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 포스팅에서 소개 했듯 하루는 10월29일 오후4시04분에 본인만의 언어로”Hello World!” 를 크게 외쳤고 나의 엄마 실전은 그 시간부터 지금까지 쭉 이어지고 있다. 이제 거의 일년이 다 되어가는 이 시점에서 초보 엄마가 겪은 어려움과 시련 그리고 그 과정들을 거치며 받은 은혜를 나누고 싶다.
지금까지 엄마실전은 indescribable joy 와 unpredictable chaos 의 반복, 끝없는 스스로와의 부딪침 그리고 그안에서의 작은 성장이라 할 수 있는것 같다. 하지만 이 모든과정이 한없이 사랑스러울 수 밖에 없는 이유는 얼마전까지만해도 내 안에 있던 작은 사람이 세상에 나와 상상했던것 보다도 훨씬 더 귀여워져만 가고 있는 모습을 마음껏 바라볼 수 있다는 사실 때문이 아닐까 싶다.
하지만 지금은 모든 어려움이 지나간 건지 적응된 건지 어쨌든 한숨 돌릴 만한 10개월 후, 이 모든것이 처음 시작되었던 10개월 전 처음만난 그 당혹감은 정말 말로 표현하기 힘들다.
내 자신과의 갈등_산후우울증
아기를 낳는 과정은 사실 생각했던것 보다 크게 아프거나 힘들지는 않았다. 처음부터 무통주사를 맞을거라 강한 의지를 보였지만 결국 예상외로 진행이 너무 빨리 되는 바람에 갖은 진통을 거의 끝까지 겪은 후 막판에 아기머리가 떨어지는게 느껴진 후에야 무통heaven을 잠시 경험했지만 push과정도 나쁘지 않았고 아무튼 생각보다 그렇게그렇게 죽을꺼같이 아프지는 않았다. 그런데! 막상 아이가 나오고 나니 병원에서는 예쁘고 신기하고 너무 좋았는데 퇴원 후 친정엄마네서 산후조리에 들어간 후로 부터는 그다지 큰 attachment를 느끼지 못했다. 오히려 졸려죽겠는데 아파죽겠는데 쉬고싶은데 한시간 혹은 두시간마다 깨서 우는 아이를 한 반나절이라도 좋으니까 아니 한 5시간만이라도 누구한테 좀 맡겨 버리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그러다 보니 나는 왜 모성애가 생기지 않을까 죄책감이 스멀스멀 들어오기 시작하고 회사간 남편만 보고싶고 다헐어 옷만 스쳐도 따가운 젖꼭지를 있는 힘껏 한시간 두시간에 한번씩 빨아대는 아이는 밉고 하루종일 눈물만 나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부터는 “나 왜 우는거야, 속상하지도 않은데 눈물이 계속나 이상해..” 이러면서 엄마한테 하소연을 하면서도 엄마가 이렇게 날 키웠다는걸 생각하니 눈물을 더 주체 할 수가 없었다.
엄마가된 후 처음 만난 은혜
아기 기저귀 하나 가는데도 이렇게 오래걸리고, 기저귀갈아주다가 애기가 오줌싸서 옷갈아 입혀야 하면 너무 좌절스러워 때론 눈물도 나고, 젖을 물릴때 마다 언제쯤에서야 안아파질까, 하루가 새벽4시까지는 한시간 혹은 한시간 반에 한번씩 깨기 때문에 어차피 잠도 못자는 밤이 오는게 너무 두렵기만 했었다. 언제쯤에야 이 반복되는 과정들이 조금이나마 쉬워질까 속으로 백번씩 되세기며 말로 다 할 수 없는 하루하루를 보내는 가운데 내게 가장 위로가 된건 무엇보다도 찬양이였다. 텐트메이커_예수나의 치료자. 지금들어도 마음이 찡하다.
나의 몸은 치유가 필요했고 마음은 위로가 필요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이 곡을 통해서 생각지 못했던 나의 darkest hour에 나를 만나주셨다. 다른누가 보면 생명이 태어난 이 귀한 시간이 무슨 darkest hour냐고 이야기 할 수 있냐 할 수 있겠지만 그래서 또 아이를 낳고 첫 한주간 찾아온 산후우울증 그 힘들었던 시간을 그 누구에게도 나누기가 어려웠지만 그 시간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내게서 받고자 하셨던 헌신이 있었고 이를 통해 축복하기를 원하셨다.
시간을 되돌려 하루를 낳기 일주일전, 하루는 예정일이 일주일이 지난후 세상에 나왔고 덕분에 나는 나에게 남은 일주일을 그동안 많이 못한 걷기운동과 여러가지 설교를 찾아 들어가며 나름의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러다 우연히 podcast를 통해 접한 이찬수 목사님의”한나처럼, 사무엘처럼” 이라는 설교를 듣게 되었다. 설교내용을 간추리자면 약속으로 받은 아이에 대한 한나의 한결같은 태도를 통해 진짜로 아이를 주님께 맡겨드리는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말씀 하셨고 또우리모두는 아이를 키우는데 있어 하나님께 내려놓고 모세의 어머니가 모세를 갈대상자에 넣어 떠나 보냈던것 처럼우리 또한 믿음으로 아이를 갈대상자에 넣어 떠나 보낼 수 있어야 한다고 하셨다. 갈대상자의 원어에는 노아에 방주에 쓰였던 단어가 들어가있고 그 단어의 뜻은 구별됨, 거룩함이라고, 크리스챤으로서 세상과 구별되게 거룩하게 아이를 키워야 한다고 말씀 하셨다. 덫붙여 갈대상자를 자꾸 열어보면 열어볼수록 물이 들어가기 때문에 한번 맡겨 드린 아이 주님께서 책임 지시도록 기도하며 믿음으로 서야한다고. 이 말씀이 마음에 콕 와닿았다. “그래.. 이 험난한 세상 내가 컨트롤 할 수 있는것이 별로 없고 있다한들 내 마음하나도 잘 지켜내지 못하는 내가 우리 아이 마음을 어떻게 지켜줄수 있겠어요.. 주님께 맡겨드립니다. 우리 딸 하루 갈대상자에 넣어 주님께 맡겨드리니 주님께서 이 흉흉한 세상에서 지켜주시고 항상 동행해 주시고 진리가운데 거하는 기쁜딸 되도록 함께 해 주세요.” 이렇게 기도하며 다짐했었다. 그런데 그러고 일주일 후 막상 현실속에서 우리딸이 내 앞에 나타나 곤히 자고 있는 모습을 보니 맡겨드릴 수가 없었다. 내가 책임지고 내가 지켜주고 싶은 마음이 앞섰지 이제 내게 막 와준 이 귀여운 아가를 갈대상자에 넣어 다시 주님께 드립니다의 기도를 진심으로 하기가 너무 어려웠다. 이런 내 마음을 아셨는지 출산 후 몇일 지나지 않아 주님께서는 산후 우울증을 통해 하나님께 아이를 맡기지 않으면 안되겠금 상황을 몰아가셨다. 하루에게 젖을 물리며 예수나의 치료자를 들으면서 정말 매일 엉엉울면서 기도했다 “주님 난 정말 못하겠어요. 주님이 키워주세요. 중간에 열어보지도 못하도록 갈대상자도 꽁꽁 묶어서 주님께 맡겨 드릴께요” 이렇게 말이다. .
물론 그때 일주일간 그렇게 엉엉 울면서 한 기도는 정말 많은부분 감정에 의존된 기도였고 어떻게 보면 그냥 그 상황을 이겨내 보려했던 몸부림 이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육아에 어느정도 자신이 있었던 내게 산후우울증 기간 중 하나님께서 찬양을 통해 보내주신 위로와 나로 하여금 입술로 선포하게 하신 그 고백들이 일시적이고 헛되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물론 지금도 그 기도를 드릴때 마다 한편으로는 마음이 놓이면서도 한편으로는 무겁다. 내가 주님께 내 자신을 맡겨드리며 그 안에서 평안을 누리고 주님의 선하심을 맛보아 아는거랑 내 딸을 드리는거랑은 차원이 다른것 같다. 하루는 우리 딸이기에 너무 사랑하고 소중한 우리 딸이기에 어렵다. 믿는다고 이야기 하면서도 참 어렵다. 그래도 할수없다. 주님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았다면, 내 자신의 연약함을 이 정도 마주해 보았다면 결론은 갈대상자다. 나는 내 힘과 의지로 하루를 세상과 구별되게 거룩하게 키울 수 없다는걸 알 수 있었다. 호르몬 하나만 잘못나와도 감정에 휘청휘청 눈물쏟고 정신못차리는 연약한 내가 어떻게 이 험난한 세상에서 아이를 거룩하게 키울수 있겠는가 말이다. 그래서 산후 우울증의 경험은 참 힘들었지만 은혜였고 나의 연약함을 위로해 주신 주님의 부드럽고도 강한 손길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다.
산후우울증은 출산 4일 후 정도부터 시작되어 일주일정도 내안에 머물다 가셨다. 물론 그러고 나서도 첫 한달은 정말 고생스러 웠지만 (특히 잠을 못자는 부분은 정말 ㅠㅠ) 모성애가 점점생기며 아이는 이뻐져만 갔고 갈대상자 기도는 여전히 어렵지만 조금씩 편안해 지고 있는것 같다. 이러다 또 어려운 순간이야 계속 오겠지만 말이다.
남편과의 갈등_하루의 잠훈련
100일이 거의 다 되어가는 어느날 주위 사람들의 권유와 이런저런 육아책을 통해 아기 잠훈련이라는게 존재 한다는걸 알게 되었다. 여러 잠훈련이 있지만 우리 주위사람들이 사용한 방법은 cry it out 훈련법이였고 이건 아이에게 어느정도 기간동안 규칙적인 잠자기전 루틴을 만들어주고 (예를 들어 목욕을 시키고 책을 한권읽어주고 특정 노래를 틀어주며 조명을 어둡게 해주는것을 항상 같은시간에 규칙적으로 해주면서 아이에게 잠잘 시간이라는 싸인을 알려주는것) 아기를 침대에 눕힌다. 그럼 아기가 처음에는 당황스러워 엉엉 울지만 하루 이틀 삼일 정도를 그냥 울리면 아무리 울어도 이 시간에는 스스로 자야되는구나 알아채고 안아주지 않아도 일정시간에 침대에 눕히기만 하면 혼자 잘줄 아는 착한 아기가 되는거다! 그냥 듣기에는 정말 혹하고 책에 나온데로만 하면 혹시 우리아기도 되지 않을까 하는 희망에 우리 부부도 이 스토리 저 스토리 기웃기웃 거리며 나름 공부도하고 조언도 듣고 100일이 지나면 한번 해볼까 생각을 해보고 있었다. 마침 나도 허리가 많이 안좋았고 아기가 내 품에서만 자려고 해서 육체적으로 무리가 있기도 했다.
그런데 막상 잠 훈련을 시작하려니 마음이 썩 내키지 않았다. 아기라서 당연히 엄마가 필요한건데 굳이 애를 띄어놓고 어차피 밥중 수유도 두번 정도 했을때라 왔다갔다 해야하는데 울리면서 까지 훈련을 해야하나 싶었다. 하지만 남편의 생각은 달랐다. 남편은 회사갔다와도 항상 아기 보느라 바쁜 나랑 둘만의 시간이 그리웠고 아기가 일찍 혼자서 자주기만 한다면 (당시 하루는 11시 12시까지도 잘 안잤다) quality 시간을 보낼 수 있을텐데 하며 저녁을 먹고나면 노란색 잠훈련 책을 쥐고 이렇게 하면된데 저렇게 해야된데 하며 은근히 잠훈련을 지지했다.

그러던 어느날 사건이 터졌다. 우리는 일단 하루에게 잠잘 시간이라는 사인을 가르쳐 주어야 할 필요가 있다 생각이 들어 일단 하고 있던 루틴의 시간을 조금 앞당기고 하루가 그 시간에 졸릴 수 있게 준비시킨 후 잠훈련을 시작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런데 그날 하루를 재우는 중 갑자기 배가 너무 아파 남편에게 잠깐 아이를 맡기고 화장실을 다녀와야 하는 일이 발생했다. 예상대로 하루는 내 품을 떠난 순간부터 울기 시작했고 (우리하루는 울음소리가 정말정말 크다. 비명수준) 나는 어쩔수없이 그런 아이를 뒤로하고 화장실로 뛰어 들어갔다. 그렇게 5분정도 울음소리는 그치지 않고 후다닥 뛰어나왔는데 왠걸 남편이 하루를 그냥 아기침대에 눕혀놓고 본인도 벌러덩 우리침대에 누워있는게 아닌가. 매일매일 최대한 하루가 울지 않도록 편안하게 재워주려고 노력한 나로서 5분을 안아주지 않는 남편이 너무너무 미웠다. 나도 모르게 신경질을 부렸고 오빠도 미안했는지 사과했다. 그 일 이후 나는 나의 고충을 남편과 나누고자 금요일밤에는 남편이 하루를 재우는걸로 하자고 약속했고 대망의 그 다음주 금요일밤이 왔다. 사건 당일 항상 안아주던 엄마는 누워있고 아직은 아빠 품이 조금은 낯설었던 하루는 시작부터 엉엉 울기 시작했고 남편은 최대한 아이를 달래보려고 바운스도 해보고 품에도 안아보고 여러가지 방법을 동원해 하루를 진정 시켜보려 했다. 하지만 하루는 좀처럼 울음을 그치지 않았고 계속 우는 아이와 힘들어하는 남편을 옆에 두고 나도 두다리 뻗고 잘수가 없었다. 급기야 나는 옆에서서 이렇게 해보면 어떨까? 저렇게 해보면 어떨까? 그냥 내가 할까? 하며 참견을 하기 시작했고 계속 커져가는 하루의 울음소리와 함께 남편의 표정도 점점 굳어져 갔다. 그리고 얼마후 남편의 얼굴이 정말 심상치 않게 변하더니 하루를 향해 야! 백하루! 하면서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평소에 단한번도 화를 내거나 소리를 지르는건 본적도 없고 심지어 화를 내는 사람을 잘 못견디고 내겐 언제나 자상하고 착한 남편인데 갑자기 돌변하는 모습을 보니 적지않은 충격과 실망이 한꺼번에 몰려왔다. 나도 모르게 순간적으로 “미쳤어?! 이리줘! 차라리 나한테 그래!” 하며 엄청나게 방어적으로 남편을 공격했고 남편은 그런 내 태도에 상처를 받고 하루는 내 품으로 돌아와서야 울음을 그쳤다. 부끄럽지만 이 작은 사건으로 우리 부부는 다음날까지 침묵과 말다툼을 이어갔고 이는 결혼한 후 가장 괴로운 부부싸움 이였다.
부부싸움을 통한 은혜
하지만 한편으로는 우리 서로에게 wake up call이 되었다. 일단 매일밤 하루는 재우는 시간마다 남편과 알게모르게 잠훈련을 하냐마냐 기싸움을 하며 난 남편에게 submit하고 싶지 않아졌고 이는 가정의 질서가 무너지고 있다는 분명한 싸인이였다. 이는 내가 엄마 이상향에도 썼듯이 지금까지 생각해오고 바래온 엄마의 모습도 아니고 아내의 모습은 더더욱 아니였다. 이쯤됬을때 잠훈련은 더이상 이슈가 되서는 안된다 생각이 들어 남편의견에 동의하기로 마음먹었고 눈물을 머금고 6일간의 시도끝에 하루는 한동안 혼자서도 잘 자는 착한아기가 되주었다. (그러고 한국을 다녀오니 다시 원상복귀 되었지만..)
6일간도 사실 너무 괴로웠다. 아기가 우는데 안아주고 싶은데 중간에 안아주면 지금까지 힘겹게 훈련해온게 다 무너지기 때문에 안아줄 수도 없고, 4일째 되는날인가 뽀얀 얼굴을 자기 손톱으로 죄다 할퀴어 놓아 마음이 찢어지게 아프게도 했고.. 첫 아기라 부족한 엄마아빠 때문에 시행착오도 많고 우리가 체택한 방법들이 다 옳지도 틀리지도 않았던거 같다. 잠훈련에 관해서도 여러가지 의견이 나뉘지만 어릴적 잠훈련을 잘못받아서 잠을 못자는 어른없고, 잠훈련 방법이 잘못되어서 정서가 불안하다는 얘기도 나는 못들어봤다. 하지만 아빠와 엄마의 관계가 아이정서에 미치는 영향은 매우 가중치가 높고, 가정의 질서가 무너졌을때 나타나는 불안한 증상들 또한 아이 교육에 별로 효과적이지 않을거라 생각이 든다.
이런 의미에서 그때 그 다툼은 우리부부에게 은혜였다. 처음으로 의견대립을 겪고 그럴수록 더 하나 되어야 한다 느꼈고. 하나님은 우리의 육아과정을 통해 무엇을 보고 계실까 다시한번 생각 해 보게 되었다. 얘네들이 어떤 방법의 잠훈련을 택하려나, 이유식으로는 처음 무엇을 먹일것인가 에 초점을 두실까 아니면 서로의 다름속에서 부부가 어떻게 하나되려 힘쓰고 아기를 허락 하시면서 가정가운데 심어두신 하나님의 질서를 지키는데에 있어 얼마나 힘쓰고 있는지에 더 관심을 갖고 계실까. 답은 너무 확실했다.
아이와의 갈등_유별난 아이
하루는 유모차를 타지 않는다. 카시트도 최대 한시간, 그 이상은 상상하기 어렵다. 하루는 좋고 싫음이 분명하다. 좋으면 솜사탕 다 녹여버릴듯한 미소를 살살 짓지만 싫으면 비명을 지르며 울어버린다. 그리고 하루는 엄마 껌딱지다. 집에서는 저녁시간마다 아빠랑 목욕을 시작하고 나서부터 아빠랑도 잘 놀지만 잘때나 밖에 나갈때 특히 교회에서는 내가 잠시라도 보이지 않으면 아주아주 크게 생때를 부린다. 6개월까지는 그러려니 했다. 애들도 다 그러고 원래 아기들이 다 그런거니까. 그리고 나를 특별하게 너무너무 좋아하는 딸이 사실은 기특하고 좋았다. 그런데 7개월8개월9개월이 되어도 나만 찾고 아빠에게 가서 조차도 때를 부리는 하루 덕분에 예배를 드릴 수 없게된건 오래전 그나마 찬양시간이라도 마음껏 찬양할 수 있어 좋았던 찬양팀 마저도 내려놓게 되었다.

아기니까 충분히 그럴 수 있어. 찬양팀 하기에는 아기가 너무 어리지. 그래, 굳이 합리화를 하자면 충분히 할 수 있다. 하루를 사랑하고 어느 순간에도 감싸주고 싶은 하루엄마니까. 그런데 문제는 내가 속한 커뮤니티, 꼭 찝어 말하자면 우리 교회에는 하루또래 아이들이 너무나도 많다는 점이다.
어느날 부터 교회에 가는것이 부담스러워졌다. 주일날 예배를 제대로 드리지 못하니 주일예배에 대한 기대는 사라진지 오래고 이제는 그냥 예배드리러 가는거 조차 마음이 힘들어졌다. 공교롭게도 교회에 예배드리러 오는 하루 또래 아이들은 하나같이 순하고 얌전한편이고 (적어도 내가 보기에는) 그에 비해 우리하루는 내가 찬양하러 갈때면 교회가 떠나가라 가장 큰 목소리로 매주 울었다. 같이 찬양팀에서 섬기는 언니네도 하루보다 두달 어린 아기가 있는데 그 아이는 아빠랑도 즐거워하면서 잘있고 엄마 연습할때 유모차 타면서도 생글생글 웃어가며 잘 있는데, 우리하루는 아빠랑 있는것도 not okay 그렇다고 내 앞에 유모차타고 앉아 있는것도 not okay 그럼 내가 안고 노래를 불러야하는데 연습하는 동안 하루를 힙시트에 앉히고 한시간, 한시간 반 찬양을 하고 나면 은혜는 커녕 허리도 아프고 정신도 없어 끝나면 내가 뭘 한거지 할때도 많았다. 그렇게 하루 이틀지나니 나도 모르게 하루를 다른 아이들과 비교하고 있었고 이에 맟선 초보엄마의 반응은 매우 방어적이였다. 누구라도 우리 하루에 대해 무슨말만하면 그 말의 의미가 그런게 아닌걸 머리로는 알면서도 마음에서는 고슴도치 바늘 돋듯이 예민하게 반응했다. 하루 왜 울어 무슨일 있어? 걱정 섞인 말투로 물어오는 물음에도 입술로는 애써 웃으며 괜찮아요 하면서 속으로는 도대체 왜 묻는거야 하루이틀도 아닌데 괜히 나 민망하라고 묻는거야? 하며 괜히 화를 냈다. 심지어 오늘은 하루가 얌전하네 이런 칭찬에도 그럼 얌전 안 한 날에는 속으로 흉 봤다는거야? 이런 생각을 하며 빌빌 꼬았다. 그렇게 주일날 하루종일을 사실은 하루에 대한 불만을 모두 남탓으로 돌리고 나서 집에오면 내가 너무 악해서 너무 한심해서 마음이 힘들고 은연중에 이애 저애한테 하루를 비교했다는 생각에 하루에게 너무 미안하고 괴로웠다.
약한 나를 통한 하나님의 은혜
더이상은 안되겠다 싶어 이 기도제목을 조심스레 목장에서 나누었고 무엇이 잘 못되었는지 하나님께 묻기 시작했다. 사실 기도제목을 나누는것 조차 정말 두려웠다 우리 목장에도 하루또래 아기들이 있고 내가 이렇게 이야기하면 그 동안 내 행동들이 가식적으로 느껴질수도 있을 법하고 약간 자폭하는 느낌도 들어서 많이 고민했다. 오해받을 여지가 충분했지만 그래도 내 나름대로는 충분히 설명을 하고 나의 약함을 나누었다. 나의 약함을 인정하고 나눌때 그리고 하나님께 구할때 주님께서 역사할거라 믿었고 무엇보다도 좁아터진 내 마음이 아닌 하나님의 마음으로 하루를 품고 받아주고 사랑해 주고 싶었다.
그후 한주간 하나님은 여러가지 방법으로 나를 위로하셨다. 우선은 한주동안 여기저기서 우연히 들려온 찬양이 한 곡 있었는데 다름아닌 올드클래식 “약할때 강함 되시네” 였다. 일단은 네가 아무리 약해도 내가 강하니까 괜찮아 got your back이런 느낌으로 다가와 너무 감사했다. 그리고는 내 안에 있던 교만했던 모습들을 많이 깨우쳐 주셨다. 사실 일본에서 선교생활중 유치원에서 섬겼던 적이 있었고 유치원에서 tough했던 아이들을 나름 잘 타이르고 참여시키고 했던 기억에 좀 유별난 아이도 잘 다룰수 있을거란 교만이 있었다. 게다가 하루를 10개월간 키워오며 첫 5주간은 정말정말 힘들었지만 그 후 산후조리가 끝나고 집에 돌아와서는 하루를 보면서 집안일 하는것도 그렇게 어렵지 않았고 오빠가 출장갔을때 부터는 당분간 혼자서 목욕도 시키고 하며 육아에 자신감이 붙었었는데 그러면서 동시에 아이를 갈대상자에 넣어야 한다는걸 시시때때로 까먹고 교만해져 있던 내 모습도 보여주셨다.
그리고 가장 근본적인 잘못을 뉘우치게 해 주셨다. 바로 내 안에 바로서지 못한 우선순위였다. 엄마가 된 후 주님을 가장 사랑하는것 아니 예수님만을 사랑하는게 불가능해 진것 같은 정도로 아이가 눈에 머리에 마음에 들어오다보니 내 안에 우선순위가 엉망이 되어버렸다. 예배도 드리고 말씀도 읽고 기도도 하지만 전처럼 하나님과 친밀한 교제가 없었고 그 친밀함을 사모 하면서도 어떻게 가야할지 알면서도 마음처럼 잘 되지 않았다. 나의 경우 우선순위에 문제가 있었고 하나님 없이 내 아이조차 있는 그대로 받아드리며 사랑해 주지 못하는 나의 약함을 보여주신 것이다. 낙심되어 있는 찰나 주님께서 또 다른 이번에는 설교말씀으로 내가 희망을 주셨다. 이번에도 이찬수 목사님 설교였는데 최근에 대체 설교로 들려주신 “갈수록 아름다운 인생” 이라는 제목이였다. 설교중 목사님께서 “저는 제10대보다 20대가, 20대보다는 30대가, 30대보다는 40대가, 40대 보다는 지금이 훨씬 아름다워요. 제 내면이 말이에요.” 이런말씀을 하신다. 목사의 자리에서 얼마나 많은 훈련과 단련의 시간을 통해 깎아지고 또 깎아지고 아름답게 빚어지고 계실까.. 그 말씀을 듣고나니 인생은 기나긴 경주와 같고 나도 그 경주를 뛰며 인내하고 넘어져도 일어서고 하며 비록 지금은 잠시 하나님과의 친밀감을 잃은것 같고 앞으로도 전처럼 교제할 수 있을까 고민하지만 오직 은혜로 나의 내면도 30대도 20대보다는 더, 40대는 30대보다도 더 하나님과의 친밀함을 통해 아름답게 빚어 질거라는 막연한 믿음이 들었다.
많이 회개했다. 정말 많이 회개했다. 그러고 나니 정말 나의 약할때 강함이 되어주신 하나님의 은혜가 더욱더 크게 느껴지고 하루의 유별남에 대해서도 많이 편안해 졌다.
이제 시작일 뿐이다

아직 1년도 안됬을 뿐더러 시작일 뿐이다. 지금까지 맛본 엄마의 세계는 정말 신비롭고 경의롭고 감사하다. 특히 모성애는 인생이 만약 게임이라면 내가 할 수 없는 일까지도 하게끔 만드는 엄청난 아이템같은 느낌이면서도 자칫잘못하다가는 내 인생의 약함을 진짜로 강함으로 바꾸어주는 주님을 뒷전으로 생각 하게 할만큼의 파괴력도 갖고 있는 무서운 놈같다. 하지만 모성애 또한 주님께서 주신 선물이기에 그분의 질서안에서 감사히 누리고 잘 사용 해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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