못한 내 모습에 좌절하게 된다. 하루와 건강한 관계를 만들어가고 싶고 기초부터 탄탄히 하고 싶어서 아이를 제대로 알고 이해하고 싶어서 홈스쿨링도 생각 했었고 무엇보다도 가정교육이 가장 중요한거 같아 하며 수없이 스스로에게 외쳐왔는데 이렇게 한순간에 모순된 내 현실과 직면하는건 나에게도 전혀 쉬운일이 아니었다. 이런 내 모습을 마주하는게 쉽지 않은 사람은 나 말고도 한사람 더 있다. 내 남편, 나의 육아 동반자. 나도 남편이 아이들을 정당성 없이 혼내는 모습을 보면 기분이 나쁜데 남편도 똑같겠지. 그렇게 큰 잘못을 하지도 않은 아이에게 인내심이 바닥나 불같은 화로 반응하는 내 모습은 과연 어떻게 비추어질까 생각하면 오만가지 감정이 다 들어온다. 분명 나를 판단하고 있을꺼야, 우리 결혼을 후회하는 건 아닐까? 이런 걱정을 하다보면 어느새 또 그럼 왜 처음부터 육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아 모든 부담을 나 혼자 지게 하는데, 자기가 내 상황이라면 뭐 얼마나 더 잘할 수 있을건데 하면서 또 다른 화로 번진다. 굳이 이런 감정들을 남편한테 쏟아내지는 않지만 남편은 자연스레 멀게 느껴졌고 정서적으로 멀어짐을 느끼니 육체적인 관계도 하고 싶지 않았다. 내 이 화로 인해 우리가족 여러사람의 마음이 다치고 관계의 문이 닫혀지고 있었다.

화의 부작용은 그 다음날까지 이어진다. 잠에 일어난 아이는 우리 어른들과 같지 않아 전날밤 무슨일이 있었냐는 듯이 웃고 있다. 그런 아이를 바라보는 내 마음은 더 무너져 내리고 오늘은 정말 잘할께 엄마가 미안해하는 마음으로 (말로 굳이 하지 않았다 생각나게 할까봐) 아이를 안아준다. 하지만 아이의 행동은 바뀌지 않는다. 당연하지 아이니까. 그렇게 똑같은 상황을 꾸역꾸역 참아보며 하루하루를 버텨보지만 결국에는 또 모순된 행동을 저지르게 되고, 때로는 필요 이상으로 친절한 엄마와 분노 조절에 실패한 무서운 엄마 사이에서 아이가 혼돈에 빠지지 않을까 걱정을 하게 된다.

일이 이렇게 까지 우리 삶에 큰 영향을 주고 있는지는 사실 과제를 위해 써 내려 가다보니 알게 되었다. 우리 가정에만 있는 문제는 아닌거 같았고 내 화 때문에 아이들이 어둡고 정서적으로 비정상적인 반응을 보이는것도 아니고, 아이들 어렸을때 시행착오 없는 부모가 어디있고 그러면서 우리 어른들도 같이 커가는거지 하며 대수롭지 않게 여겨 왔던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이 문제를 과제의 주제로 주신데에는 이유가 있고 지금 내게는 보이지 않는 죄의 파급력이 존재함이 분명했다. 내 안에 있는 화를 그냥 이렇게 고삐 풀린체로 내버려두는건 하나님의 뜻이 아니었다.

나의 힐링구절: 고린도전서 13장

자려고 누웠는데 고린도전서 13장이 떠올랐다. 고린도전서 13장은 내게 있어 치유의 하나님을 아주 가까이서 경험할 수 있게 해준 고마운 성경구절이다. 구절들을 혼자 조용히 묵상 해 보다 한번 꺼내 읽어보자는 생각이 들어 캄캄한 방에서 핸드폰으로 성경앱을 틀어 읽어 보았다. 그런데 새롭지 않은 그 구절들 안에 전에는 느껴지지 않았던 새로운 은혜들이 마음속에 꿀송이 처럼 떨어져 왔다. 너무 유명한 구절들 이기 때문에 크리스챤이 아닌 분들도 노래를 통해 접해 봤을 수도 있을 사랑에 관한 구절들이 사랑이신 하나님의 성품 들로 다가왔다. 아래는 Love를 God으로 바꾸어 적어 보았다.

God is patient and kind. He does not envy or boast, He is not arrogant or rude. He does not insist on His own way. He is not irritable or resentful. He does not rejoice at wrongdoing, but rejoices with the truth. He bears all things, believes all things hopes all things and endures all things. He never ends.

(1Corinthian 13:4-8)

이 구절들을 읽는 순간 가장 먼저 떠오른건 나를 위한 예수님의 십자가 이었다.  겸손 하셨고 오래 참으셨고 그분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셨고 모든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뎌내신 그 십자가 사랑이 상한 내 마음을 덮었다. 하나님 사랑에는 조건이 없었다. 어떻게 발버둥 처도 잘 되지 않아 속상하고 좌절하고 상처입은 나의 마음에 먼저 치유의 손을 건내셨고 엄마로 부름 받기 전 하나님의 딸로 먼저 부르셨다고 말씀 해 주셨다.

하루와 나 사이에서 언제나 하루의 마음을 상하게 한 가해자는 나였고, 원인 제공을 한 3살 자리 아이를 탓 할 수 없었던 엄마는 스스로를 탓해 왔고, 이런 내가 너그럽게 아이를 받아주고 사랑해 줄 수 있는 방법을 알기전 내게도 치유가 필요한 줄을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내가 건강하지 않은데 내가 하는 사랑도 건강 할 수 없었다. 물론 가끔씩 아이들 없이 스타벅스에가서 커피 한 잔 마시면서 좋아하는 드라마도 보고 아주 가끔씩 남편이랑 둘이 시간 보내면서 스트레스도 풀고 그런 쉼 들도 내 삶의 활력을 찾아주고 한 숨돌리게 끔, 다시 에너지 충전도 하게끔 도와주지만 고린도전서13장을 통해 내게 주신 치유와 안식은 전혀 다른 차원 이었다. 위에도 썼듯이 내가 화를 내고 그로 인해 아이들을 걱정하는 마음이나 그에 대한 부작용이 나의 매일매일의 삶을 좌우 할만큼 우울하거나 아주 많이 지쳐 쉼을 필요로 한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아이의 손에 박힌 아주 작은 가시도 빨리 빼어내고 낫게 해주고 싶은 부모의 마음 처럼 십자가의 사랑도 내 안에 조금의 결핍도 용납할 수 없을만큼 날 사랑하고 있다는걸 다시금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하루 에게도 동일한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이 적용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딸아 너를 사랑해 아파할 필요 없어 너는 내 딸이야. 그리고 네가 기억 해야 할게 있어. 하루도 내 피값으로 산 내 딸이란다. 그 아이가 다치는걸 나도 원치 않아.”

고린도전서 13장으로 육아하기

마음의 쉼을 얻고 나니 본격적으로 질문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주님, 어떻게 하면 성경적으로 아이를 키워 낼 수 있을까요? 제 마음 다 아시잖아요. 저 정말 원하고 있는거 아시잖아요. 저 정말 좋은 엄마 이고 싶어요. 어떻하면 할 수 있을지 자세히 가르쳐주세요.” 인내하고, 받아주고, 인정 해 주고, 많이 안아주고, 사랑 해 주고,  물론 그렇게 키우고 싶고 항상 그러고 싶지만 실질적으로 삶에 적용하기에는 나의 약함이 너무 크고 방법들도 너무 추상적이다. 그 이상의 방향과 지침이 필요하다 느꼈다.

그때 내 마음속에 주신 음성은 이러했다. 그냥 계속해서 내 사랑을 배우고 느끼고 묵상하고 그 안에 거하라고. 고린도전서 13장을 통해 계속해서 사랑을 묵상하라는 마음이 들었고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사랑만이 정답이라 말씀하셨다. 나는 육아에 대한 대답을 원했지만 어느때 와같이 하나님은 사랑을 말씀 하셨고 하지만 그 대답이 전혀 진부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사실 그렇다. 육아에는 정답이 없다. 아이 마다 성향도 성격도 배움의 속도와 습득할 수 있는 양도 다 다르다. 어떤 아이는 아기를 좋아해 동생이 태어나도 많은 질투없이 곧잘 동생을 받아 줄 수 있는 방면 유난히 질투가 많은 아이는 엄마가 어떻게 애를 써도 결과에 크게 영향을 못미치는 거다. 어떤 아이는 칭찬받는 말로 사랑을 느끼고 어떤 아이는 아무리 말로 해줘도 안아 주고 뽀뽀 해 줘야 그게 사랑이구나 느낄 수 있고, 엄마 곁에서 백날 붙어 있어야 행복한 아이가 있고 자유롭게 뛰놀아야 이게 행복 이구나 느끼는 아이가 있기에 육아에는 정말 정답이 없다. 하지만 사랑에는 정답이 있다. 우리는 우리가 사라온 배경과 받아온 사랑에 의존되어 다른 누군가를 사랑하지만 인간이 인간을 통해 받은 사랑에는 분명 한계가 있고 완전 할 수 없음은 인정 할 수 밖에 없는 사실이다. 나타나는 사랑의 완전도가 떨어질 수록 완전한 사랑으로 창조된 인간은 자연스레 눈살을 찌뿌리며 ‘그게 무슨 사랑이냐’고 비난 하게되고 그래도 비교적 건강한 사랑을 받고 자라 갖고 있는 사랑의 모양이 완전 할 수록 우리는 그걸 정상적으로 여긴다. 예를 들어 어렸을 때 부터 아버지에게 심한 훈육을 받아온 아들이 있다 하자. 매를 맞을 때는 죽도록 고통스러웠을지 몰라도 훈육이 반복될 수록 고통과 아버지의 사랑에는 연결고리가 맺어질 수 있다. 물론 이 또한 사람의 성향과 어떤 인생을 살아 왔냐에 따라 충분히 다른 결과를 낳을 수 있겠지만 이 아들 본인이 아버지가 되었을때 그의 아이들에게 사랑의 매를 가할 가능성은 아주 높다. 그에게는 사랑의 매 하지만 그것이 아이가 감당할 수 있는 선을 벗어날 지라도 그는 그것을 사랑이라고 충분히 이야기 할 수 있다. 그 외에도 인간의 사랑이 왜 부족할 수 밖에 없는지에 대해서는 우리 스스로가 더 잘 알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고린도전서13장에 적힌 하나님의 사랑은 정답과 같이 다가왔다. 너무 완전해 범접할 수 없는 수준이다. 하지만 나의 질문에 주님은 그 완전한 사랑을 묵상하고 배우고 느끼며 그 사랑을 아이에게 실행 하라고 말씀 하신다. 그것이 the way라고 말씀 하신다.

이 범접할 수 없는 사랑을 실천 할 수 있게금 하는 비밀도 함께 말씀 해 주셨다. 바로 마지막 8절에 사랑의 마지막 특성으로 적힌 “Love never ends”였다. 다른 구절들과 같이 그날 나에게 이 구절은 “God never ends”로 다가왔고 이는 노아에게 주신 약속의 무지개 처럼 다가왔다. 하나님의 영원성, 하나님의 사랑의 영원성은 한 줄기에 빛과 같이 느껴진다. 너는 넘어질 수 있지만, 나의 사랑은 넘어질 수 없단다. 그냥 끝까지 내게 와서 배우고 내게 와서 구하렴 나머지는 내가 채울께. 더 간단하게는 “It’s okay, I got your back!” 내 귓가에 속삭이듯 말씀 해 주셨다. 그가 죽기까지 순종하신 그 십자가가 그 사랑이 얼마나 어려운건지 이미 아시기에, 내가 절대 할 수 없는것 임을 아시기에 그가 나를 위해 해주시겠다는 그 응원이 어찌나 위로가 되고 든든하게 느껴지던지. 그리고 내가 넘어져 또 하루의 마음을 속상하게 할때에도 (그렇다고 방심하겠다는건 아니지만) 나를 향한 그 사랑이 우리 하루도 동일하게 지켜주고 계심을 믿기로 했다. 결국 또 똑같은 결론이였다. Love Him, Trust Him and learn from H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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셀프 카운셀링, 그 후

난 여전히 화가 난다. 안 잔다고 땡깡놓고, 그 땡깡에 하율이가 깰까봐 조마조마하고, 차에 태우는 것도, 옷을 입히는 것도, 양치를 시키는 것도 어느 하나 말 해서 한번에 듣지를 않는다. 그리고 셀프카운셀링 후 얼마 지나지 않았는데 벌써 한번 넘어졌다. 하율이 돌날 준비 과정 중 이런저런 이슈로 마음이 좋지 않은데다 할일은 산더미인데 뭐 때문인지 고래고래 울면서 소리지르고 결국 먹던 바나나를 집어던지는 만행을 저지를 딸내미를 그냥 넘어가 주지 못했다. 돌 사진 찍기 직전이라 다같이 바쁜데 아이를 잡는 바람에 남편도 풍선에 헬륨 넣으러 가려고 신발 신다가 다시 벗고 와서 하루를 달래고 오히려 일이 더뎌졌다. 남편도 웃지 않았고 다들 내 눈치만 보는거 같았고 내가 바라던 둘째 아들 돌 잔치 준비 풍경이 전혀 아니었다. 어쨌든 저쨌든 기쁜날 손님도 맞이 해야하고 잘 넘어가고 하루도 달래주고 풀었지만 마음 한켠이 무거웠다. 그리고 말씀의 능력을 맛보기 위해서는 시시 때때로 말씀으로 돌아가 내 마음이 다른것들로 차기 전에 미리 사랑으로 채워 넣어야 되겠구나 다시 한번 생각해 본다.

그래도 그 후 몇가지 긍정적 변화들이 있다:

첫번째, 나의 사랑이 실패했을 때에도 이에 맞선 나의 태도는 확실히 바뀌었다. 사소한 육아의 넘어짐에도 어지러운 생각들이 들어오기 전 내가 향해야 할 방향이 어디인지 알게 되었다. 그분의 품은 언제나 완벽한 치유와 충전을 준다.

두번째, 화를 불어 일으키는 상황들에 대해 전보다는 조금 더 담대 해 진 것 같다. “You try to get me? bring it on.” 이런 느낌으로. 물론 말했다시피 넘어지기도 하지만 말이다.

세번째, 남편의 육아 참여에 대한 노력이 보이기 시작했고 고마움을 느낀다. 남편과 정서적으로 다시 가까워 졌다. 살면서 남편이 멀게 느껴질 때도 가깝게 느껴질 때도 있는 거겠지만 이번 셀프카운셀링 후 결과는 꽤나 리얼하다. 사실 그날도 하루를 달래는 모습에서 나를 판단하는 느낌이 있어 기분이 더 망쳐진 건 사실 이지만 좋은 자극과 적지않은 위로도 되었다. 내가 할 수 없을때 아빠의 품이 있는 하루가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마지막으로, 내일을 마주할 내 마음에 소망이 있다. 내일은 꼭 고린도전서 13장 묵상하고 하루를 시작해야지, 아니 지금 한번 더 묵상하고 잠들어야지 생각하며 내일 사랑으로 충전되어 있을 내 모습과 그렇게 마주할 하루의 미소에 행복 해 진다.

제 아내 민경이를 소개합니다.

이 글은 내 아내 민경이에 대한 글이다. 우리 엄마를 생각할때, 아빠를 생각할때, 형을 생각할때, 그 사람이 나한테 무엇을 줄 수 있는지, 어떻게 생겼는지, 우리 나한테 이 사람이 어떻게 대하는지 그런건 별로 생각해본적이 없다.  얼마전에 아내의 얼굴을 보는데 그런생각이 들더라. 가족이 됐구나. 어머니의 날을 맞아 (미국은 오늘이 Mother’s day 이다) 사랑하는 내 아내, 우리 아이의 엄마인 민경이에게 이 글을 바친다.

애둘델고 우리부모님과 통화하는 민경이. This is so her

1. 민경이의 성장배경

민경이는 중국 (연태) 에서 6년, 일본 (도쿄) 에서 1년, 미국 (실리콘밸리) 에서 12년, 한국 (서울) 에서 10년 정도 살았다. 그래서 진짜 4개 국어를 한다 (일본어는 조금 하는정도지만 나머진 진짜 발음부터 완벽하다.) 아래는 대략 간단한 연대기이다.

어렸을때
중국에서

 

중학교때
고등학교 졸업
대학생때
일본선교당시 민경
나랑 막 만났을 당시의 민경
  • 1988년 서울 출생
  • 1997-2002년 중국 연태 중국 인민학교에서 유일한 외국인으로 초등학교와 중학교 2년을 다님. 중국시골에서 엄청 뛰어다니고 잘 놀고 잘 삼. 그래서 아직도 자긴 어디 아시아 시골가서 살아도 좋다고 함. 달리기를 엄청해서 육상선수였다고,
  • 2003-2004년 한국에서 중3, 고1을 다님. 너무 재밌게 생활해서 절대 한국을 떠나지 않고 싶다고 생각함. 길거리 캐스팅이 한번 된적이 있다고 은근히 몇번 자랑했음.
  • 2004-2006년 미국 실리콘밸리로 이민와서 고등학교 다니며 영어도 안되고 인기도 없어지고 스트레스 받아서 살도찌고 삼중고를 겪으며 힘겹게 미국생활에 적응해감. 그나마 중국어가 되서 중국친구들과 친해지며 영어를 눈치밥으로 습득
  • 2007-2011년 Univesity of Irvine에 가서 처음 2년간은 거의 한국애들과 어울리지도 않고 완전 미국애들과 놀면서 너무 재밌게 파티도 하고 하며서 대학생활을 함. 그러다가 시련을 경험하고 예수님을 뜨겁게 영접하고 그 다음부턴 한국계 베델교회에서 붙어살다시피 하면서 대학생활함
  • 2011-2012년 일본 스나미 난 직후 1년간 일본 선교를 감. 현지 선교사님을 도와 영어 유치원을 만들고 이를 통해서 성도를 유치하는것을 도움. 정말 너무나 은혜롭고 행복했다고, 그리고 이 시간을 통해서 본인이 얼마나 많이 변화하고 깎였는지 두고두고 이야기했음. 내가 제일 수혜자라고.
  • 2013~ 졸업하고 실리콘밸리 코트라로 오게됨. 일하고 있는 와중에 왠 생각지도 않은 불한당 같은 나를 만나서 갑자기 인생행로가 완전 바뀌어 버림.

2. 민경이가 사랑하는 것들 (잘하는 것들)

1) 예수님: 카톡 프로필이 I love Jesus 인 그녀의 삶에서 예수님은 정말 살아있는 분이다. 신앙생활에도 ‘열심’이 중요한 내게는 예수님도 열심히 모시고 알아가야 할 존재라면, 민경이에게 예수님은 그냥 생각만 해도 가슴이 사묻히는, 너무나 좋고 너무나 사랑하고 너무나 편안하고 너무나 실제적인 그녀의 삶의 중심이다. 예수님과의 대화가 그렇게 자연스럽고 편안할 수 없어 보이고, 예수님을 사랑하고 섬기는게 안그래도 사랑하고 섬기기 좋아하는 그녀에게는 그 무엇보다도 큰 기쁨인게 느껴진다. 매주 예배끝나고 뿐 아니라 날마다의 큐티에서도, 항상 예수님과의 교제를 큐티일기에 직접 쓰고, 성경구절을 말씀으로 받고, 묵상하고 기도하고 교제하는 그 자연스러움이 느껴져서 질투날때도 종종있다. 결혼 초반, 너무나 혼자라도 교회에 가서 기도하고 싶어하고, 예배와 관련된 거라면 무엇이든 섬기고 싶어하고 항상 이런 것들을 우선시 여기는것 때문에 갈등이 되기도 했는데, 조금 살다보니 이제는 민경이 삶에서 역사하시는 예수님은 항상 내편이고 우리편이라는걸 알게되고 최대한 민경이가 더 예수님을 사랑할 수 있도록 배려해보려 하고 중보도 한다.

2) 가족: 난 여자가 이런 존재인줄 결혼하기 전에는 미처 몰랐다. 가족에 대해서 이렇게 세심하게 끔찍하게 생각하는구나. 우리가족에 대해서도 항상 생일이 언젠지, 한번더 통화하고 싶어하시지 않을지, 이런말을 듣고 싶어하시지 않을지, 그 세심함과 배려가 팍팍하게 아들만 있고 앞만보고 살아온 경상도 가족에겐 따스한 빛과 같았고 힐링 그 자체였다. 우리 부부 블로그 글에도 썼고 아래 동영상들에도 볼 수 있듯이 그냥 그녀는 가족을 사랑하고 그 사랑을 항상 베풀며 더 베풀기 위한 궁리를 한다. I’m forever indebt on the love she shared to my side of the family.

3) 가족2: 민경이는 진심으로 애들을 사랑한다. 물론 어느 엄마가 안 그러겠냐만, 원채 이타적인 민경이는 애들을 본인보다 진심으로 먼저 생각한다. 예를들면 이런 것들이었다.

Episode1:

산: 베비 (내가 민경이를 부를때 쓰는호칭), 우리 5년후에 어디서 어떻게 살고 있을까? 뭐 하고 싶어? 뭘 소망해? 뭘 이루고 싶어?

민경: 흠, 글쎄 재밌는 생각이네. 하루 하율이가 그때쯤이면 몇살몇살 됐겠네. 엄마의 말 한마디, 표현 하나가 다 애들한테 영향을 미친다는데 신경도 쓰이고 궁금해지고 걱정도 되고 그래.

Episode2:

산: 요새 힘들지? 애들보느라?

민경: 아냐 몸은 힘들어도 행복해. 얼마전에 문득 거울을 보는데 내가 정말 엄마가 됐구나가 느껴지더라고. 운동 한번 더하고, 좀더 꾸미고, 이런데 신경쓰기 보다는 하루 뭐 입히고 뭐 먹일까, 하율이 데리고 뭐하고 놀까 이런거를 늘 고민하고 했던게 그냥 뿌듯했어.

그래, 민경이는 진짜 그 흔한 산후 요가도 한번 안가고, 본인을 위해 돈 쓰고 시간 쓰고 하는거 정말 없이 아이들을 뒷바라지 하고 그 모든 시간과 에너지를 아이들에게 쏟았다. 내가 나서서, 우리 가족이 나서서 엄마 개인을 더 찾게 도와줘야 할것 같다.

그리고 진심으로 나를 사랑해준다. 부부상담을 하면서, 그녀의 나에 대한 사랑이 얼마나 깊은지 느낄 수 있었다. 아래 더 자세히써보겠다.

4) 교회: 예수님을 사랑하는 민경이는 예수님이 세우신, 예수님을 섬기는 교회도 사랑한다. 예배에 교회 사역에 동참하는 것을 너무나 기뻐하고 전혀 다른 사람을 위해서가 아니라 교회 그 자체를 위해서 섬긴다. 그게 찬양을 하는 것이든, 비디오를 찍는 것이든, 가서 애기를 보고 음식을 하는 것이든, 아니면 심지어는 아무도 보지 않는 예배당에 혼자가서 기도를 하고 오는 것이든. 그냐의 사랑의 방향이 너무나 순수한 것이 내게는 참 신선하고 잔잔한 감동이다.

5) 주위 사람들: 민경이는 정말 많은 사람들과 한꺼번에 마음을 열고 교제하는 나와는 달리 주위 소수의 사람들에게 진짜 마음을 열고 그 사람들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돌보려 한다. 누구를 만나도 이야기를 들어주고 맞춰주고 하지만 진짜 그녀가 정기적으로 연락하고 자기 이야기까지 선뜻 다 하는 사람은 한정되어 있다. 그리고 그 사람들을 진심으로 사랑한다.

She loves eating!

6) 요리와 음식: 민경이는 음식을 진짜 좋아한다. 이걸 결혼초반에는 잘 몰라서 몇번 싸우기도 하고 문제가 생기고 나서 확실히 깨달았다. 난 뭐 먹고 싶어? 이렇게 물어보면 별 생각이 없는데 민경이는 늘 생각이 있고, 늘 맛있는걸 하거나 먹는걸 너무나 좋아한다. 덕분에 난 참 맛있는거 많이 얻어먹었고, 이제는 식성도 많이 닮아가고 있다. 사람 초대하는 것도, 어떤 요리를 뚝딱해서 그 사람들에게 대접하는게 민경이의 아주 큰 즐거움의 한부분인 것이다. 언젠가 꼭 요식업을 한번 해보고 싶다는데, 뭐라도 하나 채려주고 싶다.

7) 음악, 미술, 운동 (예체능): 이건 사랑하는것 보다는 잘하는 것이라 하는게 맞으리라. 민경이가 나한테 웃으며 몇번 했던 말이 있다. 자긴 공부빼고는 잘한다고. 실제로 그녀는 노래도 잘하고, 피아노랑 기타도 거의 독학으로 배워서 예배때 반주하는데는 전혀 지장이 없을정도로 잘한다. 찬양인도 할때 보면 진짜 멋지다. 그림은 또 어떻게 그렇게 잘그리는지. 미술선생님 뺨칠 정도다. 운동도 특히 애기 낳고 못하고 하지만 나처럼 노력으로 하는게 아니라 그냥 잘하는 운동이 꽤 있다. 전에 민경이와 혼신의 힘을 다해 탁구를 치고 지고 나서 난 이제 탁구채를 잡지 않는다. (평소엔 져주는 아내도 운동할땐 진짜 안간힘을 다해 이기려고 한다. 그래 여보 당신이 이겼소)

3. 민경이는 어떤 사람인지

엄마랑 아들이랑 웃는게 똑같아요

1) 긍정적인 사람

  • 민경이는 정말 밝은 사람이다. 내가 결혼하고 크게 느낀것은 내가 그렇게까지 밝고 행복한 사람이 아닐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적어도 내 아내에 비해선). 무엇을 해도 잘해야 하고 다 알아봐야 하고 내가 잘했는지 확인하고 싶어하고 하는 완벽지향적인 나와는 달리 그녀는 결정도 쉽게쉽게 했고 남이 뭘 하든 별 상관도 안하고 그냥 그런저런 복잡한 생각을 별로 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처음엔 적응도 안되고 신기할 뿐이었다.) 꼭 뭔가 해야하는것도 없고 시간이 그냥 지나가도 그또한 그러려니 하며 행복했고 먹고싶은것만 제때 먹을 수 있다면 (Sorry honey. =)). 그렇지만 해야할 일은 집안일이든 애들 보는거든 본인 할일이든 가족과 남편 챙기는 거든 기쁨으로 팍팍 헤치웠다. 그리고 항상 기도했다. 기도하는 밝고 긍정적으로 맞이하는 아내. 아내는 집안의 해 라는 순 우리말이라는데 정말 밝고 긍정적인 아내이다.

2) 듣고 맞춰주는 사람

  • 나는 말하는게 편한 사람이지만 민경이는 듣는게 편한 사람이다. 그녀가 이야기를 듣는 중에 추임새와 눈맞춤이 얼마나 자주 등장하는지 가만히 보고 있으면 신기할 정도이다. 이게 내 이야기 들을때는 자연스럽게 느껴지다가 옆에있는 제 3자의 이야기를 듣는모습을 보면 “이거 좀 오버하는거 아니야” 싶을 정도로 계속 연신 “아 그렇구나, 아 ~~ 라는 거에요? 대단하다 아. 아. ~~” 이런식이다. (이러니 내가 듣는 모습이 얼마나 성에 안찰까.) 심지어 자기가 전혀 이해도 못하고 관심도 없고 들어도 바로 까먹고 마는 시아버지의 각종 시사 정치 이야기를 들을때도 그 성의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3) 섬기는 사람

  • 듣고 맞춰주는데서 나아가 민경이는 정말로 주위를 섬기는 사람이다. 처음 만났을 때 너무 인상적이 었던건 민경이가 수많은 교회 사람들을 태워주고 실어나르는 모습이었다. 집에서 멀리 떨어진 사람들을 그렇게 열성적으로 아침에 가서 싣고 오고, 끝까지 기다려서 데려다 주고, 나처럼 내 시간에 protective한 사람으로선 상상도 할 수 없는 모습이었다. 그래서 곧장 그녀는 이용당하기 (?, is often taken advantage of) 도 한다. 항상 인간관계에서 부탁하는것을 주저하지 않고 한꺼번에 너무나 많은 사람에게 부탁도 하고 의지도 하면서 끈임없이 그 선을 테스트하는 나같은 사람에게도, 그녀같이 섬기는 사람이 찾아오자 확실히 인간관계가 훨씬 더 균형을 갖게 됐다. 내가 다 벌려노면 민경이는 늘 뒤에서 그사람들 한명한명 챙겨줬다. 우렁각시.

4) 현명한 사람

  • 전에 내가 직장에서 힘든일이 있어서 집에 왔을때, 민경이는 그냥 맛있는 밥 차려주고 나 혼자 소파에서 시체처럼 누워있게 내버려 두고, 나중에 내가 기운을 좀 차리고 상의했을 때, 민경이는 침착하게 너무나 필요한 조언을 해줬다. 내가 오해하는건 어떤 부분인것 같고, 어떤 부분은 자연스럽게 지나갈지. 최근에 MBA reunion을 다녀와서 들뜬 나에게 민경이는 그걸 이해해주고 존중해 주면서도 내가 너무나 세상적인 사고방식으로 사람을 보거나 나 자신을 비춰보거나 하는것을 경계할 수 있게 조언해줬다. 그래 아내말 따라서 손해보는것 없다.

5) 기도하는 크리스천

  • 남편을 위해서, 시부모님을 위해서, 본인을 위해서도 정말 기도하는 아내를 본다. 무슨 문제가 있거나 없거나 항상 기도한다. 언젠가 진짜 아내가 나를 위해 기도하는게 느껴진 적이 있었다. 우리 부모님을 위해서도 우리 주위의 소중한 사람을 위해서도 항상 기도한다. 전에 한번 예배를 섬기기 전에 기도하는 모습을 보니 그녀의 기도는 진짜라는게 느껴졌고 더 자극이 됐었다. 난 애들한테 매일 기도해주는것도 너무 형식적인것 같아서 잘 못하는데 아내는 꾸준히 한다.

6) 남편을 세워주는 아내

우렁각시
  • 민경이는 정말로 나를 세워준다. 내가 일에서, professionally 고민하고 할때, 민경이는 늘 자신감을 세워주고 오빠는 정말 특별한 사람이야. 지금도 너무 잘하고 있고 앞으로도 정말 많이 쓰임받을거야 이렇게 위로해줬다. 처음 나를 만났을때도 그렇고 결혼할때도 그렇고 난 직업이 없었던 적도 많고, 결혼할땐 빚밖에 없었고, 지금도 그리 풍족하게 가족에게 경제적으로 공급하고 있지 못하는데로, 이런걸로 한번도 나에게 압박을 주거나 힘들어한 적도 없다. 그리고 내가 어디를 가든, 나를 따라 같이간다는 신뢰를 늘 심어준다. 어디를 가든 나를 믿고 따라와 준다는 나를 세워주는 아내. 사랑스럽지 않을수가 없다.
  • 또하나 너무나 감사한것은 늘 말을 너무 이쁘게 한다는 것이다. 집에서 애 둘 보면서 집안일도 별로 안돕고 옷 아무렇게나 벗어놓고 일이나 더 만드는 나를 보면서 잔소리가 엄청 나올텐데, 민경이는 항상 “오빠, 이것좀 도와줄 수 있어요? 미안한데 애기 옷좀 갖다줄래?” 이렇게 말을 너무 이쁘게 한다. 항상 부탁하고, 어떤 것은 나한테 허락을 구하기도 한다. (물론 그녀도 인간인 지라 아주 가끔 잔소리도 하지만 it rarely happens.)

7) 덤벙대는 사람

  • 민경이는 덤벙댄다. 잘 잊어버리고 (어떤때는 나보다 더) 완전 허당이다. 일단 핸드폰을 평소에 잘 안보고 있다. 배터리가 나가서 연락이 안되거나, 그냥 전화기가 어디있는지 모르는 경우가 너무나 많다. (전화해서 받으면 오히려 그게 이상할 정도로). 난 이게 좋다. 그녀의 덤벙댐 안에는 인간미가 너무 넘친다. 서로 실수 많이하고 그래도 서로 너무 스트레스 안주고 살아보려 하고 있다 우리.

8) 죽이 맞는 아내

우리 첫 신혼집의 포토존에서
  • 민경이와 죽이 잘 맞는다. 우리는 뭔가 하자는 것에는 대부분 일치하고, 하는 방법에 있어서는 서로를 돕고 보완하려 한다. (민경이가 워낙 나한테 맞춰줘서 내가 착각하는 걸수도). 결혼 초반에는 사람 초대를 참 많이했다 지금은 비록 처가집에 들어가서 살고 있고 애도 둘이라 많이 못하지만 우리 마음은 항상 사람 초대해서 나누는 것에 있었고 내가 늘 바랐던 대로 민경이는 집이 엄청 깨끗해야 한다든지, 번듯하게 산다든지 그런거 정말 아냥곳하지 않고 사람을 많이 초대했다. 첫째 낳고 임신중에 있을때도 계속 초대했을정도로.
  • 교회 목장모임을 하거나 사람을 만날때도 쿵짝이 맞음을 느낀다. 나는 말하길 좋아하고 민경이는 들어주고. 민경이가 찬양인도를 하면서 포문을 열고 내가 기도하고. 내가 좀 어떤때는 세게 쉐어링을 유도하면 민경이가 뒤에서 잘 사람들 마음 만져주고.

9) 효율적인 아내

  • 바깥나갈때 준비가 엄청빠름: 나 이거 너무 좋다. I highly highly value this. 하고싶은것 많고 욕심많은 나에게 아내의 준비가 엄청 빠르다는게 너무 큰 행복이고 감사이다. 화장도 전혀 안하고 치장도 안하는 그녀의 준비는 정말 초스피드다. (그렇다고 늘 약속시간을 맞추는건 아니니 착각은 금물)
  • 요리할때도 진짜 빠르다. 뚝딱뚝딱이다. 일을 어렵게 하지 않고 즐겁게 쉽게 빠르게 한다. Man~ I love this.

10) 최고의 며느리, 최고의 엄마

she is in control
  • 위에도 썼지만 민경이는 정말로 우리 부모님과 가족을 섬긴다. 거의 매일 전화하고, 애기 사진이나 우리 부모님이 좋아할만한 것을 보내고, 기도하고, 전화통화를 한번 해도 조금이라도 더 이야기하려고 하고, 무엇보다도 그런걸 의무감에서 하지 않고 사랑으로 한다. 부모님을 미국으로 초청해서 모시는 것도, 단칸방에 모셔서 같이 있고 시간보내고 하는거 조금도 싫어하지 않고 아주 선뜻 그렇게 해야 한다고 이야기하고 하나라도 더 즐거운일 만들어 드리려고 노력하고 생각한다. 그런거에 비해 난 진짜 장인장모님 생각 너무 안하는거 아닌지 돌아보게된다.
  • 위에도 썼지만 그녀는 최고의 엄마이다. 엄마로서 그녀의 마음가짐과 실제 느낀점이 궁금하시다면 그녀가 쓴 이 글 (엄마 이상형, 엄마 실전편) 을 읽어보시길 추천한다.

11) 섬기는 리더

  • 전에 찬양인도 과정에서 본 그녀의 리더십은 참 잔잔한 감동이었다. 그녀의 리더십은 나와는 너무 달랐다. 한명한명을 진심으로 사랑하면서 잘 들어주고 그 사람들이 이야기를 하고 더 참여하도록 유도하는 섬김의 리더십. 상생과 화합의 리더십이었다. 리더가 손해보고 희생하니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움직인다. 그리고 그녀는 꼭 agenda를 drive하지 않지만 결국 그 모든걸 화합해서 영광올리는 역할을 맡는다. 뒤에서. 그래서 더 멋있다.

4. 민경이에게 보내는 감사와 사랑과 응원

베비 화이팅!

개리 토마스의 부부학교 라는 책을 보면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여성이 얼마나 위대한지, 얼마나 남자로서 우리 모두가 꿈꾸는 그런 사람인지 보게 됐다. 그리고 내 아내가 얼마나 그 모습과 많이 닮아 있는지도 알게되고 더 감사했다.

민경이도 절대 완벽한 사람은 아니다. 그러나 그녀는 내게는 정말 과분한, 최고의 아내고, 내가 아는 너무나 멋진 최고의 여성이다. 앞으로 그녀가 삶에서 드러낼 예수님의 모습, 그녀의 사역과 삶을 너무나 응원한다. (덕행 있는 여자가 많으나 그대는 모든 여자보다 뛰어나다 하느니라. 고운 것도 거짓되고 아름다운 것도 헛되나 오직 여호와를 경외하는 여자는 칭찬을 받을 것이라. 잠언 31:30-31)

부록: Westminster 신학대학 부부상담 course 등록할때 아내에 대한 나의 추천사

아내가 Westminster Biblical Marriage Counseling course에 등록할 때 나한테 아내에 대한 추천서 요청이 왔다. 그래서 아래와 같은 요지로 썼던 것 같다.

  • 내가 민경이를 처음 만났을 때 난 막 크리스천이 된 2개월짜리 크리스천 걸음마였다. 그녀를 만나고 그녀와 함께 살면서 예수님을 경외하는 한 사람의 삶에서 예수님이 얼마나 아름답게 역사하실 수 있는지를 너무나 밀접하게 경험했다. 그녀는 나와 우리가족에게 예수님의 빛을 전달해준 참 크리스천이다. 그녀가 얼마나 기도하고 준비하며 이 과정에 임하고 있는지 남편으로서 그녀의 가장 큰 팬으로서 내가 보낼 수 있는 최고의 지지와 응원을 약속한다.

부록2: 과거 내 이상향 포스팅 (너무나 닮은게 많다)

부록3: 아내가 사랑스러운 20가지 이유 (2015년 아버지학교때)

모습

  • 웃는 얼굴이 귀엽다. 코를 찡긋하면서 킁킁 거릴때 완전 웃긴다 하하
  • 다리가 좀 길다. 질투날정도로. 각선미가 장난이 아니다.
  • 완전 내스타일이다. 특히 귀가 쫑긋하다. 쌍커풀 없는 눈이랑 예쁜 피부도 그렇고.
  • 발가락이 길고 자유자재로 움직여진다. 꼬집히면 디게 아프다.
  • 눈이 무지개가 된다 웃을때

마음

  • 성령의 열매들 – 참 많이 가지고 있다. 사랑, 기쁨, 평화, 인내, 친절, 선의, 진실, 온유, 그리고 절제
  • 하나님을 경외한다. She pray and worship. Deep in her heart, she is being loved and she is strong.
  • 마음이 따뜻하다. 정말 근본적으로 따뜻하다. 누군가가 도움요청하는걸 꺼리기는 커녕 기다리고 감사해한다.
  • 힘들거나 짜증나도 웃거나 진짜 힘들면 울거나. 그걸 남에게 분출하지 않는다.
  • 가족을 사랑한다. 기존의 가족이나 새로 생긴 가족이나 모두. 우리 부모님을 이렇게 사랑할 수 있는지 정말 신기할정도로.

  • 나를 귀여워해 준다. 정말 사랑해준다.
  • 나를 나무라지 않는다. 진짜 진짜 진짜 안되겠으면 부탁한다 잔소리 안한다.
  • 나를 존경해준다. 따라준다. 뭘 해도 나한테 물어봐준다. 세워준다.
  • 나한테 질투하는게 귀엽다.
  • 살면서 누군가와 이렇게 친했나 싶다…같이 장난치고 노는게 재밌다.

Things in life

  • 요리를 잘한다. 진짜. 그리고 좋아한다.
  • 빠르다. 준비도 빠르고 요리도 빠르고 샤워도 빠르고 잠도 잘자고
  • 노래를 잘한다 기타도 치고 피아노도 치고 운동도 잘하고 그림도 잘그린다. 완전 예체능이다 민경이는.
  • 비디오를 잘만든다. 말도 잘한다. 몇개국어를 한다.
  • 애들을 잘다룬다. 애들이랑 참 잘놀아준다.

결혼 3년차 부부 상담을 마치며 – 남자편

2017년 다양한 일이 있었지만 부부상담을 받은것 또한 절대로 잊을 수 없는 하이라이트 중 하나이다. 모든 부부의 관심사일 수 있는 (결혼하지 않은 사람들 까지도) 주제인 만큼 최대한 솔직히 잘 정리해서 나눠보고 싶다. 부족함이 많겠지만 일단 시도해본다. 하나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이건 우리 부부관계의 인스타그램 반대편 버전이란 거다. 인스타그램에는 우리가족의 행복했을 때의,  즐거운 일상만 올리게 된다면, 부부상담 내용은 우리 부부의 아픈 부분, 상처 부위를 주로 드러내게 된다.  상처를 내버려 두면 그당시는 괜찮을지 몰라도 곪을 수 있으므로 아프더라도 도려내야 하듯이, 부부 상담은 나의 민낯을 보게 하고 상처를 후벼파는 아픔도 있었던 그런 과정이었다. (우리 평소엔 잘 지내니 너무 걱정 안해주셔도 됩니다 ^^)

1. 들어가며

약 2주간의 상당히 길었던 한국 출장의 막바지 즈음이었다. 요 며칠 뭔가 통화할 때 마다 석연찮은 감을 풍기던 민경이가 이야기했다.

“오빠, 요새 오빠와의 관계에서 힘든게 자꾸 있었는데 사모님과 이야기해보니 글로 좀 써보라고 하더라고. 그래서 좀 써볼려고.”

이게 갑자기 또 무슨 청천벽력같은 소리인가. 전혀 무슨 일인지 모르겠었지만 나는 침착하게 물었다. “무슨소리야? 조금만 더 이야기해줘. 힘든일 있었어? 어떤게 힘들었던 거야? I’d love to understand. Please share. ”

“아, 이게 생각을 좀더 정리해서 글로 써볼려고 했는데. 그냥 오빠한테 내가 별로 중요한거 같지가 않아. 오빠는 지금 정신없이 돌아다니고 뭐 한국 정치나 경제나 관심도 많고 그 생각으로 꽉차 있는거 같은데, 난 그런거 와닿지도 않고. 오빠한테는 그냥 내가 그런 다양한 중요한 것들중에 하나인거 같아. 하루가 오빠 2주나 못봤는데도 괜찮은거 같고 아빠를 거의 찾지도 않는게 참 화가나고 frustrating 한 부분이야. 오빠도 열심히 하고 있다는거 알아. 내 문제일 수 있다는 것도 알아. 근데 좀 그래. 우리끼리 따로 사는것도 아니고 하니까 오빠랑 이야기할 시간도 계속 없었고, 계속 좀 그런게 있었는데 출장가 있으니까 더 그런거 같아. 오빠는 오빠만의 세계를 키우고 있는거 같고.”

일단은 민경이에게 “힘들었구나. 그런거 아니야. 내가 빨리 돌아갈게. 가서 우리끼리 좀 시간도 보내고 그러자. 우리 아무래도 교감이 너무 부족했던것 같아. 육체적인 교감에서부터 좀 시작해봐야겠어 ㅋㅋ” 뭐 이렇게 살짝 농담도 해가며 아내를 위로해주려 했다. 출근시간중에 버스에서, 민경이는 애기보면서 그렇게 우리는 짧게 통화를 마쳤다.

머릿 속에 다양한 생각이 들더라. (이하는 내스스로에 대한 변론들. 다 써놓고 보니 진짜 내 입장만 생각한거라 상당히 민망하다.) 왜 또 이러나. 하루가 나를 별로 안 찾는다는게 물론 나도 섭섭했지만 난 충분히 애들과 시간 많이 보내려고 노력하고 있고 (거의 매일 집에가서 저녁먹고 주말에도 주로 가족과 있고) 하루 너무너무 사랑하고 같이 잘 놀고 그런다. 물론 엄마 입장에서는 전혀 충분치 않아 보일수 있겠지만 그게 왜 화가날 일이고 그게 왜 내 잘못인 것 처럼 이야기하는건지. 한편으론 섭섭했지만 또 한편으론 그럴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엄마 입장에서, 여자 입장에서 그럴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내가 진짜 받아들이기 어려웠던건 아내가 나를 나 자체로 인정해주고 받아들여주지 않는것 같은 느낌이었다. 내가 한국정치나 경제나 역사에 관심갖는것 자체를 싫어하고 부담스러워하는것 처럼 느껴졌다. 내가 이걸 우상숭배하듯이 여기에 빠져서 가정을 돌보지 않는것도 아니고. 내가 이걸 아내에게 강요하는 것도 아닌데. 내가 게임이나 TV쇼나 기타 그냥 오락물에 빠져있는 것도 아닌데. 물론 지나쳐서는 안된다고 경계하지만 왜 이게 응원(appreciate) 받지는 못할망정 아내가 싫어해야 할 부분이란 말인가. 역사를 보면 민족과 역사에 큰 변화를 만들어냈던 사람들이 있다 (안다. 스스로 변론을 만들다 보니 별 생각이 다들더라). 마틴루터킹 목사, 넬슨만델라, 수많은 기업가와 정치인들, 이런 사람들의 아내가 늘 이들의 관심사를 다 공유했을까. 난 이들보다 가정을 등한시 하고 있는가. 난 시간을 두고 부부가 같이 관심사를 맞춰가고, 아내가 관심있는 것도 더 응원해주고 (그러지 못했을때도 많지만) 나도 관심을 갖고, 그렇게 많이 공유하면서 가고 싶고 그렇게 해오려 노력해가고 싶은데. 내가 교회나 신앙 외적인 것에 관심을 갖는걸 아내가 별로 달가워 하지 않는다고 느껴지자 많이 섭섭했다. 나를 어떤 그냥 교회에만 착실히 나가고 정치/민족 이런데는 별로 관심안가지면서 애들 교육에 전심으로 늘 생각하는 그런 사람이기를 바라는, 그런 강요 받는것같은 느낌이었다. 힘 빠지고 마음이 답답하고 속상하고 그랬다.

그리고 나자 문득 내게 취할수 있는 행동들에 몇가지 선택지가 있다는게 깨달아 졌다. (마치 인생극장처럼) Option1: 난 어떻게든 아내 입장에서 더 생각해보려 노력할수도 있었다. 아내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언제나 그렇듯이 이해하지 못할게 하나도 없을 터였다. (그리고 내가 회개하고 용서를 구할부분이 더 나올가능성이 농후하다.) 어떻게든 아내를 더 사랑하고 챙기도록 노력하는 옵션이 분명 있는게 느껴졌다. Option2: 그러나 한편으로는 열심히 일하고 눈코뜰새 없이 지내고 있는데 또 힘빠지는 이야기하고 원망을 받는것 같아서 속상하고 억울했다. 그러면서 그냥 상대하지 않고 외면하는 옵션도 생각났다. 그러자더 삐뚤어지고 싶어졌다. 내 마음대로 욕구충족을 하고 싶어졌다. 내 이야기 더 잘 들어주고 나랑 더 관심사가 잘 맞는 사람과 더 이야기하고, 아니면 그냥 삐뚤어져서 인터넷으로 자극적인거나 보거나 술한잔 하거나 일탈이 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다행히, 난 머리로는 Option1을 선택해야 한다는걸 알수 있었다. 그래서 어떻게든 참고 (그날밤이 참 힘들었다) 다음날 아침기도 가서 아내를 더 이해하고 사랑하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절대로 늘 이런선택만 하는건 아니다 ^^) 좀 그러고 나자 조금은 나아졌고, 출장갔다 와서 아내랑 이야기하고는 오해도 많이 풀렸다. 아내는 항상 이것저것 바쁘고 관심있는 것 많으면서 자기와의 관계와 가정에서는 그만한 에너지를 내지않는 남편에게 거리감을 느끼고 있었다. 거기다 발렌타인 데이때 문자한번 없고 (남자들이여, 나같은 우를 범하지 말고 중요한 날을 잘 챙기시길 축원드립니다), 잡아논 물고기라고 전혀 자기를 챙기지 않고, 신나게 이사람 저사람 만나면서 이것도 재밌다고 하고 북한 문제가 어떻다고 하고 하는 남편한테 속상해(?) 있었던 거였다. 애둘 보기도 너무 힘들고 한데 (진짜 애둘 보는것만 해도 아내는 she has all the rights to say), 발렌타인 데이에도 , 설에도, 휴일에도, 자기 생일에도 다 없는 남편이 왜 안 야속하겠는가. 거기다가 소셜 미디어에 이사람 저사람 발렌타이 데이 포스팅을 올리고 하니 더 얄미워 졌고 남편은 그런맘 하나도 모르고 뭐가 재밌고 누굴 만나고, 신나 있는건 알겠는데 공유도 잘 안되고, 그래서 미워지고 맘에 없는 소리까지 나왔던거 같다. 다 사랑을 충분히 주지 않고 표현 안한 내 잘못인데 그것도 모르고. 아주 사소한 배려없음에서 부터 시작한 거였는데 얼마든지 문제는 커질 수 있었다.

부부상담 이야기를 아래 구체적으로 써보겠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우리 부부간에 물고기를 잡는법을 배운것 같다. 적어도 큰 방향에서는. 우리 부부에게, 나에겐 어떤 특성이 있고 어떤 문제가 있고, 그래서 물고기를 잡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그런데 이번일을 계기로 다시한번 느낀건 “아, 내가 물고기 잡는법을 몰라서가 아니라 알아도 잡기 싫을때가 있구나.” 였다. 이게 그냥 그렇게 마음이 팍 내키지 않는게 느껴졌다. 내안에 “내가” 너무 많기 때문이었다. ‘나’는 이만큼 하고 있는데. ‘나’는 남들처럼 이상한 취미도 하나 없이 성실하게 사는데. ‘내’가 얼마나 집에 꼬박꼬박 들어가고 애들을 좋아하는데. ‘내’가 얼마나 아내가 하자고 하는거 존중하고 응원해주려 하는데 (물론 아내 입장에서 들으면 기가찰 노릇일수 있지만 적어도 이당시 내 머릿속에는 이런생각이 들었다.). 머릿속에 온통 ‘내’ 생각이었다.

아내를 사랑하는거, 아내를 내몸보다 더 사랑하는거, 이게 평소엔 한다고 생각하는데 이런 상황이 있을 때마다 참 쉽지가 않음을 느낀다. 내 안에는 그 저 깊숙한 곳에는 이기심과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있지 희생적인 ‘사랑’이 없음을 느낀다. 아래는 우리의 부부상담 이야기이고, 내가 그 “사랑” 이 무엇인지 기도하고 응답받은 이야기이다. 아내가 느낀 부분까지 정리해서 나중에 남자편/여자편 합쳐서 부부블로그 올려보고 싶다.

2. 어떻게 하게 됐고 어떤 식으로 진행됐는지

부부상담을 받게 되기까지의 이야기는  에 적어봤다. 웨스트민스터 (Westminster) 신학대학에서 부부상담을 공부하시고 실제로 라이센스도 따고 프랙티스 하고 계신 담당목사님이 계신 덕분에 우리는 돈한푼 들이지 않고 부부상담을 받을 수 있었다. 정말 행운이다. 보통은 약 3달정도의 과정으로 끝난다고 하는데 우리는 중간에 출장, 여행, 하율이 출산 등이 겹쳐서 거의 6~7개월간 했다. 총 약 10차례 정도 상담한 것 같다.

기본적인 포맷은 미리 숙제를 상담자에게 제출하고 약 1시간 남짓 상담을 받고 다시 숙제를 하는 방식이었다. 아래는 주요 숙제와 교제 목록, 그리고 티피컬한 세션 예이다. 신앙에 바탕을 둔 상담이다 보니 일반 카운셀링과는 달리 항상 근간 (foundation)은 성경 이었고 말씀과 기도가 항상 있었다. 맨 뒷부분 참고 목록에 제출한 숙제 몇개를 첨부한다.

숙제

  • 매주숙제: Coffee break – 약 30분정도 서로 5분씩 돌아가며 부부간에 중요한 문제에 대해서 나눠보기. 한명이 이야기할 때 다른 한명은 듣고 공감하고 상대가 했던 말을 바꿔서 표현하여 잘 들었다는것을 이해시키는 것 만을 할 수 있음
  • 매주 바뀌었던 숙제
    • 내가 예상한 결혼생활과 다른점 정리해보기
    • 순종 (submission)의 의미. Empathy 등 묵상해보기
    • 로마서/야고보서 등 성경말씀 묵상해보기
  • 기본 교제 1 chapter씩 읽고 느낀점 쓰기 (총 2권)

세션

상담자: 한주간 잘 지냈어요? 기도하고 시작하시죠. (기도). 보내주신 숙제는 잘 읽었어요. 형제님부터 커피브레이크 어떠셨는지 나눠주시겠어요?

산: 블라블라~. 그래서 이런걸 느꼈고 그러나 이부분은 좀 이해되지 않았고 사실 잘 나눠보려 했는데 생각보다 잘 되지 않았어요.

민경: 그게 저도 잘 나눠보려 했는데 서로 스트레스 받으니까 자꾸 충돌이 생겨서 더 못하겠더라고요. 전 이런걸 느꼈어요.

상담자: 네 자매님, 저도 잘 읽었어요. 이런 부분이 많이 공감됐어요. 이 부분은 왜 그렇게 생각하셨는지 한번 나눠주시겠어요?

이하 생략

3. 무엇을 느꼈는지

아래 부부상담을 마치며 내가 느낀 주요 내용들을 적어본다.

1) 우리사이의 문제가 뭔지

부부관계는 어떤 면에서는 지뢰밭을 지나가는 것 같다. 삼단논법으로 1. 삶은 어렵다 (또는 고난이다) 2. 부부관계는 (또는 결혼은) 삶이다 3. 따라서 결혼은 어렵다. 이렇게 이야기하기도 하더라. 난 종종 부부사이가 쉽지 않음을 강조하면서 이야기하기도 했다.

삶에서 문제가 생길게 얼마나 많아. 재정문제, 양가 집안문제, 성관계 문제, 육아관련 문제, 성격차이 문제, 건강, 기타 등등. 이런거에서 하나만 잘못 어긋나도 마치 지뢰를 밟는 것 처럼 크게 터질 수 있는게 부부관계고 결혼이 아닐까. 난 그렇게 생각해보기도 해.

우리는 다행히 건강하고, 양가집안문제 (양쪽 부모님이 너무 감사하고, 민경이가 너무나 잘해줘서), 재정문제 (감사하게도 밥 안굶고 살고 있고 둘다 이쪽에 좀 무관심하고 비현실적이어서) 이런게 크지는 않았다. 우리의 주 문제는 우리의 다름에서, 생각하는게 다르고 바라는게 다르고, 표현하는게 다름에서 왔다.

나는 항상 앞만 보며 사는 사람이고 빡빡하게 사는 사람이다. 돈도 시간도 늘 아끼고, 챙기고 만날 사람도 많고, 읽을 책도 많고, 할일도 많다. 민경이는 순간순간에 충실하며 주위에 잘하고 잘 들어주고 편안하게 여유를 즐길줄도 좀 아는 사람이다. 오늘 뭘 먹을지가 중요하고, 한번씩 보드게임이나 재밌는것도 하고싶고, 그냥 생각없이 계획없이 있고 싶기도 하다. 이런데서 오는 차이에, 내가 너무나 차갑게, 감정없는 Dry한 표정이나 말투로 대할때, 다 헤아리지 못하고 이야기할 때 민경이는 상처를 받고, 난 한번씩 민경이가 하는 말이나 전혀 예상치 못한데서 나오는 아내의 불만에 상처를 받거나 마음을 닫는다. 민경이는 나와의 다름에 힘들어했고 (또는 나의 배려심이 안느껴지는 말이나 행동을 다름으로 느끼며 힘들어 했고), 난 나를 힘들어하는 그 사실 자체를 힘들어 했다.

이게 주요 문제였지만 사소한 문제들이 계속 있었다. (홍정빈/박현숙 이분은 책에서 이걸 부부관계를 갈라 놓는 포도원의 여우 라고 했다.) 각자가 가진 생각과 성장 배경때문에 특정 행동이나 말이나, 또는 서로 말은 안했지만 과거의 어떤 일들이 서로의 마음에 상처를 주고 부부 관계를 좀먹고 있었다. 몇가지는 아래에 커피 브레이크를 하면서 잡았고, 앞으로 계속 발견해서 잡아 나가야 하리라.

2) 사소한 데서부터 부부의 신뢰가 금이갈 수 있구나

초반 세션 몇번, 커피브레이크 하면서 평소에 잘 안하던 양가 집안 이야기, 돈 사용 이야기, 성관계 이야기 이런걸 했었다.

산: 근데 말야, 이게 말로 하긴 좀 그런데, 사실 난 요새 우리 부부관계가 너무 없는거 같아. ~~

민경: 그게 마음이 잘 안생겨. 이게 나만의 문제는 아닌거 같아. 애기보느라 나 몸도 너무 지치고. 이게 그러고 정서적 교감이 먼저 있어야지~~

산: 그래. 다 맞는 말이지. 근데 난 부부관계까지는 아니더라도 그냥 침대에서 살이 좀 닿으면 좋겠어 ~~

민경: 그래? 난 몸에 뭐가 닿으면 잠이 잘 안와서. 내가 이게 뭐가 싫어서 그런건 아니야 ㅠ 근데 오빠는 이런거 싫어한거 아니었어?

산: 그랬구나. 아냐 나 그런거 완전 좋아하는데?? ~~

이하는 18금을 넘어서 너무 개인적인 이야기라 생략

이런걸 해보면서 정말 우리가 2년넘게 살을 맡대고 살았지만 이런 대화를 충분히 안했구나. 서로 뭐가 좋고 힘든건지 알면 오해도 많이 풀릴텐데 그냥 서로 소통 자체를 시도하지 않았구나. 이런걸 알게됐다. 재정 사용에 관해서도 내가 잘못했던 것도 알게되고 서로 오해가 풀리는 시간들이 있었다. 이런것들이 서로에 대한 신뢰를 좀먹고 부부사이를 좀먹고 있었다. 몇 개 오랫동안  박힌 말뚝 같은걸 뽑아내자 갑자기 서로의 사이에 뭔가 뻥뚤리는 게 느껴졌다.

3) Let her speak, Let me speak

커피브레이크의 핵심은 상대방의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주는 것이고 공감해주는 것이었다. 상대방이 나의 이야기를 끝까지 듣고 내 마음을 들어줬다는 것 자체가 힐링이 된다. 꼭 그렇다고 상대방이 나를 다 이해해준다거나 문제가 풀리는건 아니고 오히려 안그럴때가 상당히 많지만, 내가 내 입장조차 이야기 못하고 안하고 마음을 닫게 되는것과는 하늘과 땅 차이었다.

아내가 오픈업을 하기 시작하면서, 아내는 나와의 다름도 힘들었지만 결국 나의 차가운 태도, 자신을 별로 생각하고 사랑하는것 같지 않은 나의 ‘함께 있을 때 크게 기뻐하지 않는’ 모습이 가장 힘든 부분이란걸 나눴다. 내가 때때로 매우 사무적인 태도로 전화를 받고, 일이나 뭔가에 집중해서 아내 이야기를 잘 안듣고 있거나 들을때 딴짓하고 있으면 민경이는 그걸 참 많이 힘들어했다. 내게 안좋은 의도가 있었던건 아니지만 그게 민경이에겐 아주 큰 아픔으로, 그리고 배려없고 절대 이해하기 어려운 행동으로 다가왔다는걸 알게 됐다. 부부 상담을 하면서 같이 오픈업 하자 이런 것들을 알게 되는게 참 유익했다.

한편으로는 그리고 나서 아내가 내게 한 말들이나 일련의 일들이 나의 마음을 닫게 만든 것에 대해서도 나눌 수 있었고 공감받을 수 있어서 참 좋았다. 아내가 이 문제를 가지고 한번은 나의 성격의 이슈인 것 처럼, 내 인간관계 전반의 이슈인거 처럼 이야기했을때 그게 특별히 힘들었었다. 아내에게 존경받고 인정받고 싶은 나의 마음도 무너졌고, 내 안에 상당한 반발심이 나왔다. 그걸 이야기 안하고 마음을 더 닫아버릴 수 있었는데 이야기 하고 나자 마음이 좀 편해졌다. 물론 모든 이야기가 서로에게 공감받을 수 있고 서로 사과할수 있었던건 아니지만 중간에 상담자가 있고 제 3자, 그것도 우리가 믿고 따르는 분 앞에서 이야기해볼 수 있었던건 축복이었다.

4) 한번 내뱉은 말은 주워담기 어렵다. 상처는 오래갈 수 있다

상처받으면, 마음을 닫게 된다. 그리고 복수 하고 싶다거나, 다음에 나는 어떻게 하나 보자 이런 옹졸한 마음을 품게되더라. 아무리 상처를 받아도, 서로 공격하는 모드가 되어도, 넘지 말아야 할 선은 확실히 있는 것 같다. 그걸 넘으면 상대방에게 너무 큰 상처를 줘서, 회복하는데 참 오랜 오랜 시간과 아픔이 필요한거 같다. 우리는 상처받았을 때의 그 감정을, 아픔을 참 너무 잘 기억하고 남에게 상춰줬을 때 상대방이 느끼는 감정은 참 공감도 못하고 기억도 못하고 그러니.

그러면서 더 조심해야 겠다고 느꼈다. 한번 내뱉은 말은 상처는 참 오래 갈 수 있다. 우리가 마음을 닫기 시작할때, 그리고 큰 못들이 마음에 박히기 시작할때, 관계는 병들어 가고 회복은 참 오래 걸린다. 어떤 것들은 그 순간만 넘으면, 시간이 지나면 정말 나아지기도 한다. 마음에 자꾸 아내에 대한 원망이 들거나 ‘내’가 너무 많아지면 어떤 때는 잠시 운동을 하거나 다른 방법으로 스트레스 해소도 하고, 아내와 데이트라도 하면서 대화도 시도해보고, 기도도 하고, 이런 지혜들이 필요한 것 같다. 지혜와 성숙이 필요한 부분이다. 할까말까 할때는 하지 않는게 좋은것 같다.

5) 나의 대화법에 문제가 있구나

부부 상담의 핵심은 부부의 “소통” 이었다. 서로에 대해서 전혀 판단하지 않고 서로만을 쳐다보며 듣고 상대방 말을 반복하는 적극적 경청을 하며 공감하는 시간 (커피 브레이크) 이 꼭 필요하다고 강조되었다. 하루는 상담자가 본인 보는 앞에서 이걸해보라고 했다.

아내: 우리 요새 애들 볼때 이런일이 있었잖아. 그때 오빠가 이랬고 나는 그래서 이랬고 ~~~

산: 어, 맞어. 그래서?

아내: 그래서 내가 이랬고 저랬고 이렇게 생각하고~~

산: 응 근데?

상담자: 잠깐만요. 다시한번 해보세요. 아내의 말을 반복하고 적극적인 경청을 하는 거에요.

산: 아 그래 민경이가 이랬고 저랬고 저랬다는 거구나…(매우 어색, 완전 책읽듯이)

모두: 하하하, 이게 쉽지 않네요.

상담자는 내 대화법이 거의 매니저가 직원 대하듯 하는면이 있다고 얘기해줬다. 오케이, 그래, 그다음엔? 그래서 핵심이 뭐지? 응 끝났어?? 이런 식이 었다. 확실히 나의 급한 성격과 효율성 중심의 대화법이 가정에서도 나오고 있었다. 민경이는 원래부터 리액션의 화신이자 워낙에 좋은 리스너라 나랑은 완전 레베루가 달랐다. 난 아내가 했던 말을 다시 한다는거 자체가 너무 가식적으로 느껴져서 발음조차 잘 안되더라. 허허 이거 진짜 어려운거 같다 (아직도 잘 안된다.). 상대방보다 상대방 말을 더 잘 표현해주고, 확실히 들은것을 인지해주고 공감하는 적극적 경청, 진짜 내가 많이 노력할 부분이다.

6) ‘우리는 다르다’ 라는 생각에 대하여

언젠가 민경이가 ‘근본적으로 우리는 달라도 너무 다르다’ 는 생각은 관계를 포기하게 만들고, 하나됨을 막는다고 이야기한 적이있다. 힘들어하는 부부는 다 우린 달라도 너무 달라 이렇게 생각하며 포기한다고도 들었다. 그래 분명 우리가 어떻게 같겠는가. 살아온 배경이 다르고 태어나길 다르게 태어났고 남녀가 다르고 그런데.

다름이 버거울 때가 없다면 거짓말이겠지. 우리도 위에 나눴지만 다름으로 많이 고생했고 지금도 종종 부딪힌다. 전에 부부상담을 시작하는  에서도 나눴지만 다름은 결국 나를, 우리를 온전케하기 위한 섭리이고 필요 같다는 생각을 부부상담하면서 더 하게 됐다. 혼자라면 더 편할거 같지만 늘 외로웠고, 때로는 나의 에너지와 의미를 찾는 끊임없는 갈구가 나를 고갈시켰다. 앞만보며 달리다 보니 관계에서 문제가 생기는 경우도 많았고 나를 돌아보지 못했을 때도 많다. 분명 아내는 나의 부족한 부분을 엄청나게 많이 채워준다. 거기다 더해 아내와의 ‘다름’을 맞춰가는 과정에서 나는 내려놓는 법을, 내 맘대로 안되는게 있음을, 다 이해안되더라도 일단 순종해야 됨이 있음을 배우고 체험한다. 이 다름 안에서 소통하는 법을 터득할 때, 그리고 사랑하는 것에 성숙해 갈때, 우리는 더 지혜롭고 성숙하게 하나됨을 느낀다. 그리고 나도 더 원래 창조된 그 모습과 가까이 온전해 질 수 있음을 느낀다. 성경적으로 보자면 내 갈비뼈와 하나되는 과정이니.

그리고 우리가 얼마나 ‘같음’, ‘닮음’이 많은 지도 본다. 민경이랑 나는 손가락, 발가락이 비슷하게 생겼다. 둘다 사람 초대하고 쉐어하고 나누는거 너무 좋아한다. 둘다 신앙 색은 많이 달라도 하나님 사랑하고 믿는다. 둘다 돈에 큰 관심이 없고 (적어도 지금은), 삶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관이 많이 닮았다. 요샌 식성도 많이 닮아가고 생긴것도 많이 닮아가고 있다. (그래 진짜 산다는게 뭔지, 가장 소중한 사람부터 더 잘 챙겨야 겠다는 생각이 많이 든다.)

7) 아내를 사랑한다는게 무엇인지

우리 부부상담은 은근히 후반부로 갈수록 더 힘들어 졌다. 거의 끝날때가 됐는데 부부상담만 하고 오면 싸움이 나거나 분위기가 안좋아졌다. 뭔가 상담때 민경이가 섭섭했던걸 이야기하거나 하면 난 가해자가 된것 같았고 상담자로부터 “형제님은 왜 그때 그런반응을 보이셨는지 한번 잘 생각해보세요” 이러면 그게 그렇게 기분이 안좋을 수가 없었다. 민경이는 나와의 다름에 대해서 힘들어했다. 이 남자는 왜이렇게 자기 마음도 몰라주고 항상 일만 생각하고 한번씩 생각없는, 차가운 말투와 행동과 표정으로 자신을 힘들게 하는지. 난 다름은 정말 괜찮았다. 우리가 다른건 너무나 잘 알고 있었던 사실이었다. 그래서 상담 마지막에 아내가 “오빠, 내가 기도했는데, 하나님이 우리 다름을 축하하라고 (celebrate the difference), 결혼 초반에 주셨던 마음을 다시 주셨어. 이걸 다시 깨닫게 해주셔서 너무 감사해. 다른게 축하할 일이구나.” 이런말을 했을 때 전혀 감흥이 없었다. 아내는 내가 펄쩍 뛰며 좋아해줄 줄 알았던거 같은데 전혀 감흥이 없자 김새고 속상해 했다. 난 속으로 “그걸 이제 알았어? 하놔” 뭐 이런 생각이었으니 ㅋㅋㅋ

위에도 이야기 했지만 내가 힘들었던건 자꾸 나를 ‘힘들어 하는’ 아내였다. 내 입장에서 종종 섭섭해하고 상처받는 아내의 연약함, 민감함, sentiveness 가 버거울 때가 꽤 있었다. 난 전혀 그런 의도가 아닌데. 내 삶은 이미 충분히 복잡하고 힘들고 할거 많은데. 왜 나의 전혀 그런의도가 없는 말과 어떤 행동에 상처받고 그러는지. 이성적으로 이해 안될때도 꽤 있었고 그냥 피하고 싶고 일처럼 느껴져서 버거울 때도 있었다. 이것 또한 처리해야할 ‘일’로 여겨졌고 안그래도 많은 일거리에 일이 쌓이는게 너무 스트레스풀 해서 피해버리고 싶어졌다. 그리고 ‘나는 안그러는데. 나는 그냥 다 넘어가주는데. 나라고 섭섭했던 때가 없는가 등등등’ 이런 내 입장에서의 생각을 반복하고 있었다. 그래서 아내를 사랑한다는게 뭔지 알게 해달라고 절실히 기도했다. 도무지 풀리지 않았던 그 질문이, 상담 마지막날 바로 전날 풀렸다.

아내를 사랑하는게 뭐냐고? 아내가 자꾸 상처받는데 싫고 짜증나고 버겁다고? 너는 안그러는데 왜 자꾸 힘들어하는지 모르겠다고? 이성적으로 이해가 안된다고? 그래 무슨말인지 다 안다. 산아. 아내는 남이 아니란다. 아내는 너야. 너와 한 몸이야. 니가 몸이 아프면 뭘 할 수 있니? 몸부터 치료해야지. 니가 몸이 아프면 너는 너를 탓하니? 탓하는게 무슨 소용이니 치료를 해야지. 아내가 아픈것에 대해서 잘잘못을 따지지 마라. 이유도 따지지 마라. 아픈것을 같이 아파해주고 치료해줘라. 치료할 수 있잖아. 치료하라고 니가 있는거고. 효율을 따지지 마라. 아플대는 치료부터 하는거야. 니가 아프게 했으면 용서를 구해야 한다. 이유는 묻지 말고. 아프게 했으니까 용서를 구하는 것이지. 이건 니가 손해보고 그런 성격의 것이 아니야. 너와 한몸이잖니. 니가 아픈거란다. 같이 치료하고 나아야 하는거고. 아내를 사랑하는게 뭐냐고? 그건 아내의 아픔을 인정하고 용서를 구하고 치료하는 거란다. 희생하는 거란다.

전혀 예상치 못했던 대답이었다. 중요한건 아내가 상처를 받았다는 거고, 그게 남이 아니라 나라는 거였다. 내가 할일은 용서를 구하고 치유하는 거였지 왜 받았는지를 판단하는게 따지는게 아니었다. 실천하긴 지금도 어렵다. 물고기 잡는게 어려운것도 있지만 심정적으로 잡기 싫어지는 것도 많다. 하지만 이 얼마나 큰 은혜인가. 나와 민경이에게 서로 다른, 우리에게 필요한 대답을 주신것이.

8) 내가 방어적 (defensive) 이라고?

내가 가진 은근한 자부심 (pride) 중에, 난 언제나 피드백에 열려 있고 자기 잘못이 있으면 있다고 인정하며 열린 대화를 좋아하고 할 수 있다는것이 있었는데 이게 무너지는 계기가 있었다. 부부상담 마지막으로 가면서 상담만 하면 내가 가해자처럼 되는 것 같아서 몇번 흥분하는 계기가 있었다. 상담자 앞에서 목소리가 은근히 격양되거나 말을 끝까지 못듣고 내가 들어가서

아, 제가 진짜 어떤 의도가 있어서 그런 이야기를 했던건 아니에요. 전 아내를 상처주거나 하려는 생각은 전혀 없었어요. 그 부분은 진짜 확실하게 하고 넘어가고 싶어요.

이런식으로 이야기하자, 상담이 끝날때 즈음 상담자가 내게 “형제님한테서 오늘 방어적(defensive)인 모습들을 좀 봤어요. 혹시 어떤데에서 그런것들이 나오게 됐는지 한번 생각해 보세요.” 라고 말씀하셨다. 들을 수록 그 당시엔 억울했다. 너무 억울한 공격? (accusation) 을 당해서 나로선 나를 방어할 수 밖에 없었는데 이렇게 평가 받다니. 그래서 이런 부부상담후에는 더 싸우고 사이가 안좋아 졌던것 같다.

심리학을 조금 공부하면서, 그리고 MBA때 10여명의 소그룹 앞에서 모든 머릿속에 드는 생각을 입밖으로 내보는 터치필리 (Touchy feely, interpersonal dynamics) 라는 수업을 들으면서 내가 어떤 것에 흥분하여 반응하는지 (trigger 되는지), 느꼈고 그 근간에는 해결되지 않은 상처나 내 성장배경이나 이런 것들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내가 흥분한다는 거, 격양된 반응을 보인다는 건 그게 나를 아프게 했기 때문이다. 난 잘못한 게 없다고 생각했으니 억울한거고, 억울한건 못 참으니 흥분된 반응이 나왔던 것이다.

그래서 힘들지만 인정했다. 내가 방어적 이었다고. 상대가 상처를 받은 부분에 대해선 용서를 구하고, 내 의도가 그렇지 않았음을 설명하지만 앞으로는 더 주의하겠다고 얘기하면 될 일이었다. 흥분한 것은 결국 ‘내’ 가 억울하단 생각이었지 상대에 대한 배려는 없었다. 아내를 사랑하고 생각하는 마음을 품고자 노력하자 내 방어적인 태도도 더 보였다. 그리고 나자 웃음이 나왔다. 하하 난 방어적이지 않다고 엄청 자부했는데 자만은 진짜 금물이다.

9) 아내가 멋있다고 느껴진 것 (아내에 대한 고마움과 존경)

민경이는 알고는 있었지만 자신의 생각을 정리해서 표현하는 데 참 알고 있었던 것 보다 훨씬 더 큰 재능이 있었다. 그녀의 글은, 그녀의 말은, 그녀의 표현력은 참 대단했다. 제 삼자에게, 내 앞에서, 민경이가 본인의 생각을 정리해서 이야기하는걸 보는게 즐거웠고 인상깊었다 (impressive). 평소에 내 앞에서 자기 주장을 계속 하며 본인 의견을 그렇게 조리있게 계속 관철시키려 하지 않는 그녀이기에 이런 경험이 더 특별했다. 나보다 생각이 깊고 사고와 쓰는 단어의 폭이 훨씬 더 감성적이고 살아 있었다. 그녀가 나를 얼마나 사랑하고 얼마나 가족을 생각했는지, 얼마나 이런 주제에 대해 묵상하고 생각하는지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예를들면 이런거였다.

상담자: 예상했던 결혼생활과 실제 결혼생활에 대해서 자매님이 써주신거 잘 봤어요. 조금더 자세히 이야기해주실 수 있나요?

민경: 다양한게 있지만 처음에 제게 하나의 이슈는 오빠와 저의 신앙에 대한 시각차이였어요. 전 설교도 다녀오고 하나님과의 교제도 많고 정말 이게 제 삶에서 너무나 중요한 부분인데, 오빠는 이제 막 시작하는 크리스천으로서 저와 많은 부분에서 페이스도 달랐고 생각도 달랐죠. 기도하는데 오빠한테 필요한건 시간이라고 느꼈어요. 그래서 최대한시간을 주고자 노력했어요. 오빠의 신앙생활에도. 그리고 전반적으로 오빠의 삶에 시간을 주려고 했어요. 오빠가 운동을 가거나 아침에 예배를 가거나 최대한 보내주고 싶었고 ~~.

정말 내게 필요했던 건 시간이었다. 나만의 시간. 일도하고 운동도 하고 책도 읽고 생각도 정리하고. 육아 하고 하면서 얼마나 나를 필요로 했던 순간이 많았겠지만 그녀는 기도하고 하면서 나를 ‘사랑’ 하는 마음에서, 내가 가장 원하는게 무언지 알려 했고 그걸주고자 했던 거였다. 그게 많이 고마웠다. 그녀의 사려깊음에 존경심이 나오기도 했다. 내 아내가 참 멋있어 보였다.

4-1. 마치며 – 일반 버전

삶은 관계라는 말이 있다. 그 많은 관계 중에서도 부부관계는가장 핵심(core and essence) 관계가 아닐까. 부부 관계에서 우리는 삶을 경험하고 느낀다. 결국 우리가, 내가, 저 밑바닥으로 들어가 보면 하고 싶은 말은 이거였다. “난 할만큼 했는데 뭘 더 하라는 건지 모르겠다. 난 이해받고 싶다. 난 사랑받고 싶다. 내 이야기좀 들어 달라. 내가 억울하다. “. 부부관계의 저 밑바닥에 내가 있을 때, 평소엔 좋을 때도 있지만 문제가 생길때, 한번씩 외부의 충격이 들어올때 (그게 돈문제든, 애가 아픈 거든, 집안 문제든, 성 문제든, 서로의 죄 문제든, 사소한 말한마디, 행동 실수 하나든) 부부관계는 금이가기 시작한다. 나의 이기심의 끝은 혼자 남는 것이고 관계 단절이지, 소통과 하나됨이 아니다.

고슴도치 부부가 서로 찌르지 않고 상처주지 않으려면 등껍질은 뒤로 하고 부드럽고 따뜻한 속으로 서로를 안아주면 된다. 서로의 욕구의 차이를 이해하고, 다름을 인정하고, 부부관계를 좀먹는 말뚝들을 빼버리고, 소통하는 법을 배울 때 비로소 우리는 안아줄 수 있고 사랑할 수 있고 사랑받을 수 있는게 아닐까. 물고기를 잡는 법은 조금이나마 알 것 같았다. 앞으론 내 몫이고 우리 몫이다. 시작할 때 나눴던 것처럼 물고기 잡는건 여전히 버겁고, 그리고 내 안에는 잡기 싫은 마음이, 알아도 하기 싫은 마음이 있음을 본다. 선택은 나의 몫이다.  아내를 사랑하고 나를 내려놓는 현명한 선택을 하며, 내려놓으면 비로소 채워지는 그 역설의 체험을 해나가는 남편이 되기를 바라고 소망한다.

4-2. 마치며 – 크리스천 버전

내 마음의 저 심연에 내가 있거나 예수님이 있거나 둘 중 하나이다. 내가 있을때 나오는건 이기심과 상처 주는 가시들이고, 예수님이 있을때 나오는건 사랑과 따스한 열매들이다. 외부 충격이 있을 때, 나는 “나” 를 생각하면서 상대를 상처주거나 공격할 수도, 아니면 “예수님”을 묵상하며 상대를 품어주고 사랑하며 나를 희생할수도 있다.

부부관계는 하나님과의 관계와 같이 연결돼 있다고 한다. 이용규 선교사님은 본인 책에서 (같이 걷기, 가정 내려놓음) 이렇게 말씀하셨다. 하나님은 아주 사소한 부부관계의 친밀함도 그냥 넘어가시지 않는다고. 아주 관심이 많으시다고. 부부관계의 친밀함이 없을 때, 하나님과의 친밀함도 같이 낮아진다고. 아주아주 사소한 부분들. 어떤때는 상대하기 너무 싫어서 그냥 덮어놓거나 외면하게 되는 부분들. 그런 것들이 덕지덕지 껴 있는 한 우리는 진정한 사랑을 할수가 없는게 아닐까.

지금도 버겁다. 내 안에 내가 너무 많다. 우리사이의 다름이 버거울 때도 있다. 민경이에게 상처주고 싶은 마음은 없고 안들지만 (다행이게도), 외면하고 피하고 싶을때도 종종 있다. 죄를 짓고 싶은 마음이 불쑥불쑥 들어온다. 난 그만큼 부족하다. 평생에 걸친 싸움이 될것 같다.

하지만 우리 크리스천은 승리한 싸움을 싸우는 사람이다. 결국 이길것이고 결국 하나되게 하실 것이고 결국 승리의 기쁨과 은혜의 축복이 있음을 믿는다. 그리고 순간순간 누린다.

민경이는 부부 상담을, 특히 여성상담을 공부하고 직접 프랙티스하고 싶어한다. 곧 무언가를 시작할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녀의 이 꿈과 열정 가운데서 주님이 하실 일들과 역사들을 진심으로 축복하고 찬양하고 기대하고 소망해 본다. 언젠가 그녀가 진심으로 눈물로 섬기고, 나도 같이 기도하고 서포트 하면서, 그녀와 그녀 사역가운데 역사하신 하나님께 박수와 찬양을 올려드릴 미래를 아주 생생하게 그려본다.

부록 – 1. 부부상담을 마치며 내가 남긴 소감문

아래는 부부상담을 마치고 상담자에게 나눈 부부상담 전반에 대한 소감문이다.

  1. 우리가 겪는 문제는 매우 personal 한 면도 있지만 매우 보편적인 면이 어찌보면 더 크다. 몰라서 당하지 잘 알고 대처하면 너무나 풍성한 결혼생활이 가능하다. 
민경이와 한번 살짝 다투고 커피브레이크를 하다가 더 일이 커지고 마음이 닫힌적이 있다. 민경이가 “정말 오빠를 생각해서 하는 말인데 오빠 그점때문에 직장이나 일반적인 인간관계에서도 많이 손해보고 들어갈거야. 그러니까 직장에서 이런말도 들었던거 아냐” 이런말을 하는데 이게 상당히 큰 상처가 됐다. 나의 성격 일반에 대한 공격으로 깎아내리기로 들리니까 맘이 많이 힘들더라. 그러면서 전에 이혼직전에 갔던 친구가 아내한테 ‘인신공격’을 듣고 힘들어한 얘기 하던게 생각났다. 아 이게 상처입은 여자가 남자에게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아주 보편적인 일이구나… 민경이는 민경이 대로 나의 부족함으로 힘든걸 주위와 나누는 과정에서 배려심없는 남자가 먹을것 기껏차려노면 한꺼번에 다 먹고 혼자 후식먹고 없어진다거나 하는 이런 일들이 대부분의 남편들에게서 나온다는걸 알게됐다고 한다. 이걸 얘기안하고 가지고 있으면 우리는 가슴에 멍을 안고 산다. 그러나 조금만 들여다 보면 모두가 겪는 문제고 얼마든지 해결가능한 것인데, 몰라서 당한다.
  1. 문제에 집중해 있으면 너무나 크고 절대 해결안될것처럼 느껴진다.

올해 둘째를 낳고 직장일도 워낙 바쁘면서 다사다난했던 면도 있지만, 부부상담을 하다보니 문제를 자꾸 들춰내고 해서 예년에 비해 문제가 꽤 있었던거 같다. 부부관계 때문에 stressful 할때가. 그런 일이 하나 있을때마다 문제가 아무리 작은 거였든 간에 우리의 감정은 그렇지 않더라. 상처입은 마음이 계속해서 상상력을 키워갈때 우리 마음은 계속 상처받고 닫히고 공격적이고 방어적이 된다. 그것만 보고 있을때는 절대 해결이 불가능한거럼 느껴지고, 상대는 절대 이 부분은 이해못할거 같고, 그 생각만 계속 하고 있더라. 하나님이 없었다면, 난 누구에게 의지할 수 있었을까…

  1. 결국 소통이다. 

상대는 들었다고 생각해도 상대방이 확실히 인정 (recognize) 안해주면 나한텐 여전히 그건 상대방이 안들은거나 다름없는 unchecked box 이다. 내 입장을 커뮤니케잇 못했으므로 4차원의 세계를 키우게 된다. 내 입장에서 그걸 경험해보니 확실히 더 알겠더라. 민경이랑 음식을 내가 배려안하고 다 먹어버려서 민경이가 화낸거 가지고 서먹함이 있던 때였다. 사실은 별거아닌 문제였고 서로다른 포인트에서 마음이 토라진 거졌지만 그 얘기 안하고 넘어가니 내가 어떤포인트에서 상처가 됐었는지 결국 상대가 못 알아준다는 생각을 버릴 수 없었다. 그러다보니 다양한게 다 섭섭해지고 별로 대화가 하기 싫어지더라. 이 이야기만 알아준다면 내가 잘못한 부분도 고치고 얼마든지 잘할 마음이 있는데.

그냥 넘어간다고 문제가 해결된게 절대 아니다. 포기하고 살거나 오해하고 사는거지. 커피 break의 과정에서 민경이가 과거에 내 생각없는 돈 사용에 우리 가정관련하여 마음을 닫게된걸 알게됐다. 우리 부부의 부부관계와 관련하여 민경이가 내가 원하는 것에 대해 오해하고 있다는 것도 알게됐다. 항상 이렇게 소통이 오해를 풀고 할수 있는건 아니지만 넘어가면 문제는 점점 곪아들어갈 뿐이다. 어렵더라도 시도해야 한다는걸 알게됐다. 그리고 남편이 가장이 그런 역할을 더 해야한다 하나님과 함께…
  1. 나의 부족한 부분들을 다시한번 알게 됐던 것들 

충분히 배려하지 않고 내 입장에서 생각하고 말하기: 남녀관계의 일반적인 typical 한 이유일수도 있지만 내 경우는 이게 더 컸던것 같다. 연약한 그릇인 내 아내가 나때문에 상처받는 다는건 참 안타까운 사실이 아닐 수 없다. 내가 전화받을때 차갑게 업무적으로 받거나, 표정이나 말투에서 부드럽지 않을때 민경이는 내 생각보다 훨씬 큰 상처를 받는 연약한 그릇이구나. 내 생각보다 그녀의 상처가 훨씬 깊었을수 있다는걸 알게됐다.

상처입은 상대방 외면하고 문제를 마주하지 않기 – 방어적태도(defensiveness): 민경이가 문제를 제기할 때마다 들었던 생각은 나는 이런걸로 문제제기 안하는데, 난 다 넘어가고 참고 사는데 왜 이렇게 사소한거에 자꾸 일을 만드는가 였다. 풀어주려고 노력했지만 힘들고 짜증났다. 그러다보니 defensive 하게 대하고 있다는걸 알게됐다.
  1. 하나님의 채워주심

부부상담의 마지막에, 하나님이 확실히 깨닫게 해주신것, 민경이를 사랑한다는건 그녀가 받은 상처에 용서를 구하는것, own 하는것, 내 몸으로 생각하고 이해가 되든 안되든 순종하는것, 그녀를 배려해주는것 이라는걸 알게됐다. 누가잘하고 잘못했고의 문제도, 손해보는 문제도, 별거 아닌거 같고 시간낭비하는 문제도 아닌걸 알게됐다. 하나님은 또 민경이에게는 다른방식으로 말씀해주셨다. 그 세심한 배려가 너무나 감사하다.

이것 말고도 하나님이 너무 많다. 일반적인 부부상담과는 비교할 수 없는것 같다. 우리는 정답도 알고 있다. 우리는 해결책도 알고 있다. 그리고 우리는 이미 해결되었고 결국은 승리와 사랑만이 있다는 것도 알고 있다.
  1. 앞으로의 기대

이런 기회가 없었다면 그냥 마음을 닫고 있을 수 있는 민경이가 누군가 앞에서 이야기하는것 보기. 그 과정에서 민경이가 정말로 나를 사랑하는 것도, 내 생각보다 훨씬 묵상도 깊고 표현력도 뛰어난것도 알게됐고, 한편으로는 나와 생각이 달랐던 면이 많았던 걸 느꼈을 때도 있다. 나의 아내이지만, 또 달라보였다. 그래 그녀를 더 이렇게 피어나게 해주고 싶더라.

앞으로의 길도 십자가를 지는 고통이 있을거란거 너무나 잘 안다. 계속되는 과정이라는것도. 그러나 두려움보다는 기대가 되는건 결국에 우리를 통해 선한일을 하실 하나님을 알기에…부부상담 이야기는 우리 목장부터, 우리 주위 사람 누구나 관심을 가지고 너무나 궁금해했다. 결국 이건 우리만의 문제도 아니고 모든 사람이 근본적으로 가지고 있는 문제이리라. 우리의 삶 자체가 하나님의 컨텐츠가 되고 있고 도구가 되고 있는게 느껴졌다. 앞으로 민경이가 이 일을 하려 한다는게 더 가슴뛰게 한다. 그녀가 그리고 우리가 같이 계속해서 그분의 질그릇이 될것을 기도해본다.

부록 – 2. 부부상담중 한번 내가 낸 숙제들 모음

첫번째 숙제: 내가 예상한 결혼생활

자라면서 난 결혼은 꼭 할거라고, 이왕이면 늦지않게 일찍 해서 아기도 많이 낳고 행복한 가정을 꾸릴거라고 생각했지만 결혼생활에 대해 아주 구체적으로 생각해보지 않았었다. 여자친구를 사귈때면 이 친구랑 살면 어떤 모습일까, 어떤 결혼생활을 하게 될까 생각했고 그때그때 만나는 상대에 따라 결혼생활에 대한 모습이 조금씩 다르게 그려졌지만 대략 내가 생각한 결혼생활은 부부 둘다 서로를 존중하며 열심히 일하고 (난 커리어 우먼은 아니더라도 자기가 좋아하는 일이 있고 독립적인 사람이 좋았다.) 애들 사랑해면서 행복하게 사는 모습이었다.

우리 부모님의 모습과 결혼생활을 보면서 나는 의식적, 무의식적으로 이런 결혼생활을 해야지, 이런건 하지 말아야지, 이건 당연히 아빠/남편으로서 할일이고아내/엄마로서 할일이지 이런 생각들을 정립해왔다. 구체적으로 예를 들자면 나는 우리 아빠의 1) 부지런한 모습 (5시에는 무조건 기상. 술먹거나 외박하거나 그런거 없고 언제나 한결같이 산 모습) 2) 언제나 긍정적이고 약한모습 보이지 않는거 (항상 가족을 지키고, 어려운일이 있어도 가족한테 최대한 그 걱정이 가지 않게 하려고 노력하는 모습) 3) 지나칠 정도의 검소함 4) 자식들을 너무나 사랑해주고 존중해 준 모습들. 그리고 우리 엄마의 1) 주위를 향한 배려 (평화를 사랑하고 다른 사람을 먼저 생각하는 모습 2) 부지런하고 꾸준한 모습 3) 울면서라도 감정을 풀고 쌓아두지 않는거 4) 자식들을 믿고 존중하고 인정해준거  이런 모습을 참 좋아했고 나도 그렇게 하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우리 아빠의 1) 화내는 것, 2) 여자 (특히 아내) 를 감싸주고 사랑해주지 않는거 3) 너무 잘되는 사람만 좋아하고 속이 보일정도로 영향력이 있는 사람을 순수히 (?) 좋아하는것, 그리고 엄마의 가끔이지만 잔소리 하는 모습은 담지 말아야 겠다고 생각했다. 엄마는 집에서 나와 형을 돌봤지만 나 중학교때 부터는 밖에서 일도 많이했고 그러면서 본인이 자신감도 찾고 점점 더 엄마다워 지는걸 보면서 여자가 일하는 것에 대해서도 더 좋게 생각하게 된 것 같다. 우리 가족은 참 많이 놀러다녔는데, 그것도 꼭 하고 싶었다. 자식교육에 있어서는 두분다 아주 어렸을 때 부터 자율과 책임을 강조하셔서 나도 꼭 그렇게 하리라 생각했다.

한국에서, 특히 정부에서 선배들은 워낙 야근에 시달려서 행복한 가정생활을 하는 경우가 많지 않아보였고 난 그 모습이 좋아보이지 않았다. MBA를 통해 미국에 왔을때 난 이미 20대 후반이었고 결혼과 가정에 대한 inspiration에 목말라 있었다. 그래서 결혼한 친구들이랑 얘기도 많이했고, 많이 집에도 가고 정말 어떻게 사는지, 어떤것에 기뻐하고 어떤것으로 싸우는지, 어떤 취미를 같이 갖고 어떻게 사랑을 쌓아가는지 물어보고 연구했다. 유대인 가정은 그 교육방법과 성장배경이 너무나 매력적이었다. 꼭 밥상머리 교육을 하고 토론식 문화를 만들고 재밌는 주제들로 항상 토론하고 질문하는 문화를 만들어야 겠다고 생각했다. 무엇보다도 나의 결혼생활에 대한 기대와 상상에 영향을 많이 준 사람들은 몰몬교도 들이었다. Joel Peterson 교수님의 자녀교육 10계명, 어떻게 자녀들을 생각하는지 (You can become a policeman or a cheerleader. It’s your Choice. Physical touch is important. Hug them often and say you love them) 이런 것들은 적어놓고 여러번 보고 생각해봤다. 친한 몰몬 친구가 있었는데 가정에 나를 여러번 초대해줬다. 매 요일마다 다른 theme을 가지고 자녀들과 놀아주는 모습, 일찍 결혼해서 아이를 많이 낳고 가족에 정말 focus하는 모습, 아내를 끔찍히 사랑하고 절대 포르노 같은걸 보지 않고 아내와의 성생활을 즐기는 모습, 운동 많이하고 건전하고 즐거운 취미를 많이 만들고 즐기는 모습, 이 모든게 좋아보였다. 그래서 아이 많이 낳고 아내와 열심히 사랑하고 가족에서 진정한 행복을 누리고 만들어 가는 결혼생활을 더 구체적으로 그리게 됐다.

2013년 신앙이 생기고 성경적 결혼관을 알게 되고, 그간 내가 알던 크리스천 선배부부들을 만나 그들이 살아온 이야기를 듣게 되자 이 모든것들이 퍼즐이 맞춰지듯 구체화도되고 더 명확해졌다. 남녀 사이엔 어떤 원리가 있는지, 왜 여자는 사랑을 받아야 하고 남자는 인정을 받아야 하는지, 왜 아내를 자기보다 더 소중히 여겨야 하는지, 자녀들은 어떻게 훈육하고 양육하고 사랑해야 할지, 이 모든것들에 답을 찾은 느낌이었다. 그리고 결혼생활이 어떤 부분들이 어려울 수 있는지, 재정문제, 건강문제, 양가집안문제, 성 문제, 등등에 대해서도 더 듣고 그려볼 수 있었다. 그렇지만 자신있었다. 사랑이 넘치고 아기도 많고 열심히 서로를 존중하며 발전적으로 생활하는 그런 가정을 그려보고 예상했다.

네번째 숙제: 부부상담 후 느낀점 등

1. 느낀점

무엇보다 반성 많이 했습니다. 제 입장에서는 너무나 당연한 반응이, 어차피 해결책도 없고 굳이 더 이야기해봐야 아무 발전적인 것도 없어 보이는 이야기가, 아내에게는 너무 필요한 대화일 수 있고 듣고 공감해주고 그 마음을 끄집어 내주고 더 delicate 하게 다뤄야 한다는게 많이 와닿았어요. 진정한 gentleman 인지, 진정 아내는 내게 두려움 없이 마음을 열 수 있는지, 진정 이런 남녀가 다르고 서로 생각이 다른 부분까지 우리는 하나가 될 수 있는지 많은 생각을 할 수 있었습니다. 목사님의 “그냥 그런 사람이니까 니가 이해해” 이런 말은 하등 도움이 안된다 – 이 커멘트가 참 와닿았어요. 결국 다 자기멋대로 살것 같으면 예수님이 십자가 달리신 이유도 없다고. 우리는 더 한마음이 될 수 있고 남편으로서 아내를 더 아끼고 더 배려하는 것이 그 첫걸음일수 있다고. 앞으로 이런일이 있을때마다 꼭 억지로라도 더 해봐야 겠다 더 아내 입장을 생각하고 일단 하는일 멈추고 들어봐야겠다 느꼈습니다. 그리고 분명 이것이, 민경이를 통해 우리가정에 역사하는 성령님의 역사임을 다시한번 느낍니다.
2. Coffee Break
이건에 대해 coffee break하면서 느낀 것은 민경이가 마음을 조금씩 닫게 된 계기는 제가 잘 안들어줘서도, 공감을 못해줘서도가 아닌 제가 몇번 상의없이 돈을 쓴거라든지, 이런것에서 더 민경이 입장을 헤어라거나 더 아내가 앞으로 나가게 배려하지 못한것이 있음을 알게되었고 깜짝 놀랐습니다. 별거 아니라고 생각했던게 정말 큰 잘못이었구나, 이런 사소한 데에서부터 신뢰가 금갈수 있는게 당연한데 재정사용같은 부분, 우리가족에 민경이를 잘 present 하는 부분 에서 제 배려와 헤아림이 많이 부족함을 느꼈습니다. 잘 이야기하고 오해도 풀었지만 알게되어 너무 큰 다행이었습니다.
3. 결혼을 말하다 독후감
결혼에 대한 현대사회의 잘못된 인식, 접근은 몇세기전부터 비롯된 개인주의와 인본주의에서 비롯되었다는 분석, 그리고 그 조목조목이 얼마나 큰 허구인지 너무나도 공감이 가는 분석입니다. 실제로 제가 저으기 그렇게 생각해 왔었기에 (혼전 동거, 최적의 파트너 찾기, 결혼을 비지니스 딜과 같이 생각하기 등등) 참 얼마나 다시한번 이게 은혜인가 느꼈습니다.
결혼의 신비한 비밀. 복음과 결혼이 compliment each other하는 것. 결혼생활을 통해 깨닫게 되는 복음의 정수, 이 모든것이 제 결혼생활이고 결혼과정이기에, 정말 크게 공감하는 바입니다. 결혼을 통해, 상담을 통해 계속해서 더 본인의 죄성도 알아가고 더 본연의 창조된 모습으로 닮아가는 것을 느끼는게 제 신앙에 확신과 힘을 더해 주는 가장 큰 증거입니다.
4. 고린도후서 1장
바울의 고린도 교회를 향한 정말 자식같은 사랑이 느껴지는 편지입니다. 고난이 넘친것 처럼 위로도 넘치기를 (1:5), 우리의 환난도 위로도 다 고린도 교회에 힘을 더하기 위함임을 (1:6), 견고한 소망 (1:7) 이런데에서 그 사랑이 느껴집니다. 그리고 자신감도 느껴집니다. 12~14절에서 우리의 자랑이라, 우리와 완전하게 알게되기를 바라는 것, 그리고 24절 기쁨을 돕는자가 되려 함 이런 표현들에서 계속해서 그 사랑과 헌신과 마음가짐을 볼 수 있습니다. 아내를 대할때, 가족을 대할때 이런 마음가짐을 닮아갈 수 있기를 기도하게 됩니다.
다섯번째 숙제: 부부상담 후 느낀점, 커피브레이크 등
Heat – 어떤 외부 충격이 있었는가. 어떤 부분에서 아내에게 화가 나거나 스트레스를 받았는가
  • 하루때문에 생긴 짜증이나 분위기
  • 약속시간 늦기
  • 처리할일 까먹기
  • 늦잠자거나 시간을 허무하게 낭비해 버리기, 돈을 낭비해버렸다는 생각이 들때
Coffee Break
  • 몇번 산책을 하고 대화를 나눈적은 있었지만 특별히 coffee break주제를 찾지는 못했습니다. 요새 돈쓰는 문제를 가지고 조금씩 의견이 다른게 느껴졌는데 (저는 상대적으로 주위사람한테 더 쓰고 싶어하고, 민경이는 좀더 하루관련된 일에 쓰고싶어하고) 큰 차이는 아니고 서로의 생각을 이해못할것도 아니라서 잠시 대화하고 넘어갔습니다.
  • 워낙에 제가 일이 바쁘고 스트레스를 받아서 정신없는 나날이었고 민경이는 민경이대로 육아와 씨름하고 있는 나날입니다. 목장모임이 그래도 부부가 같이 마음모으고 마음을 솓는 윤활유처럼 서로의 사이에서 기능해주고 있고요.
결혼을 말하다 독후감
  •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 서로 섬기라. -> 결혼은 자기중심성이 아니다. Self righteous 가 항상 올라오지만 각자가 성령안에서, 신앙안에서 바로설때만이 결혼은 working 할 수 있다.
  • 이게 가장 많이 와닿은 것은 이번에 결혼 상담을 처음 받기로 했을때 정말 이 문제를 놓고 주님께 나가서 기도하며 씨름했을 때였습니다. 기도하고 나니, 주님이 얼마나 민경이를 사랑하시는지, 주님이 어떤모습으로 제가 민경이를 사랑하기를 원하는지 알 수 있었고 그걸 더 바라볼수 있었습니다. 자신의 죄가 생생히 느껴지는 순간이었죠.
  • 신앙적으로 충족되었을때 아내를 향한 사랑이 샘솧았던게 느껴집니다. 기도하다가 주님이 얼마나 민경이를 사랑하시는지도 느껴지고, 얼마나 저를 사랑하시는지도 느껴졌습니다. 그럴때면 작은 일들은 아무것도 아닌게 되었습니다.
  • 토요일 임마누엘 교회 아침예배를 어떻게든 가려고 했던것, 그리고 축구를 하고 싶어 했던것, 이런 것들이 처음엔 내려놓기 어려웠는데, 내려놓을때마다 민경이가 채워지고 결혼생활이 풍성해지는것을 볼때마다 참 새롭고 신선했습니다.
고린도전서 10:1~4
  • 사실 이 구절을 가지고 결혼의 context에서 제대로 묵상을 하거나 주님께 나아가지는 못했습니다. 다같이 신령한 음식을 먹고 세례를 받고 주님안에 거했다는 것. 그걸 잊지 말고 우상숭배하지 말고 주님을 경외하고 (넘어질까 조심하며) 항상 덕을 세우고 유익한 것을 하기에 힘쓰라는 것. 크게 두가지로 다가왔습니다. 1. 주님의 거룩한 백성이라는것 주님이 나에게 신령한 음식을 주셨다는 것을 잊지않기 2. 항상 조심하고 결혼생활을 더 delicate 한 것으로 다루기
Finally Free
  • 주님을 묵상함으로써 이겨낼 수 있다. 내가 아닌 하나님께 시선을 돌리고 은혜를 구하라. Fundamental 한 해결책, approach 를 배운 느낌입니다. 죄책감과 자포자기의 고리를 이길수도 있게 해주는 열쇠 같고요. 결국엔 승리케 하실 것이 느껴집니다. 결국엔 주님이 이긴 싸움이고 주님안에서 저도 이길것이라는 것이. 너무너무 유혹이 클때, 그냥 눈딱감고 한번만, 이런 생각이 들때면 주님이 하실 큰 역사를 기대하며 일단 참아내보려 하고 있습니다. 제가 볼때 지금시기, 출산과 산후조리로 부부관계를 전혀 할 수 없고 intimacy가 없는 앞으로 몇개월이 승부의 분수령이 될 것 같습니다.

마지막 상담전에 제출한 숙제들

11/17

  • 기도하는데 주신 깨달음. 민경이를 사랑하는건 내 방식대로, 문제제기를 왠만하면 하지 않고, 그녀의 space를 주며 그녀가 하고자 하는 일이나 생각을 응원해주고 그런게 아니다. 민경이가 내가 보기에 make sense하든 어떻든, 상처받거나 힘들어하면 그걸 내 상처보다 더 아파하며 보듬어주고 미안해 하고 그런거다. 결국 우리는한몸이다. 그녀가 아픈건 어떤 해결해야할 “일”이 아니라 가슴이 아파하는, 눈물이 저절로 나는 그런 “현실”이다. 그게 하나님이 바라시는 사랑이다. 내게 익숙하든 하지 않든.
  • 용서란 단어가 조금은 묵상이 됐고 도움이 됐다. 그러나 민경이가 내가 생각하기에 문제제기 안해도 될것을 갖고 문제제기해서 내 삶의 “일”거리를 더한다 하더라도 그래도 그게 용서할 대상이란 느낌으로 다가오는건 아니다. 그냥 handle 하기 어려운 골치아픈 일거리로 다가온거지…
  • 내게 다가온 것은 이게 내 생각만큼 “어려운 일”이 아니란 거다. 남남이 싸워서 서로 잘잘못을 가리고 그런 문제가 아니다. 내 몸이 아플때 그리고 하나님이란 든든한 치료자가 있을때 난 같이 아파하고 눈물흘리면 하나님이 낫게 해주실거다. 그녀가 바라는건 공감이고 배려이고, 나같이 dry하고 일과 의미만 생각하며 늘 갈길바쁜 사람에게 그게 결코 갑자기 공감이 되고 쉬운건 아니겠지만, 순종하고 나아갈때 하나님은 나를 빚어가시며 우리 가정을 빚어가실거다.
11/6
  • Coffee break
    • RE: 진짜 우리사이에 관심이 달라서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는지
    • RE: 나의 차가운 태도나 너무 사무적인 반응들이 민경이를 힘들게 하는지
    • RE: 난 어떤부분이 힘든지
  • After
    • 마음이 힘든 부분들
      • 내가 일할때나 집중할때 상당히 차갑게 비춰질 수 있는것 안다. I have no ill intention but if it hurts Min or someone around you, I want to change. I understand the magnitude and I understand my issue.
      • 그러나 민경이가 이걸 가지고 내 character 의 이슈인거 처럼, 내 인간관계 전반의 이슈인거 처럼, 앞으로 자녀와의 관계에서도, 직장에서도 문제가 있을수 있다고 이야기하는건 I understand her point but I really didn’t appreciate that cause it felt like a direct criticism of my weakness and character
    • 나의 차가운 태도에 대한 민경이의 상처에 대하여
      • 생각보다 상처를 많이 받았구나 더 조심하고 싶다.
      • 민경이가 이거에 대해서 나는 늘 그렇다든지, 언제나 그렇다든지, 이런 표현은 나를 힘들게 한다.
      • 그리고 나에 대해서 그럼 오빠는 어떤게 상처가 되는데 라고 물어보는데, 전반적으로 난 이런거에 민경이보다 더 민감하고 민경이는 워낙 이런사소한 배려를 잘하니까 이런쪽에는 별 문제가 없다는걸 깨달았다. 오히려 나의 더 큰 문제는 자꾸 이런것들을 문제삼는 거랄까. 작은거에 토라지는거 같이 느껴지는 거랄까. 작은게 아니란걸 알겠다 적어도 그녀에게는. 그래서 바뀌고 싶은거다. 하지만 똑같은 standard 를 갖는게 결코 쉽지는 않다.
    • 내가 걱정되는것
      • 민경이가 이것저것 자꾸 문제삼고, 나의 관심사나 그런걸 별로 appreciate 안한다고 느껴지니, 그냥 피곤해진다. 일과 삶에 생각하고 해결할 것도 산더미 같은데, 별로 상대할 에너지와 의욕이 안나온다.
      • 이러면 사람이 자꾸 마음이 닫히고 밖으로 돌 수 있겠구나.
      • 나에겐, 내 생각을 억지로라도 알리는게 어쩔때는 사랑의 표현이다. 알리고 한마음이 되고 싶고 내가 온전한 마음으로 상대방을 대하는 거니까. 그걸 내가 억지로 안하기 시작하면 마음이 닫히는게 느껴진다.
    • 그래도 소망이 되는것
      • 그래도 안다. 이런 나의 죄성에도 불구하고 결국 선한 길로 인도하실거란걸. 결국 다 과정이란걸
      • 어떤부분은 typical 남녀 이슈인거 같다. 배려심이 부족한 남자와 그거에 상처받는 여자, 서로 닫혀가는 마음. 적어도 머리론 이해가 된다 나의 죄성과 우리 사이의 이슈와 해결책이 (나부터 용서 용납하고 회개하고 더 사랑하고 하는것). 순종이 힘들지만 순종이 제사보다 귀하다고 하시 않으셨나. 그래서 순종을 놓고 더 기도하게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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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Was I defensive? Am I deceiving myself? Do I have certain expectation towards 민경? Do I love 민경 as is or 민경이 같은?
  • Empathize. 이 반대편에는 교만이 있다. 난 어떻게 용서하고 사랑할 수 있을까.
  • How can we grow in grace. What we should hope for.
  • Am I expecting her to be savvy in politics/history/anything?
머릿속이 복잡하다. 억울하단 생각이 드는거 같다. 내 머릿속에 있는 생각들을 나누려고 할때마다 싸움이 되거나 반목이 생긴다. 난 왜 나일수 없는가. 왜 내가 가해자인것처럼 비춰지는가? 난 가해하려는 의도가 전혀 없는데. 잘해보려는 것인데. empathy 가 부족한 것인가.
지금까진 그렇지 않았는데, 이게 자꾸 문제가 되니까 짜증이 난다. 그냥 입을 닫아 버릴까. 나 혼자 생각하고 그런 생각하는 사람들과 어울리고 할까. 민경이를 사랑해서 더 empathize  하고, 더 참을성 갖는게 답일거 같은데 하기가 싫다. 나의 죄성이 아닐까.
나의 부족한 점을 내가 마주하기 싫은건가. 왠지 주님이 꽤나 강도놓은 수술을 나의 이 닫힌마음에 하실수도 있을거 같다. 그래도 이런 꽁하고 짜증나고 영 열받는 마음에도 희망을 품을 수 있는건 크리스천의 특권인거 같다. 이 마저도 사용하실 주님을 찬양한다.
우리 신혼때. 살면서 더 더 많이 사랑할 수 있기를.

가족여행 – 두 가족이 하나되는 힐링의 시간들

우리가 함께한 가족여행은 아래와 같았다.

  • 1차 전체가족여행
    • 멤버: 장인/장모님, 엄마/아빠, 형/형수님, 나/민경
    • 일정: 결혼식전 1박2일
    • 장소: 타호
  • 2차 소규모 가족여행
    • 멤버: 엄마/아빠, 민경/나
    • 일정: 결혼식후 약 1주일
    • 장소: 얼바인, 샌디에고 등
  • (중간에 나, 형/형수님, 엄마/아빠 이렇게 샌프란시스코도 하루 다녀왔지만 그건 생략)

1. 가족여행 전 처음의 문제(struggle)

결혼식 준비하는 내게 개인적으로 내내 맘에 걸린게 있었다. 과연 우리 부모님, 특히 아버지가 어떻게 느끼실까 하는 점이었다. 전에 몇번 글에서 아버지의 욕심을 마치 신분상승, 더 좋은 집안에 아들 결혼시켜서 권력이나 명예나 돈을 추구하는 모습으로 이야기했던 것 같은데 이 부분은 좀 오해의 여지가 있어서 추가 설명이 필요할거 같다. 아버지는 살면서 한번도 본인이 권력이나 돈에 특별히 더 욕심을 부리신 적은 없는 분이다. 나라를 생각하고 국가발전을 향한 아버지의 마음은 종교 같은 것이다. 종교가 없는 아버지께 삶의 의미는 한국의 발전이고 그것에 일조하는 삶이었다. 아버지는 현대자동차, LG전자 같은 기업체에 무수히 다니면서 대한민국 경제기적을 몸소 체험하고 정말 어렵게 가난했던 삶에서 한마음 한뜻으로 민주화와 경제발전을 이끈 세대의 한 가운데에 계셔왔다. 본인삶을 통해 정말 노력했지만 본인보다 더 노력하는 주위사람, 아버지가 좋아했던 김영상 전 대통령, 친구 국회의원 등등에게 때로는 물질로, 그리고 언제나 마음으로 존경과 사랑을 아끼지 않았다. 그리고 아들이 고시도 붙고 하자 아들에게 그 모든 기대와 소망을 쏟아부었다. 그런 아들이 공무원 그만두고 미국에 가서 백수가 되어서 불법체류상태에서 결혼해서 미국에 살것처럼 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우리 아버지는 종종 화를 잘 내신다. 워낙에 힘든 환경에서 자라서 자기 방어처럼 항상 문제가 생기면 그것을 자기 탓이 아닌 것으로 생각하는 방어기제를 본능적으로 배우셨다고 본인이 말씀하셨다. 내가 자존감이 낮고 삶에 짜증이 나 있을때 작은 자극이나 일에도 엄청 화가 나고 곤두세워져 있는걸 경험해보자 우리 아버지가 “자존감” 이 낮아서 화가 난다는 것이 느껴졌다. 우리 아버지는 본인 삶 쯤은 크게 중요하지 않다. 내가 중요한게 아니라 나라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시는거 같다. 그래서 그냥 이 결혼식 상황 자체가 아버지가 보시기에는 마음에 안드는 구석이 분명히 있었으리라. 그게 난 걱정됐다.

2. 장인 장모님께 정말 감사했던 1차 가족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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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g_3288아니나 다를까, 아버지는 장인장모님의 “아이고, 산이가 정말 너무 볼수록 더 훌륭한거 같아요. 이런점도 있고 저런점도 있고.” 이런 칭찬에 “무슨요, 저희가 훨씬 복받았죠. 민경이 같은 며느리를 보게된게 정말 영광입니다.” 이렇게 답변하지는 못할망정 “허허, 네 우리 아들이 원래 전부터 많이 특출났습니다.” 이런 답변을 하며 나의 손발이 저리게 만드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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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모님은 승부 앞에선 갑자기 돌변한다…긴장감

그런 우리 가족을 정말 섬긴다는, serving 한다는 그 마음으로 섬겨주셨다. 많이 감사했고 한없이 커보였다. 우리 아버님이 우리 어머님이…아버님은 특유의 아무 권위없는 재밌는 영화가 뭐고 재밌는 프로그램이 뭐고 맛있는게 뭐고 그러면서 끊임없이 엔터테인먼트를 제공하셨다. 어머님은 엄청난 완벽주의자 답게 우리엄마의 말 한마디 표현 하나하나에 촉을 곤두세우고 있다가 무조건 맞춰주고 대응해주셨다. 결혼식 몇달전부터 준비한 양가 부모님이 함께 간 여행도 장인장모님 작품이었다. 아버님이 예약 다하고 계획 다 세우시고 그래서 같이 갔다. 가며 오며 대화하고, 사진 찍고 밥해먹고, 심지어 카드놀이도 하면서 우리는 점차 그 모든 욕심과 다른 중요한 것들 잊고 그 시간을 즐기며 한 가족이 되어갔다.

결혼을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선택이라고 하던가. 그렇다보니 신경이 곤두설 수밖에 없다. 맞는 선택을 하는건지, 내가/우리가족이 손해보는건 아닌지. 삶의 거의 모든게 계약이고 협상인데, 결혼은 어찌보면 두 집안끼리 가장 큰 계약 (deal)을 맺는걸로 생각될수도 있다. 인간관계가 으례 그렇듯 둘다 서로 손해본다고 생각해야 일이 될까말까 할수도 있다. 우리 아버지가 언뜻 생각할때 이 결혼이 최고의 선택이 아닌것으로 보였을수 있었듯이, 우리 처가집 장인장모님께도 나나 우리집안은 결코 최고의 사위나 결혼상대가 아니였다. 신앙이 생기고 알게 된 것은 크리스천들이 결혼에서 생각하는 첫번째 조건은 집안이 좋은것도, 외모도, 성격도, 능력도 아닌 “신앙” 이라는 것이다. 남자들이 소개팅하고 오면 “예뻐?” 이렇게 묻는것처럼 크리스천은 자식이 누구 만난다고 하면 “믿는 사람이니? 믿는 집안이니?” 이렇게 바로 물어본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우리집안과 나는 절대로 민경이네서 그려온 사돈과 사위는 아니었다. 난 완전 신앙이 막 생긴 초짜에 우리 부모님과 집안은 전혀 크리스천과 관련 없는 집안이니. 그래도 그런 내색 한번 하신적 없다. 정말 양반들이고 어른들이고 “크리스천” 이셨다. (To be fair to my parents, 우리 엄마 아빠도 참 잘하셨다 갈수록 더. 처음에 경계를 품던 아빠가 나중에 정신줄 놓고 노는 모습은 아래 더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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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네 식구와 여행한 것도 너무 좋았다. 형이랑 형수님이랑 많이 친해지고 알아갈 수 있었다. 차타고 오면서 이야기 참 많이했다. 형은 정말 배울게 많은 사람이다. 형수님도 참 대단한 사람이다. 우리 넷은 사실 너무 다르다. 서로 결혼생활하면서 힘들었던 거나 싸운 것도 나누고 놀리기도 해가며 조금씩 알아가고 가족이 되어 가는걸 느낄 수 있었다. 형이랑 넷이 이렇게 여행을 한다는게 너무 신기하고 새로웠다. 항상 일하면서 힘들게 열심히 사는 형네가 조금이나마 여유를 즐기는 모습이 너무 보기좋았다.

3. 민경이와 넷이 간 가족여행 – 아버님의 힐링

민경이는 이 기간 내내 약 5일(?) 동안 3,000K 넘게 운전을 했다. 그리고 중간중간마다 우리 부모님을 나보다 극진히 생각하면서 어떻게든 더 들어드리고 더 맞장구 치고 더 즐겁게 해드리려고 그러고 그랬다. 정말 내 아내지만 볼수록 신기했다. 그래 당신은 우렁각시야.

어머니는 좋아서 울었다. 엄마가 얼마나 그간 많이 힘들었을지, 이런시간을 바래왔었는지 저으기 느껴졌다. 가족여행답게 가족여행 그렇게 한번을 가고싶어했는데. 참 좋았다.

img_4557 img_3487아버지는 정말 많이 변했다. 이런 표정을 본지 너무 오래됐다. 나중에 아빠가 한마디 하더라. 지난 십년간 너무 힘들고 정신없었고 별로 웃을 일이 없었다고…듣는데 가슴이 먹먹해지더라.

우리부모님은 어떻게 생각하실지 모르겠지만 내가 보기엔 이 시간이 우리 가족에겐 힐링의 시간이었다. 엄마에게도 아빠에게도 휴식이 필요했다. 앞으로 나가기만, 더 나은 미래와 더 멋지고 의미있는 삶을 향해 끊임없이 노력하면서 힘들어 왔는데, 항상 안간힘을 써가며 살았는데, 잠시 그냥 탁 놓고 즐겨본 시간이 아니었을까. 양가에서 서로 욕심을 내세우다 보면 결혼은 곧 지옥이 될 수 있는것 같다. 우리 아들이 어떤 아들인데, 우리 딸이 어떤 딸인데… 우리 아빠는 분명 조금 그런생각을 하고 경계심을 품고 왔다가 완전히 풀어지고 즐기셨다. 하나님이 바라는 결혼식의 모습, 결혼해서 양가가 하나되는 모습이 이런게 아닐까. 그냥 즐기고 춤추고 노래하고 놀라고. 기뻐하라고. 아들도 며느리도 돈한푼 없는 백수였지만 그럼 어떤가. 우리에게 걱정하려면 걱정할건 너무 많았지만 우리는 행복했고 우리는 서로에 대한 사랑을 키웠다. 결혼을 하면서 가족끼리 하나되는 시간을, 부데끼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던건 정말 큰 축복이었다. 민경이와 장인장모님께 임한 하나님의 사랑이 나와 우리 부모님께 서서히 스며드는 듯한 느낌이었다. 사랑과 축복이 통로가 열리고 강물이 흐르듯 흐르는 느낌이었다. 그래 살다보면 물이 막히기도 하고 역류도 하고 수많은 일이 다 있겠지. 그러나 이 순간들 만큼은 못잊을것 같다. 마지막에 헤어지기 전에 노래방하면서 아버지가 덩실덩실 춤추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부족한 아들의 선택을 믿어주고 행복하게 함께해준 우리 부모님을, 그리고 우리 아빠의 태어나 첨보는 춤사위를 이끌어내준 내 우렁각시 민경이를 너무너무 사랑한다.

 

내 인생 최고의 순간 – 결혼식

영화 Hangover에 나온것처럼 일단 비자수속 등을 위해 조촐한 결혼식을 한번 치뤘지만 우리의 진정한 결혼식은 11월 8일에 우리소속 교회 새누리교회에서 예정되어 있었다. 보통 6개월은 준비한다는 정말 손발많이가는 미국결혼식, 분명 준비과정은 만만치 않았다.

1. 결혼식 준비과정

일단 가장 큰 문제는 나의 상태였다. 직장은 없고 운전은 못하고 마음은 위축될대로 되어 있었다. 남자가 수컷이 남자노릇을 못하면 참 초라해지는건 순식간인거 같다. 자질구레한 것들에 마음이 안가는데 해야 하니 그게 만만치않았다. 신혼살림보러 가구점 가기, 집안 정리, 소소한 결혼식 준비가 아주 썩 내키는 상황이 아니었다. 거기다가 미국결혼식은 한국결혼식과는 달리 정말정말 일이 많았다. 예식장 자리배치, 초대손님 정하기, 음식정하기, 장식하나하나 정하기, 식순 정하기, 음악 정하기, 식순의 다양한 프로그램 등등등.

결혼식 준비는 우리가 같이해본 최초의 상당한양의 ‘일’이었다. 시작한지 얼마 안되서 우리가 얼마나 일하는 스타일이 다른지 몸소, 뼈저리게 알 수 있었다. 모든게 계획이 있어야 하고 일에 있어서 정리된 순서가 중요한 나는 엑셀을 만들고 to-do list를 만들고 자 우리가 빨리 식장장식을 정하고 테이블을 정하고 이렇게 저렇게 해야 다음일을 할 수 있고 이러면서 민경이를 보채기 시작했지만, 민경이는 즉흥적이고 느낌으로 결정하고 순간을 즐기고 집중하는 스타일이어서 이런 방식을 많이 버거워 했다. 나는 나대로 빨리빨리 중요한 결정이 안내려져서 힘들고, 민경이는 내가 보채서 힘들고, 농담처럼 나는 민경이한테 “그분이 오셔야 일한다.” 고 놀리기도 하고 그렇게 하나씩 힘겹게 준비했다. (근데 내 아내지만 삘받으면 일 진짜 잘한다. 그분이 오셔야….”

말로만 듣던 양가 조율도 간단한 일은 아니였다. 너무나 좋은 부모님들이시고, 아무것도 하지 말자고 했지만 돈이 들어가고 기대치들이 있으니 신경쓸게 꽤 많았다. 결혼식 비용은 누가 내고 축의금은 어떻게하고, 혼수는 어떻게하고 신랑 양복은 한벌해야되고 뭐 이런것들이 내가 다 결정할 수 있는게 아니더라. 이 과정을 참을성있게 지혜롭게 해주신 부모님과 아내에게 많이 감사하지만 결코 간단치는 않았다. 하나의 에피소드만 소개하자면, 우리는 예배식으로 결혼식을 다 준비했고 피로연때 양가 아버님의 편지, 대표 친구의 편지, 서로에게 읽는 편지, 부모님께 깜짝 선물 비디오 등등을 준비했었다. 그러나 내가 미처 헤아리지 못했던 것은 한국적인 결혼문화만 본 우리 아버지께는 피로연에서 한마디 하고 결혼식중에 한마디도 안한다는건 받아들이기 힘든 일이었다는 것이다. 결혼식 전날 미국에 도착해서 이 이야기를 들은 아버지는 바로 이렇게 할거면 자기는 아무이야기 안하겠다고 단단히 선언하셨고 아무런 말도 통하지 않았다. 이때 장인어른과 주례보시는 손경일 목사님이 모두 이해해주시고 적극 나서서 아버지께 꼭 결혼식 중간에 말씀 전해주시라고 적극 권고해서 결국 아버지도 마지못해 수락하셨고 다시금 평화가 찾아왔다. 이 평화가 어떤 결과를 불러올지 결혼식 하기전에 나는 미처 몰랐었지만…

그래도 참 재밌었다. 마침 우리둘다 일도 안하고 특별히 할일도 없어서 한번 시애틀 신혼 자동차 여행 9일정도 다녀온것 빼고는 결혼식 준비에 매진했다. 장모님과 장모님 언니 (장모이모님?) 도 엄청 많이 도와주셨다. 하나의 축제를 준비하면서 부부가 한마음으로 일하고 하니 은혜도 많이 됐다. 그리고 미국결혼식은 미국 특유의 귀여움과 재미가 녹아 있어서 그런것도 좋았다. 같이 춤도 배워보고, 장식 하나하나를 만들어보고, 하객 선물도 하나씩 준비하고 등등. 그런거 준비과정에서 보니 우리 아내는 정말 반은 미국사람이더라. 그게 보기 좋았고 고마웠다. 팍팍했던 내 삶에 이런 위트와 작은 낭만들이 찾아오는 느낌이랄까.

2. 결혼식 순간들

정말 정말 감사하고 눈물이 많이 난 결혼식이었다.

1. 아버지의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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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 내가 웃고 있는게 아니다…

난 아버지 편지를 미리 읽거나 검열하지(?) 않았는데 그게 큰 판단착오였다. 아버지는 신부측 가족 손님이 대부분인 결혼식에서, 예배식 결혼식 중간에 청중을 앞도하는 엄청난 presence로 장장에 걸친 아들자랑을 시작하셨다. “오늘아침에 고니들이 멋지게 나는걸 보니 정말 특별한 축복이 느껴집니다. 우리 아들로 말씀드릴거 같으면 어렸을때 부터 공부를 이렇게 잘했고 이런 저런 일도 다 해내며 엄청나게 부모님을 행복하게 해줬는데 정말 우리아들이 최곱니다. ~~~.” 이런 논지였던 것으로 기억된다. 적어도 내 머릿속에는 이렇게 기억이 됐다. 손발에 진땀이 낫다. 할수만 있다면 정지 버튼을 누르고 싶었다.

그러나 그게 우리 아버진걸. 실제로 결혼식에 온 많은 사람들이 나중에 우리 아버지의 연설(?)이 가장 재밌게 기억에 남았다고 했다. 우리 아버지는 정말 못말리게 귀여우시다. (?) 한국에서 나라발전을 위해 열심히 봉사해야할 아들이 공무원 때려치고 미국에서 백수로 돈한푼없이 결혼하는데 아버지로선 엄청 자제하면서도 이런 이야기라도 하셨어야하리라. “여러분, 여러분이 잘 모르겠지만 우리아들 사실 대단한 아들입니다. 제게는 둘도 없는 아들이고 자랑입니다. “이런이야기라도.

2. 형의 편지

사실 날 가장 많이 울린건 형의 편지다. 형은 정말 대단하다. 말한마디 한마디에 힘이 있다. 형은 평소에 글을 쓰거나 말을 많이하지 않는다. 형이 이렇게 자신의 감정을 잘 표현하고 청중과 상대방을 아우르면서 이야기할 수 있는지 생각하고 표현할 수 있는지 미쳐 몰랐다.

“여러분, 제 동생은 참 잘났지만 전 평범했어요. 저도 그리 나쁜편은 아니었는데 제가 반에서 10등하면 쟤는 전교에서 1등해서 저를 기죽였고 저는 집에 성적표 못내밀고 그런식이었죠. 자라면서 그게 그리 쉬웠던건 아니에요. 근데 제가 많이 고마웠던건 저녀석은 항상 저의 좋은점만 보고 칭찬을 해주는 거에요. 친구들한테 가서도 항상 “우리형은 게임을 엄청잘해.” “우리형은 승부사야.” 뭐 이런말 해가며 칭찬할거 별로 없는 저의 작은모습 하나하나를 칭찬해줬어요. 산이가 좀 오버해서 칭찬 잘하죠? 그게 저처럼 칭찬할거 없는 사람 띄워줘가며 배운 능력이에요. 사랑한다 동생. 행복하게 잘살아. ”

난 정말 최악의 동생이다 어떤 면으로 봐도. 형이 나때문에 당한 피해를 생각하면 지금도 세상에서 가장 미안한 사람이다 형은. 형이 나한테 이렇게 이야기해주니 정말 펑펑 눈물이 났다. 글쓰는 지금도 눈물이 난다. 형은 내게 그런 사람이다.

3. 대현이의 편지

대현이는 어쩌다가 이동네까지 와서 소와 말처럼 일했다. 정말 엄청 부려먹었다. 그리고 그 와중에 편지까지 하나 써서 읽으라는 숙제까지 줬다. “니가 하라면 내가 그냥 깽 하고 해야지 별수 있겄냐.” 이렇게 쿨하게 한마디 하고 대현이는 당일치기 편지를 읽어줬다.

대현이가 해준말중 가장 기억에 남는건 그거였다. 항상 노력하는 친구. 그렇게 노력해서 자기가 사는 삶의 모습까지 많이 바꿔버린 친구. “산이를 아시는분은 아시지만 참 열심히 살아요. 옛날부터 그랬어요. 마치 굶어죽다 살아난 사람처럼 뭐 그렇게 하고싶은게 많고 열심히 하는지 친구들중에 이해한 사람은 아무도 없죠. 그래도 보기 좋았어요. 그리고 지금의 산이를 보니 정말 많이 바뀐게 느껴져요. 삶의 가치와 방향 까지도. 노력으로 삶 마저 바꾼 친구. 제 친구 산이는 저에겐 그런 애에요.” 마치 지나온 내 노력과 삶을 내 친구한테 다 인정받는 느낌이었다. 그게 그렇게 고맙고 뿌듯할수가 없더라.

4. 범준이형의 편지

스타트업 CEO로서 눈코뜰새 없이 바쁜 삶을 살고 있던 범준이형은 뉴욕에서 비행기타고 주말에 날아와서 결혼식을 축하해줬다. 형이 해준 말은 성경의 한 이야기였다. 다윗이 언약궤를 돌려 받고 체면 위신 하나 생각하지 않고 언약궤 앞에서 옷다벗고 춤춘 이야기를 해주면서 그렇게 기뻐하고 즐거워하라고 이야기해줬다. 나중에 더 알게된거지만 형은 나보다 훨씬 더 즐길 줄 알는 사람이다. 그래 형 말듣고 맘 더 놓고 즐길 수 있었다.

5. 장인 어른의 편지

아버님은 얼마나 딸을 떠나보내는게 힘드셨는지 말씀해 주셨다. 많이 놀라고 그래서 더 감사했다. 보통 장인들은 딸 결혼시킬때 엄청 질투하고 힘들어하고 사위에게도 힘든 시간(Hard time) 준다는데 왠걸 우리 장인어른은 거의 처음본 순간부터 “우리 산이, 산이산이산이,” 이러면서 엄청 친자식처럼 잘해주셨다. 한번도 눈치주거나 그러신적도 없고 항상 이뻐해주시고 기뻐해주시고 높여주셨다. 그래서 그렇게 힘들어 하셨다는걸 전혀 눈치 못챘다. 그리고 여기서 다 표현하기 어려울정도로 수많은 순간에서 자존심 굽히고 나와 우리 가족을 섬겨주셨다. 아버님의 말씀 한마디 한마디에서 딸을 시집보내는 성숙한 아버지의 모습을 본것 같다.

6. 민경이의 편지

민경이를 청년시절부터 본 손경일 목사님 (우리 주례를 봐주신)께서 민경이를 설명하면서 해준 표현은 “정말 순종적인 (submissive) 아이” 라는 거였다. 사귀고 결혼하는 과정에서 느낄 수 있었다. 그녀가 얼마나 나를 세워주고 나를 위해주고 내게 순종해 주는지. 정말 신실한 사람이다. 정말 심지가 굳고 보수적이고 단순한 사람이다. 그녀는 내게 순종과 신실함을 맹세했다. 그녀의 진심이 느껴졌다. Yes, I was and am the luckiest man.

“오빠를 따를게. 힘든시간도 있고 우리 싸우고 그런시간도 있겠지만 그래도 오빠를 따를게. 오빠를 섬길게. 우리 같이 하나님 따르면서 잘해보자. 너무 고마워요 남편.”

 

엄마로,부모로 Ch 2 – 실전

이전 포스팅에서 소개 했듯 하루는 10월29일 오후4시04분에 본인만의 언어로”Hello World!” 를 크게 외쳤고 나의 엄마 실전은 그 시간부터 지금까지 쭉 이어지고 있다. 이제 거의 일년이 다 되어가는 이 시점에서 초보 엄마가 겪은 어려움과 시련 그리고 그 과정들을 거치며 받은 은혜를 나누고 싶다.

지금까지 엄마실전은 indescribable joy 와 unpredictable chaos 의 반복, 끝없는 스스로와의 부딪침 그리고 그안에서의 작은 성장이라 할 수 있는것 같다. 하지만 이 모든과정이 한없이 사랑스러울 수 밖에 없는 이유는 얼마전까지만해도 내 안에 있던 작은 사람이 세상에 나와 상상했던것 보다도 훨씬 더 귀여워져만 가고 있는 모습을 마음껏 바라볼 수 있다는 사실 때문이 아닐까 싶다.

하지만 지금은 모든 어려움이 지나간 건지 적응된 건지 어쨌든 한숨 돌릴 만한 10개월 후, 이 모든것이 처음 시작되었던 10개월 전 처음만난 그 당혹감은 정말 말로 표현하기 힘들다.

내 자신과의 갈등_산후우울증

아기를 낳는 과정은 사실 생각했던것 보다 크게 아프거나 힘들지는 않았다. 처음부터 무통주사를 맞을거라 강한 의지를 보였지만 결국 예상외로 진행이 너무 빨리 되는 바람에 갖은 진통을 거의 끝까지 겪은 후 막판에 아기머리가 떨어지는게 느껴진 후에야 무통heaven을 잠시 경험했지만 push과정도 나쁘지 않았고 아무튼 생각보다 그렇게그렇게 죽을꺼같이 아프지는 않았다. 그런데! 막상 아이가 나오고 나니 병원에서는 예쁘고 신기하고 너무 좋았는데 퇴원 후 친정엄마네서 산후조리에 들어간 후로 부터는 그다지 큰 attachment를 느끼지 못했다. 오히려 졸려죽겠는데 아파죽겠는데 쉬고싶은데 한시간 혹은 두시간마다 깨서 우는 아이를 한 반나절이라도 좋으니까 아니 한 5시간만이라도 누구한테 좀 맡겨 버리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그러다 보니 나는 왜 모성애가 생기지 않을까 죄책감이 스멀스멀 들어오기 시작하고 회사간 남편만 보고싶고 다헐어 옷만 스쳐도 따가운 젖꼭지를 있는 힘껏 한시간 두시간에 한번씩 빨아대는 아이는 밉고 하루종일 눈물만 나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부터는 “나 왜 우는거야, 속상하지도 않은데 눈물이 계속나 이상해..” 이러면서 엄마한테 하소연을 하면서도 엄마가 이렇게 날 키웠다는걸 생각하니 눈물을 더 주체 할 수가 없었다.

엄마가된 후 처음 만난 은혜

아기 기저귀 하나 가는데도 이렇게 오래걸리고, 기저귀갈아주다가 애기가 오줌싸서 옷갈아 입혀야 하면 너무 좌절스러워 때론 눈물도 나고, 젖을 물릴때 마다 언제쯤에서야 안아파질까, 하루가 새벽4시까지는 한시간 혹은 한시간 반에 한번씩 깨기 때문에 어차피 잠도 못자는 밤이 오는게 너무 두렵기만 했었다.  언제쯤에야 이 반복되는 과정들이 조금이나마 쉬워질까 속으로 백번씩 되세기며 말로 다 할 수 없는 하루하루를 보내는 가운데 내게 가장 위로가 된건 무엇보다도 찬양이였다. 텐트메이커_예수나의 치료자. 지금들어도 마음이 찡하다.

나의 몸은 치유가 필요했고 마음은 위로가 필요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이 곡을 통해서 생각지 못했던 나의 darkest hour에 나를 만나주셨다. 다른누가 보면 생명이 태어난 이 귀한 시간이 무슨 darkest hour냐고 이야기 할 수 있냐 할 수 있겠지만 그래서 또 아이를 낳고 첫 한주간 찾아온 산후우울증 그 힘들었던 시간을 그 누구에게도 나누기가 어려웠지만 그 시간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내게서 받고자 하셨던 헌신이 있었고 이를 통해 축복하기를 원하셨다.

시간을 되돌려 하루를 낳기 일주일전, 하루는 예정일이 일주일이 지난후 세상에 나왔고 덕분에 나는 나에게 남은 일주일을 그동안 많이 못한 걷기운동과 여러가지 설교를 찾아 들어가며 나름의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러다 우연히 podcast를 통해 접한 이찬수 목사님의”한나처럼, 사무엘처럼” 이라는 설교를 듣게 되었다. 설교내용을 간추리자면 약속으로 받은 아이에 대한 한나의 한결같은 태도를 통해 진짜로 아이를 주님께 맡겨드리는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말씀 하셨고 또우리모두는 아이를 키우는데 있어 하나님께 내려놓고 모세의 어머니가 모세를 갈대상자에 넣어 떠나 보냈던것 처럼우리 또한 믿음으로 아이를 갈대상자에 넣어 떠나 보낼 수 있어야 한다고 하셨다. 갈대상자의 원어에는 노아에 방주에 쓰였던 단어가 들어가있고 그 단어의 뜻은 구별됨, 거룩함이라고, 크리스챤으로서 세상과 구별되게 거룩하게 아이를 키워야 한다고 말씀 하셨다. 덫붙여 갈대상자를 자꾸 열어보면 열어볼수록 물이 들어가기 때문에 한번 맡겨 드린 아이 주님께서 책임 지시도록 기도하며 믿음으로 서야한다고. 이 말씀이 마음에 콕 와닿았다. “그래.. 이 험난한 세상 내가 컨트롤 할 수 있는것이 별로 없고 있다한들 내 마음하나도 잘 지켜내지 못하는 내가 우리 아이 마음을 어떻게 지켜줄수 있겠어요.. 주님께 맡겨드립니다. 우리 딸 하루 갈대상자에 넣어 주님께 맡겨드리니 주님께서 이 흉흉한 세상에서 지켜주시고 항상 동행해 주시고 진리가운데 거하는 기쁜딸 되도록 함께 해 주세요.” 이렇게 기도하며 다짐했었다.  그런데 그러고 일주일 후 막상 현실속에서 우리딸이 내 앞에 나타나 곤히 자고 있는 모습을 보니 맡겨드릴 수가 없었다. 내가 책임지고 내가 지켜주고 싶은 마음이 앞섰지 이제 내게 막 와준 이 귀여운 아가를 갈대상자에 넣어 다시 주님께 드립니다의 기도를 진심으로 하기가 너무 어려웠다. 이런 내 마음을 아셨는지 출산 후 몇일 지나지 않아 주님께서는 산후 우울증을 통해 하나님께 아이를 맡기지 않으면 안되겠금 상황을 몰아가셨다. 하루에게 젖을 물리며 예수나의 치료자를 들으면서 정말 매일 엉엉울면서 기도했다 “주님 난 정말 못하겠어요. 주님이 키워주세요. 중간에 열어보지도 못하도록 갈대상자도 꽁꽁 묶어서 주님께 맡겨 드릴께요” 이렇게 말이다. .

물론 그때 일주일간 그렇게 엉엉 울면서 한 기도는 정말 많은부분 감정에 의존된 기도였고 어떻게 보면 그냥 그 상황을 이겨내 보려했던 몸부림 이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육아에 어느정도 자신이 있었던 내게 산후우울증 기간 중 하나님께서 찬양을 통해 보내주신 위로와 나로 하여금 입술로 선포하게 하신 그 고백들이 일시적이고 헛되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물론 지금도 그 기도를 드릴때 마다 한편으로는 마음이 놓이면서도 한편으로는 무겁다. 내가 주님께 내 자신을 맡겨드리며 그 안에서 평안을 누리고 주님의 선하심을 맛보아 아는거랑 내 딸을 드리는거랑은 차원이 다른것 같다. 하루는 우리 딸이기에 너무 사랑하고 소중한 우리 딸이기에 어렵다. 믿는다고 이야기 하면서도 참 어렵다.  그래도 할수없다. 주님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았다면, 내 자신의 연약함을 이 정도 마주해 보았다면 결론은 갈대상자다. 나는 내 힘과 의지로 하루를 세상과 구별되게 거룩하게 키울 수 없다는걸 알 수 있었다. 호르몬 하나만 잘못나와도 감정에 휘청휘청 눈물쏟고 정신못차리는 연약한 내가 어떻게 이 험난한 세상에서 아이를 거룩하게 키울수 있겠는가 말이다. 그래서 산후 우울증의 경험은 참 힘들었지만 은혜였고 나의 연약함을 위로해 주신 주님의 부드럽고도 강한 손길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다.

산후우울증은 출산 4일 후 정도부터 시작되어 일주일정도 내안에 머물다 가셨다. 물론 그러고 나서도 첫 한달은 정말 고생스러 웠지만 (특히 잠을 못자는 부분은 정말 ㅠㅠ) 모성애가 점점생기며 아이는 이뻐져만 갔고 갈대상자 기도는 여전히 어렵지만 조금씩 편안해 지고 있는것 같다. 이러다 또 어려운 순간이야 계속 오겠지만 말이다.

남편과의 갈등_하루의 잠훈련

100일이 거의 다 되어가는 어느날 주위 사람들의 권유와 이런저런 육아책을 통해 아기 잠훈련이라는게 존재 한다는걸 알게 되었다. 여러 잠훈련이 있지만 우리 주위사람들이 사용한 방법은 cry it out 훈련법이였고 이건 아이에게 어느정도 기간동안 규칙적인 잠자기전 루틴을 만들어주고 (예를 들어 목욕을 시키고 책을 한권읽어주고 특정 노래를 틀어주며 조명을 어둡게 해주는것을 항상 같은시간에 규칙적으로 해주면서 아이에게 잠잘 시간이라는 싸인을 알려주는것) 아기를 침대에 눕힌다. 그럼 아기가 처음에는 당황스러워 엉엉 울지만 하루 이틀 삼일 정도를 그냥 울리면 아무리 울어도 이 시간에는 스스로 자야되는구나 알아채고 안아주지 않아도 일정시간에 침대에 눕히기만 하면 혼자 잘줄 아는 착한 아기가 되는거다! 그냥 듣기에는 정말 혹하고 책에 나온데로만 하면 혹시 우리아기도 되지 않을까 하는 희망에 우리 부부도 이 스토리 저 스토리 기웃기웃 거리며 나름 공부도하고 조언도 듣고 100일이 지나면 한번 해볼까 생각을 해보고 있었다. 마침 나도 허리가 많이 안좋았고 아기가 내 품에서만 자려고 해서 육체적으로 무리가 있기도 했다.

그런데 막상 잠 훈련을 시작하려니 마음이 썩 내키지 않았다. 아기라서 당연히 엄마가 필요한건데 굳이 애를 띄어놓고 어차피 밥중 수유도 두번 정도 했을때라 왔다갔다 해야하는데 울리면서 까지 훈련을 해야하나 싶었다. 하지만 남편의 생각은 달랐다. 남편은 회사갔다와도 항상 아기 보느라 바쁜 나랑 둘만의 시간이 그리웠고 아기가 일찍 혼자서 자주기만 한다면 (당시 하루는 11시 12시까지도 잘 안잤다) quality 시간을 보낼 수 있을텐데 하며 저녁을 먹고나면 노란색 잠훈련 책을 쥐고 이렇게 하면된데 저렇게 해야된데 하며 은근히 잠훈련을 지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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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매일 이렇게 자고싶었던 하루와나

그러던 어느날 사건이 터졌다. 우리는 일단 하루에게 잠잘 시간이라는 사인을 가르쳐 주어야 할 필요가 있다 생각이 들어 일단 하고 있던 루틴의 시간을 조금 앞당기고 하루가 그 시간에 졸릴 수 있게 준비시킨 후 잠훈련을 시작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런데 그날 하루를 재우는 중 갑자기 배가 너무 아파 남편에게 잠깐 아이를 맡기고 화장실을 다녀와야 하는 일이 발생했다. 예상대로 하루는 내 품을 떠난 순간부터 울기 시작했고 (우리하루는 울음소리가 정말정말 크다. 비명수준) 나는 어쩔수없이 그런 아이를 뒤로하고 화장실로 뛰어 들어갔다. 그렇게 5분정도 울음소리는 그치지 않고 후다닥 뛰어나왔는데 왠걸 남편이 하루를 그냥 아기침대에 눕혀놓고 본인도 벌러덩 우리침대에 누워있는게 아닌가. 매일매일 최대한 하루가 울지 않도록 편안하게 재워주려고 노력한 나로서 5분을 안아주지 않는 남편이 너무너무 미웠다. 나도 모르게 신경질을 부렸고 오빠도 미안했는지 사과했다. 그 일 이후 나는 나의 고충을 남편과 나누고자 금요일밤에는 남편이 하루를 재우는걸로 하자고 약속했고 대망의 그 다음주 금요일밤이 왔다. 사건 당일 항상 안아주던 엄마는 누워있고 아직은 아빠 품이 조금은 낯설었던 하루는 시작부터 엉엉 울기 시작했고 남편은 최대한 아이를 달래보려고 바운스도 해보고 품에도 안아보고 여러가지 방법을 동원해 하루를 진정 시켜보려 했다. 하지만 하루는 좀처럼 울음을 그치지 않았고 계속 우는 아이와 힘들어하는 남편을 옆에 두고 나도 두다리 뻗고 잘수가 없었다. 급기야 나는 옆에서서 이렇게 해보면 어떨까? 저렇게 해보면 어떨까? 그냥 내가 할까? 하며 참견을 하기 시작했고 계속 커져가는 하루의 울음소리와 함께 남편의 표정도 점점 굳어져 갔다. 그리고 얼마후 남편의 얼굴이 정말 심상치 않게 변하더니 하루를 향해  야! 백하루! 하면서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평소에 단한번도 화를 내거나 소리를 지르는건 본적도 없고 심지어 화를 내는 사람을 잘 못견디고 내겐 언제나 자상하고 착한 남편인데 갑자기 돌변하는 모습을 보니 적지않은 충격과 실망이 한꺼번에 몰려왔다. 나도 모르게  순간적으로 “미쳤어?! 이리줘! 차라리 나한테 그래!” 하며 엄청나게 방어적으로 남편을 공격했고 남편은 그런 내 태도에 상처를 받고 하루는 내 품으로 돌아와서야 울음을 그쳤다.  부끄럽지만 이 작은 사건으로 우리 부부는 다음날까지 침묵과 말다툼을 이어갔고 이는 결혼한 후 가장 괴로운 부부싸움 이였다.

부부싸움을 통한 은혜

하지만 한편으로는 우리 서로에게 wake up call이 되었다. 일단 매일밤 하루는 재우는 시간마다 남편과 알게모르게 잠훈련을 하냐마냐 기싸움을 하며 난 남편에게 submit하고 싶지 않아졌고 이는 가정의 질서가 무너지고 있다는 분명한 싸인이였다. 이는 내가 엄마 이상향에도 썼듯이 지금까지 생각해오고 바래온 엄마의 모습도 아니고 아내의 모습은 더더욱 아니였다. 이쯤됬을때 잠훈련은 더이상 이슈가 되서는 안된다 생각이 들어 남편의견에 동의하기로 마음먹었고 눈물을 머금고 6일간의 시도끝에 하루는 한동안 혼자서도 잘 자는 착한아기가 되주었다. (그러고 한국을 다녀오니 다시 원상복귀 되었지만..)

6일간도 사실 너무 괴로웠다. 아기가 우는데 안아주고 싶은데 중간에 안아주면 지금까지 힘겹게 훈련해온게 다 무너지기 때문에 안아줄 수도 없고, 4일째 되는날인가 뽀얀 얼굴을 자기 손톱으로 죄다 할퀴어 놓아 마음이 찢어지게 아프게도 했고.. 첫 아기라 부족한 엄마아빠 때문에 시행착오도 많고 우리가 체택한 방법들이 다 옳지도 틀리지도 않았던거 같다. 잠훈련에 관해서도 여러가지 의견이 나뉘지만 어릴적 잠훈련을 잘못받아서 잠을 못자는 어른없고, 잠훈련 방법이 잘못되어서 정서가 불안하다는 얘기도 나는 못들어봤다. 하지만 아빠와 엄마의 관계가 아이정서에 미치는 영향은 매우 가중치가 높고, 가정의 질서가 무너졌을때 나타나는 불안한 증상들 또한 아이 교육에 별로 효과적이지 않을거라 생각이 든다.

이런 의미에서 그때 그 다툼은 우리부부에게 은혜였다. 처음으로 의견대립을 겪고 그럴수록 더 하나 되어야 한다 느꼈고. 하나님은 우리의 육아과정을 통해 무엇을 보고 계실까 다시한번 생각 해 보게 되었다. 얘네들이 어떤 방법의 잠훈련을 택하려나, 이유식으로는 처음 무엇을 먹일것인가 에 초점을 두실까 아니면 서로의 다름속에서 부부가 어떻게 하나되려 힘쓰고 아기를 허락 하시면서 가정가운데 심어두신 하나님의 질서를 지키는데에 있어 얼마나 힘쓰고 있는지에 더 관심을 갖고 계실까. 답은 너무 확실했다.

아이와의 갈등_유별난 아이

하루는 유모차를 타지 않는다. 카시트도 최대 한시간, 그 이상은 상상하기 어렵다. 하루는 좋고 싫음이 분명하다. 좋으면 솜사탕 다 녹여버릴듯한 미소를 살살 짓지만 싫으면 비명을 지르며 울어버린다. 그리고 하루는 엄마 껌딱지다. 집에서는 저녁시간마다 아빠랑 목욕을 시작하고 나서부터 아빠랑도 잘 놀지만 잘때나 밖에 나갈때 특히 교회에서는 내가 잠시라도 보이지 않으면 아주아주 크게 생때를 부린다. 6개월까지는 그러려니 했다. 애들도 다 그러고 원래 아기들이 다 그런거니까. 그리고 나를 특별하게 너무너무 좋아하는 딸이 사실은 기특하고 좋았다. 그런데 7개월8개월9개월이 되어도 나만 찾고 아빠에게 가서 조차도 때를 부리는 하루 덕분에 예배를 드릴 수 없게된건 오래전 그나마 찬양시간이라도 마음껏 찬양할 수 있어 좋았던 찬양팀 마저도 내려놓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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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쟁이

아기니까 충분히 그럴 수 있어. 찬양팀 하기에는 아기가 너무 어리지. 그래, 굳이 합리화를 하자면 충분히 할 수 있다. 하루를 사랑하고 어느 순간에도 감싸주고 싶은 하루엄마니까. 그런데 문제는 내가 속한 커뮤니티, 꼭 찝어 말하자면 우리 교회에는 하루또래 아이들이 너무나도 많다는 점이다.

어느날 부터 교회에 가는것이 부담스러워졌다. 주일날 예배를 제대로 드리지 못하니 주일예배에 대한 기대는 사라진지 오래고 이제는 그냥 예배드리러 가는거 조차 마음이 힘들어졌다. 공교롭게도 교회에 예배드리러 오는 하루 또래 아이들은 하나같이 순하고 얌전한편이고 (적어도 내가 보기에는) 그에 비해 우리하루는 내가 찬양하러 갈때면 교회가 떠나가라 가장 큰 목소리로 매주 울었다. 같이 찬양팀에서 섬기는 언니네도 하루보다 두달 어린 아기가 있는데 그 아이는 아빠랑도 즐거워하면서 잘있고 엄마 연습할때 유모차 타면서도 생글생글 웃어가며 잘 있는데, 우리하루는 아빠랑 있는것도 not okay 그렇다고 내 앞에 유모차타고 앉아 있는것도 not okay 그럼 내가 안고 노래를 불러야하는데 연습하는 동안 하루를 힙시트에 앉히고 한시간, 한시간 반 찬양을 하고 나면 은혜는 커녕 허리도 아프고 정신도 없어 끝나면 내가 뭘 한거지 할때도 많았다. 그렇게 하루 이틀지나니 나도 모르게 하루를 다른 아이들과 비교하고 있었고 이에 맟선 초보엄마의 반응은 매우 방어적이였다. 누구라도 우리 하루에 대해 무슨말만하면 그 말의 의미가 그런게 아닌걸 머리로는 알면서도 마음에서는 고슴도치 바늘 돋듯이 예민하게 반응했다. 하루 왜 울어 무슨일 있어? 걱정 섞인 말투로 물어오는 물음에도 입술로는 애써 웃으며 괜찮아요 하면서 속으로는 도대체 왜 묻는거야 하루이틀도 아닌데 괜히 나 민망하라고 묻는거야? 하며 괜히 화를 냈다. 심지어 오늘은 하루가 얌전하네 이런 칭찬에도 그럼 얌전 안 한 날에는 속으로 흉 봤다는거야? 이런 생각을 하며 빌빌 꼬았다. 그렇게 주일날 하루종일을 사실은 하루에 대한 불만을 모두 남탓으로 돌리고 나서 집에오면 내가 너무 악해서 너무 한심해서 마음이 힘들고 은연중에 이애 저애한테 하루를 비교했다는 생각에 하루에게 너무 미안하고 괴로웠다.

약한 나를 통한 하나님의 은혜

더이상은 안되겠다 싶어 이 기도제목을 조심스레 목장에서 나누었고 무엇이 잘 못되었는지 하나님께 묻기 시작했다. 사실 기도제목을 나누는것 조차 정말 두려웠다 우리 목장에도 하루또래 아기들이 있고 내가 이렇게 이야기하면 그 동안 내 행동들이 가식적으로 느껴질수도 있을 법하고 약간 자폭하는 느낌도 들어서 많이 고민했다. 오해받을 여지가 충분했지만 그래도 내 나름대로는 충분히 설명을 하고 나의 약함을 나누었다. 나의 약함을 인정하고 나눌때 그리고 하나님께 구할때 주님께서 역사할거라 믿었고 무엇보다도 좁아터진 내 마음이 아닌 하나님의 마음으로 하루를 품고 받아주고 사랑해 주고 싶었다.

그후 한주간 하나님은 여러가지 방법으로 나를 위로하셨다. 우선은 한주동안 여기저기서 우연히 들려온 찬양이 한 곡 있었는데 다름아닌 올드클래식 “약할때 강함 되시네” 였다. 일단은 네가 아무리 약해도 내가 강하니까 괜찮아 got your back이런 느낌으로 다가와 너무 감사했다. 그리고는 내 안에 있던 교만했던 모습들을 많이 깨우쳐 주셨다. 사실 일본에서 선교생활중 유치원에서 섬겼던 적이 있었고 유치원에서 tough했던 아이들을 나름 잘 타이르고 참여시키고 했던 기억에 좀 유별난 아이도 잘 다룰수 있을거란 교만이 있었다. 게다가 하루를 10개월간 키워오며 첫 5주간은 정말정말 힘들었지만 그 후 산후조리가 끝나고 집에 돌아와서는 하루를 보면서 집안일 하는것도 그렇게 어렵지 않았고 오빠가 출장갔을때 부터는 당분간 혼자서 목욕도 시키고 하며 육아에 자신감이 붙었었는데 그러면서 동시에 아이를 갈대상자에 넣어야 한다는걸 시시때때로 까먹고 교만해져 있던 내 모습도 보여주셨다.

그리고 가장 근본적인 잘못을 뉘우치게 해 주셨다. 바로 내 안에 바로서지 못한 우선순위였다. 엄마가 된 후 주님을 가장 사랑하는것 아니 예수님만을 사랑하는게 불가능해 진것 같은 정도로 아이가 눈에 머리에 마음에 들어오다보니 내 안에 우선순위가 엉망이 되어버렸다. 예배도 드리고 말씀도 읽고 기도도 하지만 전처럼 하나님과 친밀한 교제가 없었고 그 친밀함을 사모 하면서도 어떻게 가야할지 알면서도 마음처럼 잘 되지 않았다. 나의 경우 우선순위에 문제가 있었고 하나님 없이 내 아이조차 있는 그대로 받아드리며 사랑해 주지 못하는 나의 약함을 보여주신 것이다. 낙심되어 있는 찰나 주님께서 또 다른 이번에는 설교말씀으로 내가 희망을 주셨다. 이번에도 이찬수 목사님 설교였는데 최근에 대체 설교로 들려주신 “갈수록 아름다운 인생” 이라는 제목이였다. 설교중 목사님께서 “저는 제10대보다 20대가, 20대보다는 30대가, 30대보다는 40대가, 40대 보다는 지금이 훨씬 아름다워요. 제 내면이 말이에요.” 이런말씀을 하신다. 목사의 자리에서 얼마나 많은 훈련과 단련의 시간을 통해 깎아지고 또 깎아지고 아름답게 빚어지고 계실까.. 그 말씀을 듣고나니 인생은 기나긴 경주와 같고 나도 그 경주를 뛰며 인내하고 넘어져도 일어서고 하며 비록 지금은 잠시 하나님과의 친밀감을 잃은것 같고 앞으로도 전처럼 교제할 수 있을까 고민하지만 오직 은혜로 나의 내면도 30대도 20대보다는 더, 40대는 30대보다도 더 하나님과의 친밀함을 통해 아름답게 빚어 질거라는 막연한 믿음이 들었다.

많이 회개했다. 정말 많이 회개했다. 그러고 나니 정말 나의 약할때 강함이 되어주신 하나님의 은혜가 더욱더 크게 느껴지고 하루의 유별남에 대해서도 많이 편안해 졌다.

이제 시작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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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스런 우리딸 하루

아직 1년도 안됬을 뿐더러 시작일 뿐이다. 지금까지 맛본 엄마의 세계는 정말 신비롭고 경의롭고 감사하다. 특히 모성애는 인생이 만약 게임이라면 내가 할 수 없는 일까지도 하게끔 만드는 엄청난 아이템같은 느낌이면서도 자칫잘못하다가는 내 인생의 약함을 진짜로 강함으로 바꾸어주는 주님을 뒷전으로 생각 하게 할만큼의 파괴력도 갖고 있는 무서운 놈같다. 하지만 모성애 또한 주님께서 주신 선물이기에 그분의 질서안에서 감사히 누리고 잘 사용 해 보고 싶다.

 

엄마로,부모로 Ch 1 – 엄마 이상형

2015년 10월29일 16시04분. 기다리고 기다리던 딸과 첫 눈을 맞추었다. 3.1kg에 50cm 밖에 안되는 이 조그마한 사람이 자그마치 10개월간 내 속에 있다가 손가락 10개 발가락10개 다 달고 나와 가슴위에 올라와 있다는게 실감이 잘 안났다. 하지만 아기가 나오기 바로직전 얼마후 처음 겪게 될 예측가지 않는 상황과 고통에 대한 두려움의 눈물은 어느샌가 감사와 감격의 눈물로 바뀌어져 있었고 그 순간 내 품안에 안긴 따끈따끈한 쪼그만 심장이 콩닥콩닥 뛰는 움직임이 느껴질때 마다 마음속으로 무조건 다짐할 수 있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엄마가 꼭 너를 지켜줄께’ 하고. 그렇게 나는 엄마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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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출산 직전 남편과 까불며 놀던 나                       2.하루가 나오자마자 엄마가 된 순간

엄마가 된다면 뭔가 좀 더 성숙해 지고, 그동안 고치지 못했던 못된 습관들도 저절로 고쳐지고, 나의 이런저런 부족한 부분들이 엄마가 됨가 동시에 조금은 나아질 수 있을거란 막연한 생각을 해 왔던거같다. 하지만 기대했던것 처럼 막무가네의 성숙은 이루어 지지 않았다. 아기가 있다 뿐이지 나는 여전히 나였다. 그렇지만 한가지 다른점이 있다면 엄마이기 때문에 ‘성숙’의 단계로 나아갈 수 있도록 push하는 요소들이 몇가지 생겼다는 점이다. 내 안에 어느 순간부터 ‘난 이런 엄마가 되고 싶어’라는 기대치가 있다는걸 발견했고 그 뿌리로 되돌아 가 보니 그곳에는 다름아닌 그동안 나를 키워주신 우리엄마의 모습이였다. 엄마가 된 후에 가장 많이 감사하고 미안하고 놀라운 사람, 우리 엄마. 엄마가 된 나의 이야기 이전에 먼저 엄마를 통해 만난 나의 ‘엄마 이상향’을 먼저 소개 하고 싶다.

 나는 우리엄마 같은 엄마가 되고 싶었다.

남편과 연애시절 이런저린 이야기를 하다가 남편이 물었다. “민경이는 삶을 통틀어 롤모델로 삼고 싶은 사람이 있어?” 참 다른 성향에 참 다른 환경에서 자라온 우리둘. 남편의 이 질문은 내겐 너무 생소한 topic이였다. 롤모델이라.. 물론 이런 저런 분야에서 존경하는 사람이야 있어봤지만 롤모델이 엄청많았고 앞만보고 열심히 달려온 남편에 비해 나는 비교적 순간순간을 즐기는 ESFP성향에 예수님 외에는 딱히 힘써 닮고싶다 느껴본적이… 그때 딱 한명 생각나더라. 맞다. 그때 생각났던 그 사람이 바로 우리 엄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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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랑 시에틀 여행중_SAM

엄마는 나랑 참 다르다. 나는 얼굴도 성격도 완전 아빠를 닮았고 엄마랑은 사실 많이는 닮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자라면서 엄마는 내가, 나는 엄마가 답답할 때도 많았지만 (엄마는 매사에 신중하고 생각이 많고 조심하고.. 나는 매사에 급하고, 즉흥적이고) 그래서 인지 또 엄마의 조언은 거의 단 한번도 빗나가 본 적이 없다. 나를 완벽하게 파악하고 있어서 이기도 하겠지만 그 이상으로 날 너무나도 잘 아는 엄마는 항상 그녀만의 현명함과 mother instinct로 내가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이렇게만 얘기하면 너무 카운슬러같은 느낌만 들지몰라 소개를 조금 더 덫붙이자면 우리 엄마는 누구보다도 사랑이 많고 눈물도 많고 사진처럼 가장 소녀스러우면서도 가장 엄마다운 멋진 사람이다.

섬기는 사람

어릴적 부터 엄마는 나와 내 동생과 잘 놀아주셨다. 같이 원카드도 많이 했고 우리를 데리고 롯데월드에 놀러갈때도 굳이 한강유람선을 태워갈 만큼 (아기를 한명만 낳아보아도 그게 어른으로서 얼마나 번거로운 일인지 알 수 있을꺼 같다.) 우리가 좋아하고 재미있어 하는것들을 최대한 경험시켜 주는 열정이 있으셨다. 이런 엄마의 열심은 하나님 앞에서도 한결같았고 내가 기억하는 많은 엄마의 모습들 중에서도 섬김의 자리에서 순종하는 엄마의 모습은 내 마음속에 가장 진하게 남아있다. 엄마는 내가 어릴적부터 몸된 교회에서의 섬김을 그치지 않으셨다. 내가 이러한 엄마의 모습을 기억하는 시작점인 초등학교 4학년 가족들이 모두 함께 중국에서 지냈을때 엄마는 토요일날은 한글학교 선생님으로 주일날은 주일학교 선생님으로 섬김을 시작하셨다. 학교에 와있으면 다른애들은 다 혼자 와있는데 나는 옆반에 우리 엄마가 있었고 주일날은 유년뷰 예배실에서 엄마랑 같이 예배드릴 수 있어서 참 좋았던 기억이 난다. 특히 가장 기억에 남는건 매년 여름 열렸던 2박3일 열린 여름성경학교에서의 모습인데, 그때 어린나의 체감상 자는시간 빼고 하루종일 다른 선생님들이랑 미팅하면서 기도하고 프로그램 짜고, 프린트 물은 또 왜 그렇게 많은지 그 많은걸 공부해가면서 때로는 진행 때로는 율동 그 와중에도 밝고 행복해 보였던 엄마의 모습을 잊을 수 가 없다. 그리고 여름성경학교의 하이라이트 예수님십자가 촟불예식을 할때면 또 얼마나 울던지, 이친구 저친구 끌어안고 울면서 기도해 주고 제일 마지막에 예식이 끝나갈 때 쯔음 눈은 빨갛게 퉁퉁 부었는데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표정을 지으면서 나한테 다가와 나를 끌어안고 기도해 주고 사랑한다고 말해 주던 엄마의 온기 또한 잊을 수가 없다. 이런 엄마의 모습은 내게 어느순간 부터 엄마가 갖추어야할 당연한 characteristic이 되어버렸고 내가 엄마가 된 지금 가끔씩 우리 하루가 자란후 AWANA에 가게 된다면 또 주일학교를 시작한다면 그곳에서 혼신을 다해 섬기고 있는 내 모습을 그려보게 된다.

엄마의 이런 열정은 내가 좀 자란후에도 계속 되었다. 이번에는 목장과 어머니학교로. 내 기억이 틀리지 않는다면 아마 내가 중학교에 들어갔을때 부터 엄마는 벌써 어머니학교봉사를 시작 했던것 같다. (지금까지) 지금 생각 해 보면 너무 대단하게 느껴지고 엄마가 어머니 학교를 섬기는 모습을 통해 나에게 무의식적으로 학습된 엄마로서의 모습들이 너무 마음에 들고 감사하지만 그 당시에는 엄마랑 시간을 보내고 싶었던 때 다른것도 아닌 ‘어머니 학교’ 때문에 엄마를 빼앗겨 버린게 불만 이였던적도 꽤 있었다. 물론 지금 내 자신이 엄마가 되어 생각 해 보면 이제는 이해할 수 있고 엄마가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사명에 최선을 다해 신실하게 감당 해 온 그 모습이 자식된 나와 내 동생에게 특히 장래 엄마가 될 큰딸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큰 축복 이 였던게 틀림없지만.. 그 당시 엄마의 부재로 인한 순간순간의 섭섭함을 장래에 우리 딸 하루도 느낄지도 모른다 생각하니 벌써부터 미안한 마음도 들고 또 한편으로는 아이가 내게 온 순간부터 그 아이를 위해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 할 뿐 아이를 책임지고 바른길로 인도하시는 이는 하나님이 시라는 생각 밖에 들지 않는다. 언제나 섬김의 자리에 섰던 우리엄마도 이런 마음이지 않았을까 그리고 하나님께서도 그때 이러한 엄마의 기도를 듣고 계셨고 응답하신게 아닌가 생각이 든다.

돕는베필

어릴적 부터 아빠는 우리남매에게 친구같은 아빠였다. 만화영화, 영화, 어린이잡지, 볼링과 태니스등의 스포츠, 각종 게임과 개그로 우리의 마음을 사로잡았고 우리눈에는 가장 완벽한 엔터테이너였다. 그런 아빠의 권위를 지켜주었던건 언제나 엄마의 몫이였고 (물론 많은 경우 엄마도 함께 동참해 아빠 놀리기 놀이를 하곤 했지만) 정말 중요한 순간 우리집의 가장은 아빠고 아빠가 우리집 대장이라는 개념을 알게 해 준건 엄마였다. 우리가족이 특히나 더 보수적이였던 집안은 아니였지만 저녁시간 아빠가 뭐라도 먼저 한입 드셔야 우리는 먹기 시작 할 수 있었고 어린시절 sleepover를 허락 받는일도 어디가서 놀다와도 되는지에 대한 사소한 결정도 엄마는 항상 “아빠가 허락하시면 엄마도 오케이야”였다. 미국 오기전 멀쩡히 다니던 고등학교 한한기를 남겨두고 자퇴를 선언했을때 사대에 대한 꿈이 컸던만큼 학교라는 곳에 대한 애착도 강하고 학생은 학교에 소속되어있어야 된다는 개념이 아주아주 강한 엄마로서 분명 이해할 수 없었겠지만 아빠의 최종 결정을 따라 주었고, 대학교 한학기를 남겨두고 당시 방사선 사태로 난리 였던 일본으로 선교를 다녀오면 안되겠냐고 묻는 딸에게도 엄마는 내 이야기를 충분히 들어준 후 “아빠가 허락하면 엄마도 오케이야”라며 아빠에게 결정권을 드렸다. 나에대한 아빠의 결정들 속에 분명 썩 내키지 않고, 이해 되지 않았던 결정도 있었을것같다. 그리고 어쩌면 엄마이기 때문에 더 현명히 내릴 수 있었던 결정도 있었겠지만 엄마의 이런 모습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내게 성경적 엄마상이 무엇인지 알게 해 주셨다.

첫째,‘엄마’는 집안의 숨은 리더다 .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하라, 이는 남편이 아내의 머리 됨이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 됨과 같음이니 그가 바로 몸의 구주시니라.” 에베소서5:22-23 하나님 말씀이다. 어렸을때 이 말씀을 처음 접했을 때는 왠지 남녀 차별인것 같아 별로 안좋아했던 기억이 있지만 지금에서야 비로서 이 구절이 무엇을 말하는지 조금은 알 수 있을것 같다.  나의 묵상에서 남자를 여자의 머리로 두신 하나님의 진심은 결국 가정을 축복하고자 하는 마음이 아닐까 싶다. 이 구절에서 나로 하여금 주목하게 하신 하나님의 성품은 공평의 하나님이 아닌 질서의 하나님이셨다. 이땅에도 질서가 있듯 하나님의 나라에도 질서가 있고 그 질서가 지켜질때 하나님은 기뻐하신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가 기뻐하시는 가정을 하나님의 방법으로 축복하신다. 우리엄마는 이 원리를 잘 알고 있었던것 같다. 내가 막상 엄마가 되어보니 작은 하루를 내 팔에 안고있긴 하지만 그리고 또 앞으로도 내가 이 아이를 지켜보겠다고 몸부림 쳐보기도 하겠지만 사실 이 험난한 세상속에서 내가 이 아이의 팔을 잡고 있는 다고 이 아이를 바르고 안전하게 이끌수 있다는 보장이 전혀 없고 할수도 없는 일이다. 오히려 너무 소중한 이 생명을 지켜보고 싶다는 마음에 걱정이나 한가득 늘은것만 같다. 그런데 정말 현명한 엄마라면, 현명한 아내라면 내 아이 하루를 만드시고 모든것을 주관하시는 그 분의 질서를 지킴으로서 하루에게 축복의 통로는 될 수 있는것이다. 돌아보면 지금까지 엄마는 나를 키우면서 얼마나 많은 순종의 시간과 결단을 통해 믿음에 믿음을 더 하고, 하나님을 의지하지만 인간이라 어쩔수 없는 두려움에 눈물을 지나 또 얼마나 많은 연단의 시간을 통한 깍임이 있었을지.. 생각해 보면 생각 해 볼수록 고마움과 미안함과 또 감사함에 눈물이 절로난다. 1인자는 2인자가 지켜주고 존중해 주었을때만  1인자가 될 수 있는것 같다. 2인자가 인정해 주지 않는 1인자는 존재할 수 없고, 아빠의 권위또한 엄마 만이 지켜줄 수 있는 특권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축복의 질서를 지켜내준 엄마는 집안의 숨은 리더이다.

둘째, 부부는 한편이고 또 그래야만 한다는 것이다. 이전엔 몰랐다. 엄마가 “아빠가 오케이면 엄마도 오케이”를 이야기 할때 마다 마음속에서는 ‘그래~ 아무리 엄마가 반대해도 아빠는 내 편이야, 내가 마음만 먹으면 아빠는 무조건 설득할 수 있어’ 생각했었고 쉬원하게 답을 주지 않는 엄마에 비해 언제나 설득이 가능했던 아빠에게 오케이를 듣는 것은 비교적 쉬웠고 원하는 대답을 얻은 후 엄마 앞에서 의기양양한 마음까지 들었었다. 그런데 지금 내가 아이를 낳고 생각해 보니 엄마아빠는 한편 이 였던거다. 짜고 치는 고스톱이나 다름없었던 거다. 아빠는 엄마를 사랑하기 때문에 엄마가 죽어도 싫은 결정을 오케이 하지 않았을것이고, 엄마는 아빠를 존중해주었기 때문에 하나님께 순종하는 마음으로 순종 했을것이다. 내가 기억하는한 난 항상 아빠를 통해 결정에 대한 대답만 들었지 그 중간에 엄마아빠간에 대화는 실수로도 엿들어 본적이 없다. 하지만 확신할 수 있는건 오히려 어긋난 의견 속에서 엄마아빠는 더 하나되지 않았을까 생각이 든다. 그리고 우리 부부도 하루에 대한 의견이 갈릴때에 더욱더 하나 되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믿음이 있다.

가족을 하나 되게 하는 사람

어릴적 부터 엄마는 우리집 가족 뿐만 아닌 할머니 할아버지 아빠 쪽 식구들에게도 항상 최선을 다했던 기억이 있다. 시시때때로 안부전화를 드리고, 매주말 마다 친가집 식구들끼리 할머니네 모여서 밤 늦게까지 놀다오고, 명절 기념일때 정성스레 요리하고, 미국에 와서는 작은아빠네 두 아들 모두 유학하는 동안 우리집에서 생활했었는데 완벽할수는 없었겠지만 언제나 아이들이 잘 지내는지 혹시 뭐가 먹고싶은데 못먹고 있지는 않은지 신경쓰며 정성을 다했다 . 내 기억속에 엄마가 친가집 식구들에 대한 흉을 보거나 불만을 표하거나 속상함을 내비췄던 적은 정말 없었다. 그래서 나도 당연히 결혼을 하게 되면 그냥 저절로 식구가 되고 가족이 되었으니 섭섭한것도 좀 불편한것도 그냥 넘어가고 그렇게 자연스럽게 하나가 되어가는거구나 생각이 되었다. 그런데 막상 결혼을 해보니 엄마가 우리를 키워오면서 엄마의 시댁식구들에게 베푼 섬김과 사랑이 그냥 식구가 되었기 때문에라는 이유만으로 그냥 그렇게 노력없이 이루어 지는것이 아닌것을 알게 되었다. (오해는마세요 저희 시댁 식구들도 정말 좋고 감사한 분들 이 십니다히히) 아무리 가족이 되었어도 친해지기 위해서는 그만큼 마음을 쓰고 또 마음에서 그치지 않고 어떤 방법이든 행동으로 옮겨야 한다는걸 알게되었고 또 나와는 어떻게 보면 어려운 관계일 수 있는 남편의 부모님과 가족들을 정말로 사랑하기 위해서는 모든 사랑의 조건인 나를 낮추고 남은 높이고, 이해되지 않더라도 인정하고 사랑하기로 마음먹는 희생이 따른다는걸 점차 깨닫게 되었다. 너무 엄마 자랑같아서 쓸까말까 고민을 많이 했지만 엄마가 아빠의 식구들에게 지금까지 보여준 사랑과 희생은 앞서 이야기 했던 엄마의 quality들 중에서도 나의 현재 결혼생활에 있어 가장 많이 도움이 되고 감사한 부분이다.  덕분에 나는 보다 편안하게 시댁식구들을 가족으로 받아드릴 수 있었고 살아오며 간접적으로라도 내게 가족의 하나됨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value라는것을 알게 해준 엄마에게 너무나도 고맙다.

또 한명의 ‘엄마’ 롤모델: 잠언의 현숙한 여인

자라면서 봐온 엄마의 모습 외에도 내게 엄마/아내를 통틀어 한 여자로서 강한 인상을 준 롤모델이 한분 더 계시다. 바로 그 유명한 잠언31장 후반부에 나오는 현명한 여인인데 내 자신에게 스스로 remind하는 차원에서 기록 해 보고싶다.

10 누가 현숙한 여인을 찾아 얻겠느냐 그의 값은 진주보다 더 하니라 11 그런자의 남편의 마음은 그를 믿나니 산업이 핍절하지 아니하겠으며 12 그런 자는 살아 있는 동안에 그의 남편에게 선을 행하고 악을 행하지 아니하느니라 13 그는 양털과 삼을 구하여 부지런히 손으로 일하며 14 상인의 배와 같아서 먼 데서 양식을 가져 오며 15 밤이 새기 전에 일어나서 자기 집안 사람들에게 음식을 나누어 주며 여종들에게 일을 정하여 맡기며 16 밭을 살펴 보고 사며 자기의 손으로 번 것을 가지고 포도원을 일구며 17 힘 있게 허리를 묶으며 자기의 팔을 강하게 하며 18 자기의 장사가 잘 되는 줄을 깨닫고 밤에 듣불을 끄지 아니하며 19 손으로 솜뭉치를 들고 손가락으로 가락을 잡으며 20 그는 곤고한 자에게 손을 펴며 궁핍한 자를 위하여 손을 내밀며 21 자기 집 사람들은 다 홍색 옷을 입었으므로 눈이 와도 그는 자기 집 사람들을 위하여 염려하지 아니하며 22 그는 자기를 위하여 아름다운 이불을 지으며 세마포의 자색 옷을 입으며 23 그의 남편은 그 땅의 장로들과 함께 성문에 앉으며 사람들의 인정을 받으며 24 그는 베로 옷을 지어 팔며 띠를 만들어 상인들에게 맡기며 25 능력과 존귀로 옷을 삼고 후일을 웃으며 26 입을 열어 지혜를 베풀며 그의 혀로 인애의 법을 말하며 27 자기의 집안 일을 보살피고 게을리 얻은 양식을 먹지 아니하나니 28 그의 자식들은 일어나 감사하며 그의 남편은 칭찬하기를 29 덕행 있는 여자가 많으나 그대는 모든 여자보다 뛰어나다 하느니라 30 고운것도 거짓되고 아름다운 것도 헛되나 오직 여호와를 경외하는 여자는 칭찬을 받을 것이라 31 그 손의 열매가 그에게로 돌아갈 것이요 그 행한 일로 말미암아 성문에서 칭찬을 받으리라.    잠언31:10-31

이 구절들이 마음에 정말로 와 닿기 시작한 건 결혼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나의 인생 말씀을 받았다 느꼈었던 시기였다. 앞으로 내가 안고갈 사명이라 생각하는 말씀은 이사야서 61:1-3 이긴 하지만 비슷한 시기에 이 말씀도 크게 와 닿았고 그러면서 나의 짧은 추측으로는 나의 사명과 결혼이랑 뭔가 연관성이 있지 않을까 생각을 했었다. 그래서 사실 나의 꿈은 결혼 상담이라 생각했던것도 있지만 그길이 맞는지 아니면 아닐지 아직은 잘 모르겠다 아니 점점 더 모르겠다(ㅋㅋ ) 난 그저 이 순간 배울 수 있는 것들과 할 수 있는 것들을 천천히 배워가며 해볼뿐. 내 마음에 소원함을 허락 하셨으니 이루어 가실거라 작은 믿음을 앉고 걸어가볼뿐. 어쨌든 지금까지의 결론은 사명보다도 현제 내 삶을 어떻게 살아가고 있느냐가 훨씬 중요한거 같다. 그리고 이 부분에 있어 하루도 빠짐없이 나의 약함과 마주하기 때문에 때론 낙망될 때도 있지만 약할때 강함되시는 그 분을 의지하며 다시 일어나 보는게 나의 일상의 반복이다. 언젠간 안넘어지고 몇발자국 더 걷는날도 있겠지..

다시 돌아가서! 현숙한 여인을 통해 내가 소망하게 된 엄마됨의 캐릭터는:

첫째, 여호와를 경외함. 가장 와닿는 부분은 30절이다. 고운것도 거짓되고 아름다운것도 헛되나 오직 여호와를 경외하는 여자는 칭찬을 받을 것이라. 여자이기 때문에 겉보기에 곱고 아름다운 것들에 자연스레 눈이가고 특히 아기를 낳고나니 뭔가 더 아줌마 같아 보이기 싫고 과하지 않으면서도 정돈되어 보이고 싶고 아기 낳고도 살안쩠네 예뻐졌네 이런 소리가 듣고 싶어지고 그랬다. 그런데 성경이 딱 찝어 얘기하더라 다 헛되다고. 적어도 이제 엄마가 되었으니 겉모습에 신경쓰기 보다는 아이를 위해서라도 뚜렷한 가치관이 있어야 한다 생각이 들기 시작했고 그 기준이 여호와를 경외함에서 부터 시작되고 싶다 소망한다. 왜냐하면 우리가족을 축복하고자 하시는 하나님께서 보고 계시고 또 하루가 보고 있으니까. 이 아이는 좋던싫던 나를 통해 습득할 부분이 있을테니까. 하나님을 의식하고 살아가는 삶이고 싶다.

둘째, 부지런함. 이건 내게 정말 어려운 부분이다. 일단 이 현숙한 여인은 엄청난 아침형 인간에 집안일을 완벽하게 책임져내는 부지런한 사람인거 같은데 일단 난 아침잠이 너무 달고도 많다. 지인 중에 아이 둘 엄마인데 아이들도 아직 어리고, 그런데도 하루도 거르지않고 새벽기도를 간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너무너무 도전을 받았다. 모두들 그래야 한다는건 아니지만 내게는 정말 닮고 싶은 부분이고 엄마로서 아침마다 하나님 앞에 나아가 자신을 낮추고 뜻을 여쭙고 중보자로 선다는 얼마나 귀한지.. 내 눈에도 이렇게 귀한데 하나님 눈에는 얼마나 예쁠지. 새벽기도 뿐만아닌 부지런함은 삶을 두고 도전하고 싶은 덕목이다.

세번째, 양식을 공급함. 엄마로서 이건 꼭 하고 싶다. 말씀에 나오는 여인처럼 밤잠을 조금 안자더라도 남편과 아이의 육의 강건함을 책임지고 싶다. 뭐 말은 이렇게 하지만 사실 잠이 밀려오면 이유식 한끼 만드는것도 귀찮을때도 많고 하루종일 육아하고 남편 저녁만드는건 더 귀찮을때도 많다. (남편미안..) 하지만 말씀을 읽으면 읽을수록 공급함에 대한 부담감이 든다. 특히 “남편의 마음을 그를 믿나니” “자식들은 일어나 감사하며 남편이 칭찬하기를 그대는 모든 여자보다 뛰어나다” 이런 구절들은 나를 아내로서 엄마로서 전진하게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렇게 내 역활을 충실히 다 해냈을때 남편과 아이가 내가 공급한 음식들을 맛있게 먹어주고 칭찬해 주면 정말 날아갈것 같이 좋다. 만약 하나님께서 우리 가족에게 더 많은 아이들을 보내 주셔서 아이가 둘이되고 셋이되고 넷이 될지라도 한결같이 영육의 양식을 공급할 줄 아는 엄마가 될 수 있기를 기도 해 본다.

현숙한 여인에 대해 쓰면서 그 여인의 여호와 앞에서의 행실이 가족들로 하여금 얼마나 축복에 이르게 하는지 함께 적혀진 이 성경 구절을 볼때마다 막중한 책임감을 느낀다. 하나님께서 주신 엄마라는 역활이 얼마나 소중하고 중요한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