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lf-counseling에서 얻은 최고의 육아팁

최근에 수강 중인 카운셀링 수업에서 삶의 고통스러웠던 순간에 대한 셀프 카운셀링 프로젝트를 과제로 받았다. 프로젝트 이름이 Suffering and Refuge 인데, 보자마자 1초의 망설임도 없이 생각난 주제가 있었다. 어쩌면 무난했다 생각할 수 있는 나의 30년 인생살이 중 그래도 ‘고통과 상처’를 논하자면 단연 생각나는 일이 였고 그 일을 주제로 삼는건 내겐 너무 당연한 일이였다. 그런데 문제가 있었다. 이 과제는 과거에 문제에 대해 기록하는 선에서 끝나는 것이 아닌 현재 나의 삶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고통에 대한 셀프 카운셀링이 주 목적이였다. 이런 맥락에서 내게 있었던 과거의 고통은 현재를 좌우 할만큼의 효능이 없었다. 이미 몇차례에 거쳐 치유된 상처였고 딱정이가 말라 떨여저 흉터조차 남아있지 않도록 주님께서 만져주셨기 때문에 굳이 과제를 위해 효능이 없는 고통을 쥐어짜낼 수는 없는 노릇이였다. 그럼 나는 고통이 없나? Suffering이라는 단어가 너무 무겁게 느껴져 무엇을 써야하나 고민 하던중 지금 현재 내가 마주하고 있는 ‘작은 고통’에 직면 해 보기로 했다.

내가 마주하고 있는 ‘작은 고통’은 다름 아닌 가끔씩 터져나오는 화(anger)였다. 화 안내는 사람이 세상 어디에 있고 잘 풀기만 하면 되지 화좀 내면 뭐가 그렇게 큰 문제인가? 오히려 화 안내고 쌓아두다 속병걸리는 거 보다 낫지! 라고 주윗사람들은 위로 해주었지만 그 안에는 나만 알 수 있는 심각성이 있고 화를 낼때는 늘 나만 아는 패턴이 있다.

나만 아는 심각성과 패턴

IMG_2910

작년에 태어난 하율이가 벌써 돌이 되었다. 그리고 내 첫사랑 하루가 누나가 된지도 1년이 되었고 우리딸은 곧 만 3살이 되어간다. 어느 엄마가 안 그러겠냐만 우리 하루는 아침부터 밤까지 정말 사랑스럽고 예쁘고 내눈에는 최고다. 미국에 love you to the moon and back이라는 표현이 있는데 내 마음이 정말 그렇다. 달나라에 갔다가 다시 올만큼 그녀를 사랑한다. 하지만 참 이상하게도 내가 화나는 경우를 들여다 보면 항상 하루를 향하고 있고 그렇게 사랑스러운 딸인데도, 심지어 만 3살 조차도 안된 어린아이임에도 불구하고 하루의 어린아이 짓에 너그러히 넘어가지 못하는 나의 모습을 시시때때로 발견한다. 말이 좋아 ‘어린아이 짓’이지 이유를 알 수 없는 땡깡과 들어누움, 엄마가 지칠때까지 버팅기는 굉장한 고집과 말안들음 이런 행동들이다.

나의 화가 인내심을 뚫고 나올때는 주로 밤 시간이다. 그렇다고 밤에만 그렇다는건 아니다. 밤에 특히 심하고 동생 물때,운전할때, 말안들을때 엄마들이라면 상황은 굳이 말안해도 다 알꺼라 생각된다. 하지만 밤에는 이런 상황들이 보다 자주 일어난다. 하루종일 아이들과 씨름하다 이제 곧 육아의 쉼이 보일 무렵이자 나의 에너지와 인내심이 거의 바닥날 쯤 이다. 하루는 2살 넘어서 까지 밤에 최소 2번에서 3번 많게는 그 이상까지 깨어났다. (요즘에는 좀 덜해서 살것 같다) 게다가 아이 나이의 특성상 졸려 쌍커풀이 두툼하게 생길때 까지도 절대 안잘꺼라 버팅기며 잠드는것을 거부한다. 이런 상황이 반복될때 마다 나는 마음이 답답하고 그 흔한 ‘육퇴'(육아퇴근)가 나에게는 적용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화가난다. 게다가 아이들 따로 재우기에 실패한 우리가족은 결국 침대두개를 붙여 co sleep을 하고 있기 때문에 하루를 재우러 들어갈때면 이미 하율이는 다른 한쪽에서 잠들어 있는 상태이다. 다행히 하율이는 비교적 잘자서 재우는것도 아주 오래걸리지는 않고 밤 중에도 하루 한창때보다는 훨씬 덜깨지만 그러다 한번씩 하루 땡깡 부리는 소리에 하율이가 깨어나면 거기서 발생하는 좌절감과 화는 이루 말할 수 없다.

감사하게도 정말 감사하게도 머리로 몇번이고 생각했던 일을 저지르지는 않아 정말 다행이다. 하지만 하루가 자기직전 생때를 부리며 육퇴의 꿈을 묵살시켜 버릴때 심한경우 아이를 때리고 싶다는 생각도 해봤다. 여기서 때리고 싶다는건 그냥 단순히 엉덩이 까고 맴매 수준이 아니다. 훈육할때 엉덩이 맴매야 진작에 해봤다. 하지만 이런경우에는 그냥 생때이기 때문에 오히려 맴매는 더 큰 때를 유발할 뿐 들지 않았다. 화가 날때 나는 주로 말로 아이를 공격했다. 소리를 지르며. 지금 글을 쓰면서도 3살도 되지 않은 아이가 내가 화로 던진 이 말들을 어떻게 감당 할 수 있었을까 두려운 마음이 든다. 차라리 못알아 들었길 기억 못하길 기도하게 된다. 나는 주로 아이에게 협벽식의 어조로 ‘너 이렇게 하면 망태할아버지 한테 잡아가라 그럴꺼야!’ ‘너 그러면 혼자 옷장에 들어가서 타임아웃 시킬꺼야!’ 이렇게 잘못된 연결고리를 만들어 주었고 소리를 지르며 ‘너 정말 왜그러니!’ ‘왜 이렇게 엄마를 힘들게 하니!’ ‘좀자!!’ 하며 신경질을 부렸다. 신경질 부리지 말라고 내가 신경질을 부리며 화를 내고 모순의 연속이다.

일이 벌어지고 얼마나 오래걸리든 아이는 결국 잠에들고 그 후에는 후회가 쓰나미 처럼  몰려온다. 딸이 기댈 수 있는 가장 편한 자리가 되어주고 싶은 나의 품은 그 자격을 박탈당한 기분이 들고 좋은 엄마의 모든 조건이 나와는 상관없는 조항들로 느껴진다. 하루가 첫째딸이고 나 또한 첫째딸로 자랐기 때문에 누구보다도 그녀를 이해하고 받아주고 사랑해 주고 싶다 생각해 왔고 또 그럴 수 있을거라 자신 해 왔는데 조금도 너그럽지 못한 내 모습에 좌절하게 된다. 하루와 건강한 관계를 만들어가고 싶고 기초부터 탄탄히 하고 싶어서 아이를 제대로 알고 이해하고 싶어서 홈스쿨링도 생각 했었고 무엇보다도 가정교육이 가장 중요한거 같아 하며 수없이 스스로에게 외쳐왔는데 이렇게 한순간에 모순된 내 현실과 직면하는건 나에게도 전혀 쉬운일이 아니었다. 이런 내 모습을 마주하는게 쉽지 않은 사람은 나 말고도 한사람 더 있다. 내 남편, 나의 육아 동반자. 나도 남편이 아이들을 정당성 없이 혼내는 모습을 보면 기분이 나쁜데 남편도 똑같겠지. 그렇게 큰 잘못을 하지도 않은 아이에게 인내심이 바닥나 불같은 화로 반응하는 내 모습은 과연 어떻게 비추어질까 생각하면 오만가지 감정이 다 들어온다. 분명 나를 판단하고 있을꺼야, 우리 결혼을 후회하는 건 아닐까? 이런 걱정을 하다보면 어느새 또 그럼 왜 처음부터 육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아 모든 부담을 나 혼자 지게 하는데, 자기가 내 상황이라면 뭐 얼마나 더 잘할 수 있을건데 하면서 또 다른 화로 번진다. 굳이 이런 감정들을 남편한테 쏟아내지는 않지만 남편은 자연스레 멀게 느껴졌고 정서적으로 멀어짐을 느끼니 육체적인 관계도 하고 싶지 않았다. 내 이 화로 인해 우리가족 여러사람의 마음이 다치고 관계의 문이 닫혀지고 있었다.

화의 부작용은 그 다음날까지 이어진다. 잠에 일어난 아이는 우리 어른들과 같지 않아 전날밤 무슨일이 있었냐는 듯이 웃고 있다. 그런 아이를 바라보는 내 마음은 더 무너져 내리고 오늘은 정말 잘할께 엄마가 미안해하는 마음으로 (말로 굳이 하지 않았다 생각나게 할까봐) 아이를 안아준다. 하지만 아이의 행동은 바뀌지 않는다. 당연하지 아이니까. 그렇게 똑같은 상황을 꾸역꾸역 참아보며 하루하루를 버텨보지만 결국에는 또 모순된 행동을 저지르게 되고, 때로는 필요 이상으로 친절한 엄마와 분노 조절에 실패한 무서운 엄마 사이에서 아이가 혼돈에 빠지지 않을까 걱정을 하게 된다.

일이 이렇게 까지 우리 삶에 큰 영향을 주고 있는지는 사실 과제를 위해 써 내려 가다보니 알게 되었다. 우리 가정에만 있는 문제는 아닌거 같았고 내 화 때문에 아이들이 어둡고 정서적으로 비정상적인 반응을 보이는것도 아니고, 아이들 어렸을때 시행착오 없는 부모가 어디있고 그러면서 우리 어른들도 같이 커가는거지 하며 대수롭지 않게 여겨 왔던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이 문제를 과제의 주제로 주신데에는 이유가 있고 지금 내게는 보이지 않는 죄의 파급력이 존재함이 분명했다. 내 안에 있는 화를 그냥 이렇게 고삐 풀린체로 내버려두는건 하나님의 뜻이 아니었다.

나의 힐링구절: 고린도전서 13장

자려고 누웠는데 고린도전서 13장이 떠올랐다. 고린도전서 13장은 내게 있어 치유의 하나님을 아주 가까이서 경험할 수 있게 해준 고마운 성경구절이다. 구절들을 혼자 조용히 묵상 해 보다 한번 꺼내 읽어보자는 생각이 들어 캄캄한 방에서 핸드폰으로 성경앱을 틀어 읽어 보았다. 그런데 새롭지 않은 그 구절들 안에 전에는 느껴지지 않았던 새로운 은혜들이 마음속에 꿀송이 처럼 떨어져 왔다. 너무 유명한 구절들 이기 때문에 크리스챤이 아닌 분들도 노래를 통해 접해 봤을 수도 있을 사랑에 관한 구절들이 사랑이신 하나님의 성품 들로 다가왔다. 아래는 Love를 God으로 바꾸어 적어 보았다.

God is patient and kind. He does not envy or boast, He is not arrogant or rude. He does not insist on His own way. He is not irritable or resentful. He does not rejoice at wrongdoing, but rejoices with the truth. He bears all things, believes all things hopes all things and endures all things. He never ends.

(1Corinthian 13:4-8)

이 구절들을 읽는 순간 가장 먼저 떠오른건 나를 위한 예수님의 십자가 이었다.  겸손 하셨고 오래 참으셨고 그분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셨고 모든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뎌내신 그 십자가 사랑이 상한 내 마음을 덮었다. 하나님 사랑에는 조건이 없었다. 어떻게 발버둥 처도 잘 되지 않아 속상하고 좌절하고 상처입은 나의 마음에 먼저 치유의 손을 건내셨고 엄마로 부름 받기 전 하나님의 딸로 먼저 부르셨다고 말씀 해 주셨다.

하루와 나 사이에서 언제나 하루의 마음을 상하게 한 가해자는 나였고, 원인 제공을 한 3살 자리 아이를 탓 할 수 없었던 엄마는 스스로를 탓해 왔고, 이런 내가 너그럽게 아이를 받아주고 사랑해 줄 수 있는 방법을 알기전 내게도 치유가 필요한 줄을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내가 건강하지 않은데 내가 하는 사랑도 건강 할 수 없었다. 물론 가끔씩 아이들 없이 스타벅스에가서 커피 한 잔 마시면서 좋아하는 드라마도 보고 아주 가끔씩 남편이랑 둘이 시간 보내면서 스트레스도 풀고 그런 쉼 들도 내 삶의 활력을 찾아주고 한 숨돌리게 끔, 다시 에너지 충전도 하게끔 도와주지만 고린도전서13장을 통해 내게 주신 치유와 안식은 전혀 다른 차원 이었다. 위에도 썼듯이 내가 화를 내고 그로 인해 아이들을 걱정하는 마음이나 그에 대한 부작용이 나의 매일매일의 삶을 좌우 할만큼 우울하거나 아주 많이 지쳐 쉼을 필요로 한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아이의 손에 박힌 아주 작은 가시도 빨리 빼어내고 낫게 해주고 싶은 부모의 마음 처럼 십자가의 사랑도 내 안에 조금의 결핍도 용납할 수 없을만큼 날 사랑하고 있다는걸 다시금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하루 에게도 동일한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이 적용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딸아 너를 사랑해 아파할 필요 없어 너는 내 딸이야. 그리고 네가 기억 해야 할게 있어. 하루도 내 피값으로 산 내 딸이란다. 그 아이가 다치는걸 나도 원치 않아.”

고린도전서 13장으로 육아하기

마음의 쉼을 얻고 나니 본격적으로 질문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주님, 어떻게 하면 성경적으로 아이를 키워 낼 수 있을까요? 제 마음 다 아시잖아요. 저 정말 원하고 있는거 아시잖아요. 저 정말 좋은 엄마 이고 싶어요. 어떻하면 할 수 있을지 자세히 가르쳐주세요.” 인내하고, 받아주고, 인정 해 주고, 많이 안아주고, 사랑 해 주고,  물론 그렇게 키우고 싶고 항상 그러고 싶지만 실질적으로 삶에 적용하기에는 나의 약함이 너무 크고 방법들도 너무 추상적이다. 그 이상의 방향과 지침이 필요하다 느꼈다.

그때 내 마음속에 주신 음성은 이러했다. 그냥 계속해서 내 사랑을 배우고 느끼고 묵상하고 그 안에 거하라고. 고린도전서 13장을 통해 계속해서 사랑을 묵상하라는 마음이 들었고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사랑만이 정답이라 말씀하셨다. 나는 육아에 대한 대답을 원했지만 어느때 와같이 하나님은 사랑을 말씀 하셨고 하지만 그 대답이 전혀 진부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사실 그렇다. 육아에는 정답이 없다. 아이 마다 성향도 성격도 배움의 속도와 습득할 수 있는 양도 다 다르다. 어떤 아이는 아기를 좋아해 동생이 태어나도 많은 질투없이 곧잘 동생을 받아 줄 수 있는 방면 유난히 질투가 많은 아이는 엄마가 어떻게 애를 써도 결과에 크게 영향을 못미치는 거다. 어떤 아이는 칭찬받는 말로 사랑을 느끼고 어떤 아이는 아무리 말로 해줘도 안아 주고 뽀뽀 해 줘야 그게 사랑이구나 느낄 수 있고, 엄마 곁에서 백날 붙어 있어야 행복한 아이가 있고 자유롭게 뛰놀아야 이게 행복 이구나 느끼는 아이가 있기에 육아에는 정말 정답이 없다. 하지만 사랑에는 정답이 있다. 우리는 우리가 사라온 배경과 받아온 사랑에 의존되어 다른 누군가를 사랑하지만 인간이 인간을 통해 받은 사랑에는 분명 한계가 있고 완전 할 수 없음은 인정 할 수 밖에 없는 사실이다. 나타나는 사랑의 완전도가 떨어질 수록 완전한 사랑으로 창조된 인간은 자연스레 눈살을 찌뿌리며 ‘그게 무슨 사랑이냐’고 비난 하게되고 그래도 비교적 건강한 사랑을 받고 자라 갖고 있는 사랑의 모양이 완전 할 수록 우리는 그걸 정상적으로 여긴다. 예를 들어 어렸을 때 부터 아버지에게 심한 훈육을 받아온 아들이 있다 하자. 매를 맞을 때는 죽도록 고통스러웠을지 몰라도 훈육이 반복될 수록 고통과 아버지의 사랑에는 연결고리가 맺어질 수 있다. 물론 이 또한 사람의 성향과 어떤 인생을 살아 왔냐에 따라 충분히 다른 결과를 낳을 수 있겠지만 이 아들 본인이 아버지가 되었을때 그의 아이들에게 사랑의 매를 가할 가능성은 아주 높다. 그에게는 사랑의 매 하지만 그것이 아이가 감당할 수 있는 선을 벗어날 지라도 그는 그것을 사랑이라고 충분히 이야기 할 수 있다. 그 외에도 인간의 사랑이 왜 부족할 수 밖에 없는지에 대해서는 우리 스스로가 더 잘 알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고린도전서13장에 적힌 하나님의 사랑은 정답과 같이 다가왔다. 너무 완전해 범접할 수 없는 수준이다. 하지만 나의 질문에 주님은 그 완전한 사랑을 묵상하고 배우고 느끼며 그 사랑을 아이에게 실행 하라고 말씀 하신다. 그것이 the way라고 말씀 하신다.

이 범접할 수 없는 사랑을 실천 할 수 있게금 하는 비밀도 함께 말씀 해 주셨다. 바로 마지막 8절에 사랑의 마지막 특성으로 적힌 “Love never ends”였다. 다른 구절들과 같이 그날 나에게 이 구절은 “God never ends”로 다가왔고 이는 노아에게 주신 약속의 무지개 처럼 다가왔다. 하나님의 영원성, 하나님의 사랑의 영원성은 한 줄기에 빛과 같이 느껴진다. 너는 넘어질 수 있지만, 나의 사랑은 넘어질 수 없단다. 그냥 끝까지 내게 와서 배우고 내게 와서 구하렴 나머지는 내가 채울께. 더 간단하게는 “It’s okay, I got your back!” 내 귓가에 속삭이듯 말씀 해 주셨다. 그가 죽기까지 순종하신 그 십자가가 그 사랑이 얼마나 어려운건지 이미 아시기에, 내가 절대 할 수 없는것 임을 아시기에 그가 나를 위해 해주시겠다는 그 응원이 어찌나 위로가 되고 든든하게 느껴지던지. 그리고 내가 넘어져 또 하루의 마음을 속상하게 할때에도 (그렇다고 방심하겠다는건 아니지만) 나를 향한 그 사랑이 우리 하루도 동일하게 지켜주고 계심을 믿기로 했다. 결국 또 똑같은 결론이였다. Love Him, Trust Him and learn from Him.

IMG_4599

셀프 카운셀링, 그 후

난 여전히 화가 난다. 안 잔다고 땡깡놓고, 그 땡깡에 하율이가 깰까봐 조마조마하고, 차에 태우는 것도, 옷을 입히는 것도, 양치를 시키는 것도 어느 하나 말 해서 한번에 듣지를 않는다. 그리고 셀프카운셀링 후 얼마 지나지 않았는데 벌써 한번 넘어졌다. 하율이 돌날 준비 과정 중 이런저런 이슈로 마음이 좋지 않은데다 할일은 산더미인데 뭐 때문인지 고래고래 울면서 소리지르고 결국 먹던 바나나를 집어던지는 만행을 저지를 딸내미를 그냥 넘어가 주지 못했다. 돌 사진 찍기 직전이라 다같이 바쁜데 아이를 잡는 바람에 남편도 풍선에 헬륨 넣으러 가려고 신발 신다가 다시 벗고 와서 하루를 달래고 오히려 일이 더뎌졌다. 남편도 웃지 않았고 다들 내 눈치만 보는거 같았고 내가 바라던 둘째 아들 돌 잔치 준비 풍경이 전혀 아니었다. 어쨌든 저쨌든 기쁜날 손님도 맞이 해야하고 잘 넘어가고 하루도 달래주고 풀었지만 마음 한켠이 무거웠다. 그리고 말씀의 능력을 맛보기 위해서는 시시 때때로 말씀으로 돌아가 내 마음이 다른것들로 차기 전에 미리 사랑으로 채워 넣어야 되겠구나 다시 한번 생각해 본다.

그래도 그 후 몇가지 긍정적 변화들이 있다:

첫번째, 나의 사랑이 실패했을 때에도 이에 맞선 나의 태도는 확실히 바뀌었다. 사소한 육아의 넘어짐에도 어지러운 생각들이 들어오기 전 내가 향해야 할 방향이 어디인지 알게 되었다. 그분의 품은 언제나 완벽한 치유와 충전을 준다.

두번째, 화를 불어 일으키는 상황들에 대해 전보다는 조금 더 담대 해 진 것 같다. “You try to get me? bring it on.” 이런 느낌으로. 물론 말했다시피 넘어지기도 하지만 말이다.

세번째, 남편의 육아 참여에 대한 노력이 보이기 시작했고 고마움을 느낀다. 남편과 정서적으로 다시 가까워 졌다. 살면서 남편이 멀게 느껴질 때도 가깝게 느껴질 때도 있는 거겠지만 이번 셀프카운셀링 후 결과는 꽤나 리얼하다. 사실 그날도 하루를 달래는 모습에서 나를 판단하는 느낌이 있어 기분이 더 망쳐진 건 사실 이지만 좋은 자극과 적지않은 위로도 되었다. 내가 할 수 없을때 아빠의 품이 있는 하루가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마지막으로, 내일을 마주할 내 마음에 소망이 있다. 내일은 꼭 고린도전서 13장 묵상하고 하루를 시작해야지, 아니 지금 한번 더 묵상하고 잠들어야지 생각하며 내일 사랑으로 충전되어 있을 내 모습과 그렇게 마주할 하루의 미소에 행복 해 진다.

엄마로,부모로 Ch 2 – 실전

이전 포스팅에서 소개 했듯 하루는 10월29일 오후4시04분에 본인만의 언어로”Hello World!” 를 크게 외쳤고 나의 엄마 실전은 그 시간부터 지금까지 쭉 이어지고 있다. 이제 거의 일년이 다 되어가는 이 시점에서 초보 엄마가 겪은 어려움과 시련 그리고 그 과정들을 거치며 받은 은혜를 나누고 싶다.

지금까지 엄마실전은 indescribable joy 와 unpredictable chaos 의 반복, 끝없는 스스로와의 부딪침 그리고 그안에서의 작은 성장이라 할 수 있는것 같다. 하지만 이 모든과정이 한없이 사랑스러울 수 밖에 없는 이유는 얼마전까지만해도 내 안에 있던 작은 사람이 세상에 나와 상상했던것 보다도 훨씬 더 귀여워져만 가고 있는 모습을 마음껏 바라볼 수 있다는 사실 때문이 아닐까 싶다.

하지만 지금은 모든 어려움이 지나간 건지 적응된 건지 어쨌든 한숨 돌릴 만한 10개월 후, 이 모든것이 처음 시작되었던 10개월 전 처음만난 그 당혹감은 정말 말로 표현하기 힘들다.

내 자신과의 갈등_산후우울증

아기를 낳는 과정은 사실 생각했던것 보다 크게 아프거나 힘들지는 않았다. 처음부터 무통주사를 맞을거라 강한 의지를 보였지만 결국 예상외로 진행이 너무 빨리 되는 바람에 갖은 진통을 거의 끝까지 겪은 후 막판에 아기머리가 떨어지는게 느껴진 후에야 무통heaven을 잠시 경험했지만 push과정도 나쁘지 않았고 아무튼 생각보다 그렇게그렇게 죽을꺼같이 아프지는 않았다. 그런데! 막상 아이가 나오고 나니 병원에서는 예쁘고 신기하고 너무 좋았는데 퇴원 후 친정엄마네서 산후조리에 들어간 후로 부터는 그다지 큰 attachment를 느끼지 못했다. 오히려 졸려죽겠는데 아파죽겠는데 쉬고싶은데 한시간 혹은 두시간마다 깨서 우는 아이를 한 반나절이라도 좋으니까 아니 한 5시간만이라도 누구한테 좀 맡겨 버리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그러다 보니 나는 왜 모성애가 생기지 않을까 죄책감이 스멀스멀 들어오기 시작하고 회사간 남편만 보고싶고 다헐어 옷만 스쳐도 따가운 젖꼭지를 있는 힘껏 한시간 두시간에 한번씩 빨아대는 아이는 밉고 하루종일 눈물만 나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부터는 “나 왜 우는거야, 속상하지도 않은데 눈물이 계속나 이상해..” 이러면서 엄마한테 하소연을 하면서도 엄마가 이렇게 날 키웠다는걸 생각하니 눈물을 더 주체 할 수가 없었다.

엄마가된 후 처음 만난 은혜

아기 기저귀 하나 가는데도 이렇게 오래걸리고, 기저귀갈아주다가 애기가 오줌싸서 옷갈아 입혀야 하면 너무 좌절스러워 때론 눈물도 나고, 젖을 물릴때 마다 언제쯤에서야 안아파질까, 하루가 새벽4시까지는 한시간 혹은 한시간 반에 한번씩 깨기 때문에 어차피 잠도 못자는 밤이 오는게 너무 두렵기만 했었다.  언제쯤에야 이 반복되는 과정들이 조금이나마 쉬워질까 속으로 백번씩 되세기며 말로 다 할 수 없는 하루하루를 보내는 가운데 내게 가장 위로가 된건 무엇보다도 찬양이였다. 텐트메이커_예수나의 치료자. 지금들어도 마음이 찡하다.

나의 몸은 치유가 필요했고 마음은 위로가 필요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이 곡을 통해서 생각지 못했던 나의 darkest hour에 나를 만나주셨다. 다른누가 보면 생명이 태어난 이 귀한 시간이 무슨 darkest hour냐고 이야기 할 수 있냐 할 수 있겠지만 그래서 또 아이를 낳고 첫 한주간 찾아온 산후우울증 그 힘들었던 시간을 그 누구에게도 나누기가 어려웠지만 그 시간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내게서 받고자 하셨던 헌신이 있었고 이를 통해 축복하기를 원하셨다.

시간을 되돌려 하루를 낳기 일주일전, 하루는 예정일이 일주일이 지난후 세상에 나왔고 덕분에 나는 나에게 남은 일주일을 그동안 많이 못한 걷기운동과 여러가지 설교를 찾아 들어가며 나름의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러다 우연히 podcast를 통해 접한 이찬수 목사님의”한나처럼, 사무엘처럼” 이라는 설교를 듣게 되었다. 설교내용을 간추리자면 약속으로 받은 아이에 대한 한나의 한결같은 태도를 통해 진짜로 아이를 주님께 맡겨드리는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말씀 하셨고 또우리모두는 아이를 키우는데 있어 하나님께 내려놓고 모세의 어머니가 모세를 갈대상자에 넣어 떠나 보냈던것 처럼우리 또한 믿음으로 아이를 갈대상자에 넣어 떠나 보낼 수 있어야 한다고 하셨다. 갈대상자의 원어에는 노아에 방주에 쓰였던 단어가 들어가있고 그 단어의 뜻은 구별됨, 거룩함이라고, 크리스챤으로서 세상과 구별되게 거룩하게 아이를 키워야 한다고 말씀 하셨다. 덫붙여 갈대상자를 자꾸 열어보면 열어볼수록 물이 들어가기 때문에 한번 맡겨 드린 아이 주님께서 책임 지시도록 기도하며 믿음으로 서야한다고. 이 말씀이 마음에 콕 와닿았다. “그래.. 이 험난한 세상 내가 컨트롤 할 수 있는것이 별로 없고 있다한들 내 마음하나도 잘 지켜내지 못하는 내가 우리 아이 마음을 어떻게 지켜줄수 있겠어요.. 주님께 맡겨드립니다. 우리 딸 하루 갈대상자에 넣어 주님께 맡겨드리니 주님께서 이 흉흉한 세상에서 지켜주시고 항상 동행해 주시고 진리가운데 거하는 기쁜딸 되도록 함께 해 주세요.” 이렇게 기도하며 다짐했었다.  그런데 그러고 일주일 후 막상 현실속에서 우리딸이 내 앞에 나타나 곤히 자고 있는 모습을 보니 맡겨드릴 수가 없었다. 내가 책임지고 내가 지켜주고 싶은 마음이 앞섰지 이제 내게 막 와준 이 귀여운 아가를 갈대상자에 넣어 다시 주님께 드립니다의 기도를 진심으로 하기가 너무 어려웠다. 이런 내 마음을 아셨는지 출산 후 몇일 지나지 않아 주님께서는 산후 우울증을 통해 하나님께 아이를 맡기지 않으면 안되겠금 상황을 몰아가셨다. 하루에게 젖을 물리며 예수나의 치료자를 들으면서 정말 매일 엉엉울면서 기도했다 “주님 난 정말 못하겠어요. 주님이 키워주세요. 중간에 열어보지도 못하도록 갈대상자도 꽁꽁 묶어서 주님께 맡겨 드릴께요” 이렇게 말이다. .

물론 그때 일주일간 그렇게 엉엉 울면서 한 기도는 정말 많은부분 감정에 의존된 기도였고 어떻게 보면 그냥 그 상황을 이겨내 보려했던 몸부림 이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육아에 어느정도 자신이 있었던 내게 산후우울증 기간 중 하나님께서 찬양을 통해 보내주신 위로와 나로 하여금 입술로 선포하게 하신 그 고백들이 일시적이고 헛되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물론 지금도 그 기도를 드릴때 마다 한편으로는 마음이 놓이면서도 한편으로는 무겁다. 내가 주님께 내 자신을 맡겨드리며 그 안에서 평안을 누리고 주님의 선하심을 맛보아 아는거랑 내 딸을 드리는거랑은 차원이 다른것 같다. 하루는 우리 딸이기에 너무 사랑하고 소중한 우리 딸이기에 어렵다. 믿는다고 이야기 하면서도 참 어렵다.  그래도 할수없다. 주님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았다면, 내 자신의 연약함을 이 정도 마주해 보았다면 결론은 갈대상자다. 나는 내 힘과 의지로 하루를 세상과 구별되게 거룩하게 키울 수 없다는걸 알 수 있었다. 호르몬 하나만 잘못나와도 감정에 휘청휘청 눈물쏟고 정신못차리는 연약한 내가 어떻게 이 험난한 세상에서 아이를 거룩하게 키울수 있겠는가 말이다. 그래서 산후 우울증의 경험은 참 힘들었지만 은혜였고 나의 연약함을 위로해 주신 주님의 부드럽고도 강한 손길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다.

산후우울증은 출산 4일 후 정도부터 시작되어 일주일정도 내안에 머물다 가셨다. 물론 그러고 나서도 첫 한달은 정말 고생스러 웠지만 (특히 잠을 못자는 부분은 정말 ㅠㅠ) 모성애가 점점생기며 아이는 이뻐져만 갔고 갈대상자 기도는 여전히 어렵지만 조금씩 편안해 지고 있는것 같다. 이러다 또 어려운 순간이야 계속 오겠지만 말이다.

남편과의 갈등_하루의 잠훈련

100일이 거의 다 되어가는 어느날 주위 사람들의 권유와 이런저런 육아책을 통해 아기 잠훈련이라는게 존재 한다는걸 알게 되었다. 여러 잠훈련이 있지만 우리 주위사람들이 사용한 방법은 cry it out 훈련법이였고 이건 아이에게 어느정도 기간동안 규칙적인 잠자기전 루틴을 만들어주고 (예를 들어 목욕을 시키고 책을 한권읽어주고 특정 노래를 틀어주며 조명을 어둡게 해주는것을 항상 같은시간에 규칙적으로 해주면서 아이에게 잠잘 시간이라는 싸인을 알려주는것) 아기를 침대에 눕힌다. 그럼 아기가 처음에는 당황스러워 엉엉 울지만 하루 이틀 삼일 정도를 그냥 울리면 아무리 울어도 이 시간에는 스스로 자야되는구나 알아채고 안아주지 않아도 일정시간에 침대에 눕히기만 하면 혼자 잘줄 아는 착한 아기가 되는거다! 그냥 듣기에는 정말 혹하고 책에 나온데로만 하면 혹시 우리아기도 되지 않을까 하는 희망에 우리 부부도 이 스토리 저 스토리 기웃기웃 거리며 나름 공부도하고 조언도 듣고 100일이 지나면 한번 해볼까 생각을 해보고 있었다. 마침 나도 허리가 많이 안좋았고 아기가 내 품에서만 자려고 해서 육체적으로 무리가 있기도 했다.

그런데 막상 잠 훈련을 시작하려니 마음이 썩 내키지 않았다. 아기라서 당연히 엄마가 필요한건데 굳이 애를 띄어놓고 어차피 밥중 수유도 두번 정도 했을때라 왔다갔다 해야하는데 울리면서 까지 훈련을 해야하나 싶었다. 하지만 남편의 생각은 달랐다. 남편은 회사갔다와도 항상 아기 보느라 바쁜 나랑 둘만의 시간이 그리웠고 아기가 일찍 혼자서 자주기만 한다면 (당시 하루는 11시 12시까지도 잘 안잤다) quality 시간을 보낼 수 있을텐데 하며 저녁을 먹고나면 노란색 잠훈련 책을 쥐고 이렇게 하면된데 저렇게 해야된데 하며 은근히 잠훈련을 지지했다.

IMG_4615
그냥 매일 이렇게 자고싶었던 하루와나

그러던 어느날 사건이 터졌다. 우리는 일단 하루에게 잠잘 시간이라는 사인을 가르쳐 주어야 할 필요가 있다 생각이 들어 일단 하고 있던 루틴의 시간을 조금 앞당기고 하루가 그 시간에 졸릴 수 있게 준비시킨 후 잠훈련을 시작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런데 그날 하루를 재우는 중 갑자기 배가 너무 아파 남편에게 잠깐 아이를 맡기고 화장실을 다녀와야 하는 일이 발생했다. 예상대로 하루는 내 품을 떠난 순간부터 울기 시작했고 (우리하루는 울음소리가 정말정말 크다. 비명수준) 나는 어쩔수없이 그런 아이를 뒤로하고 화장실로 뛰어 들어갔다. 그렇게 5분정도 울음소리는 그치지 않고 후다닥 뛰어나왔는데 왠걸 남편이 하루를 그냥 아기침대에 눕혀놓고 본인도 벌러덩 우리침대에 누워있는게 아닌가. 매일매일 최대한 하루가 울지 않도록 편안하게 재워주려고 노력한 나로서 5분을 안아주지 않는 남편이 너무너무 미웠다. 나도 모르게 신경질을 부렸고 오빠도 미안했는지 사과했다. 그 일 이후 나는 나의 고충을 남편과 나누고자 금요일밤에는 남편이 하루를 재우는걸로 하자고 약속했고 대망의 그 다음주 금요일밤이 왔다. 사건 당일 항상 안아주던 엄마는 누워있고 아직은 아빠 품이 조금은 낯설었던 하루는 시작부터 엉엉 울기 시작했고 남편은 최대한 아이를 달래보려고 바운스도 해보고 품에도 안아보고 여러가지 방법을 동원해 하루를 진정 시켜보려 했다. 하지만 하루는 좀처럼 울음을 그치지 않았고 계속 우는 아이와 힘들어하는 남편을 옆에 두고 나도 두다리 뻗고 잘수가 없었다. 급기야 나는 옆에서서 이렇게 해보면 어떨까? 저렇게 해보면 어떨까? 그냥 내가 할까? 하며 참견을 하기 시작했고 계속 커져가는 하루의 울음소리와 함께 남편의 표정도 점점 굳어져 갔다. 그리고 얼마후 남편의 얼굴이 정말 심상치 않게 변하더니 하루를 향해  야! 백하루! 하면서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평소에 단한번도 화를 내거나 소리를 지르는건 본적도 없고 심지어 화를 내는 사람을 잘 못견디고 내겐 언제나 자상하고 착한 남편인데 갑자기 돌변하는 모습을 보니 적지않은 충격과 실망이 한꺼번에 몰려왔다. 나도 모르게  순간적으로 “미쳤어?! 이리줘! 차라리 나한테 그래!” 하며 엄청나게 방어적으로 남편을 공격했고 남편은 그런 내 태도에 상처를 받고 하루는 내 품으로 돌아와서야 울음을 그쳤다.  부끄럽지만 이 작은 사건으로 우리 부부는 다음날까지 침묵과 말다툼을 이어갔고 이는 결혼한 후 가장 괴로운 부부싸움 이였다.

부부싸움을 통한 은혜

하지만 한편으로는 우리 서로에게 wake up call이 되었다. 일단 매일밤 하루는 재우는 시간마다 남편과 알게모르게 잠훈련을 하냐마냐 기싸움을 하며 난 남편에게 submit하고 싶지 않아졌고 이는 가정의 질서가 무너지고 있다는 분명한 싸인이였다. 이는 내가 엄마 이상향에도 썼듯이 지금까지 생각해오고 바래온 엄마의 모습도 아니고 아내의 모습은 더더욱 아니였다. 이쯤됬을때 잠훈련은 더이상 이슈가 되서는 안된다 생각이 들어 남편의견에 동의하기로 마음먹었고 눈물을 머금고 6일간의 시도끝에 하루는 한동안 혼자서도 잘 자는 착한아기가 되주었다. (그러고 한국을 다녀오니 다시 원상복귀 되었지만..)

6일간도 사실 너무 괴로웠다. 아기가 우는데 안아주고 싶은데 중간에 안아주면 지금까지 힘겹게 훈련해온게 다 무너지기 때문에 안아줄 수도 없고, 4일째 되는날인가 뽀얀 얼굴을 자기 손톱으로 죄다 할퀴어 놓아 마음이 찢어지게 아프게도 했고.. 첫 아기라 부족한 엄마아빠 때문에 시행착오도 많고 우리가 체택한 방법들이 다 옳지도 틀리지도 않았던거 같다. 잠훈련에 관해서도 여러가지 의견이 나뉘지만 어릴적 잠훈련을 잘못받아서 잠을 못자는 어른없고, 잠훈련 방법이 잘못되어서 정서가 불안하다는 얘기도 나는 못들어봤다. 하지만 아빠와 엄마의 관계가 아이정서에 미치는 영향은 매우 가중치가 높고, 가정의 질서가 무너졌을때 나타나는 불안한 증상들 또한 아이 교육에 별로 효과적이지 않을거라 생각이 든다.

이런 의미에서 그때 그 다툼은 우리부부에게 은혜였다. 처음으로 의견대립을 겪고 그럴수록 더 하나 되어야 한다 느꼈고. 하나님은 우리의 육아과정을 통해 무엇을 보고 계실까 다시한번 생각 해 보게 되었다. 얘네들이 어떤 방법의 잠훈련을 택하려나, 이유식으로는 처음 무엇을 먹일것인가 에 초점을 두실까 아니면 서로의 다름속에서 부부가 어떻게 하나되려 힘쓰고 아기를 허락 하시면서 가정가운데 심어두신 하나님의 질서를 지키는데에 있어 얼마나 힘쓰고 있는지에 더 관심을 갖고 계실까. 답은 너무 확실했다.

아이와의 갈등_유별난 아이

하루는 유모차를 타지 않는다. 카시트도 최대 한시간, 그 이상은 상상하기 어렵다. 하루는 좋고 싫음이 분명하다. 좋으면 솜사탕 다 녹여버릴듯한 미소를 살살 짓지만 싫으면 비명을 지르며 울어버린다. 그리고 하루는 엄마 껌딱지다. 집에서는 저녁시간마다 아빠랑 목욕을 시작하고 나서부터 아빠랑도 잘 놀지만 잘때나 밖에 나갈때 특히 교회에서는 내가 잠시라도 보이지 않으면 아주아주 크게 생때를 부린다. 6개월까지는 그러려니 했다. 애들도 다 그러고 원래 아기들이 다 그런거니까. 그리고 나를 특별하게 너무너무 좋아하는 딸이 사실은 기특하고 좋았다. 그런데 7개월8개월9개월이 되어도 나만 찾고 아빠에게 가서 조차도 때를 부리는 하루 덕분에 예배를 드릴 수 없게된건 오래전 그나마 찬양시간이라도 마음껏 찬양할 수 있어 좋았던 찬양팀 마저도 내려놓게 되었다.

IMG_1124
때쟁이

아기니까 충분히 그럴 수 있어. 찬양팀 하기에는 아기가 너무 어리지. 그래, 굳이 합리화를 하자면 충분히 할 수 있다. 하루를 사랑하고 어느 순간에도 감싸주고 싶은 하루엄마니까. 그런데 문제는 내가 속한 커뮤니티, 꼭 찝어 말하자면 우리 교회에는 하루또래 아이들이 너무나도 많다는 점이다.

어느날 부터 교회에 가는것이 부담스러워졌다. 주일날 예배를 제대로 드리지 못하니 주일예배에 대한 기대는 사라진지 오래고 이제는 그냥 예배드리러 가는거 조차 마음이 힘들어졌다. 공교롭게도 교회에 예배드리러 오는 하루 또래 아이들은 하나같이 순하고 얌전한편이고 (적어도 내가 보기에는) 그에 비해 우리하루는 내가 찬양하러 갈때면 교회가 떠나가라 가장 큰 목소리로 매주 울었다. 같이 찬양팀에서 섬기는 언니네도 하루보다 두달 어린 아기가 있는데 그 아이는 아빠랑도 즐거워하면서 잘있고 엄마 연습할때 유모차 타면서도 생글생글 웃어가며 잘 있는데, 우리하루는 아빠랑 있는것도 not okay 그렇다고 내 앞에 유모차타고 앉아 있는것도 not okay 그럼 내가 안고 노래를 불러야하는데 연습하는 동안 하루를 힙시트에 앉히고 한시간, 한시간 반 찬양을 하고 나면 은혜는 커녕 허리도 아프고 정신도 없어 끝나면 내가 뭘 한거지 할때도 많았다. 그렇게 하루 이틀지나니 나도 모르게 하루를 다른 아이들과 비교하고 있었고 이에 맟선 초보엄마의 반응은 매우 방어적이였다. 누구라도 우리 하루에 대해 무슨말만하면 그 말의 의미가 그런게 아닌걸 머리로는 알면서도 마음에서는 고슴도치 바늘 돋듯이 예민하게 반응했다. 하루 왜 울어 무슨일 있어? 걱정 섞인 말투로 물어오는 물음에도 입술로는 애써 웃으며 괜찮아요 하면서 속으로는 도대체 왜 묻는거야 하루이틀도 아닌데 괜히 나 민망하라고 묻는거야? 하며 괜히 화를 냈다. 심지어 오늘은 하루가 얌전하네 이런 칭찬에도 그럼 얌전 안 한 날에는 속으로 흉 봤다는거야? 이런 생각을 하며 빌빌 꼬았다. 그렇게 주일날 하루종일을 사실은 하루에 대한 불만을 모두 남탓으로 돌리고 나서 집에오면 내가 너무 악해서 너무 한심해서 마음이 힘들고 은연중에 이애 저애한테 하루를 비교했다는 생각에 하루에게 너무 미안하고 괴로웠다.

약한 나를 통한 하나님의 은혜

더이상은 안되겠다 싶어 이 기도제목을 조심스레 목장에서 나누었고 무엇이 잘 못되었는지 하나님께 묻기 시작했다. 사실 기도제목을 나누는것 조차 정말 두려웠다 우리 목장에도 하루또래 아기들이 있고 내가 이렇게 이야기하면 그 동안 내 행동들이 가식적으로 느껴질수도 있을 법하고 약간 자폭하는 느낌도 들어서 많이 고민했다. 오해받을 여지가 충분했지만 그래도 내 나름대로는 충분히 설명을 하고 나의 약함을 나누었다. 나의 약함을 인정하고 나눌때 그리고 하나님께 구할때 주님께서 역사할거라 믿었고 무엇보다도 좁아터진 내 마음이 아닌 하나님의 마음으로 하루를 품고 받아주고 사랑해 주고 싶었다.

그후 한주간 하나님은 여러가지 방법으로 나를 위로하셨다. 우선은 한주동안 여기저기서 우연히 들려온 찬양이 한 곡 있었는데 다름아닌 올드클래식 “약할때 강함 되시네” 였다. 일단은 네가 아무리 약해도 내가 강하니까 괜찮아 got your back이런 느낌으로 다가와 너무 감사했다. 그리고는 내 안에 있던 교만했던 모습들을 많이 깨우쳐 주셨다. 사실 일본에서 선교생활중 유치원에서 섬겼던 적이 있었고 유치원에서 tough했던 아이들을 나름 잘 타이르고 참여시키고 했던 기억에 좀 유별난 아이도 잘 다룰수 있을거란 교만이 있었다. 게다가 하루를 10개월간 키워오며 첫 5주간은 정말정말 힘들었지만 그 후 산후조리가 끝나고 집에 돌아와서는 하루를 보면서 집안일 하는것도 그렇게 어렵지 않았고 오빠가 출장갔을때 부터는 당분간 혼자서 목욕도 시키고 하며 육아에 자신감이 붙었었는데 그러면서 동시에 아이를 갈대상자에 넣어야 한다는걸 시시때때로 까먹고 교만해져 있던 내 모습도 보여주셨다.

그리고 가장 근본적인 잘못을 뉘우치게 해 주셨다. 바로 내 안에 바로서지 못한 우선순위였다. 엄마가 된 후 주님을 가장 사랑하는것 아니 예수님만을 사랑하는게 불가능해 진것 같은 정도로 아이가 눈에 머리에 마음에 들어오다보니 내 안에 우선순위가 엉망이 되어버렸다. 예배도 드리고 말씀도 읽고 기도도 하지만 전처럼 하나님과 친밀한 교제가 없었고 그 친밀함을 사모 하면서도 어떻게 가야할지 알면서도 마음처럼 잘 되지 않았다. 나의 경우 우선순위에 문제가 있었고 하나님 없이 내 아이조차 있는 그대로 받아드리며 사랑해 주지 못하는 나의 약함을 보여주신 것이다. 낙심되어 있는 찰나 주님께서 또 다른 이번에는 설교말씀으로 내가 희망을 주셨다. 이번에도 이찬수 목사님 설교였는데 최근에 대체 설교로 들려주신 “갈수록 아름다운 인생” 이라는 제목이였다. 설교중 목사님께서 “저는 제10대보다 20대가, 20대보다는 30대가, 30대보다는 40대가, 40대 보다는 지금이 훨씬 아름다워요. 제 내면이 말이에요.” 이런말씀을 하신다. 목사의 자리에서 얼마나 많은 훈련과 단련의 시간을 통해 깎아지고 또 깎아지고 아름답게 빚어지고 계실까.. 그 말씀을 듣고나니 인생은 기나긴 경주와 같고 나도 그 경주를 뛰며 인내하고 넘어져도 일어서고 하며 비록 지금은 잠시 하나님과의 친밀감을 잃은것 같고 앞으로도 전처럼 교제할 수 있을까 고민하지만 오직 은혜로 나의 내면도 30대도 20대보다는 더, 40대는 30대보다도 더 하나님과의 친밀함을 통해 아름답게 빚어 질거라는 막연한 믿음이 들었다.

많이 회개했다. 정말 많이 회개했다. 그러고 나니 정말 나의 약할때 강함이 되어주신 하나님의 은혜가 더욱더 크게 느껴지고 하루의 유별남에 대해서도 많이 편안해 졌다.

이제 시작일 뿐이다

IMG_1962
사랑스런 우리딸 하루

아직 1년도 안됬을 뿐더러 시작일 뿐이다. 지금까지 맛본 엄마의 세계는 정말 신비롭고 경의롭고 감사하다. 특히 모성애는 인생이 만약 게임이라면 내가 할 수 없는 일까지도 하게끔 만드는 엄청난 아이템같은 느낌이면서도 자칫잘못하다가는 내 인생의 약함을 진짜로 강함으로 바꾸어주는 주님을 뒷전으로 생각 하게 할만큼의 파괴력도 갖고 있는 무서운 놈같다. 하지만 모성애 또한 주님께서 주신 선물이기에 그분의 질서안에서 감사히 누리고 잘 사용 해 보고 싶다.

 

엄마로,부모로 Ch 1 – 엄마 이상형

2015년 10월29일 16시04분. 기다리고 기다리던 딸과 첫 눈을 맞추었다. 3.1kg에 50cm 밖에 안되는 이 조그마한 사람이 자그마치 10개월간 내 속에 있다가 손가락 10개 발가락10개 다 달고 나와 가슴위에 올라와 있다는게 실감이 잘 안났다. 하지만 아기가 나오기 바로직전 얼마후 처음 겪게 될 예측가지 않는 상황과 고통에 대한 두려움의 눈물은 어느샌가 감사와 감격의 눈물로 바뀌어져 있었고 그 순간 내 품안에 안긴 따끈따끈한 쪼그만 심장이 콩닥콩닥 뛰는 움직임이 느껴질때 마다 마음속으로 무조건 다짐할 수 있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엄마가 꼭 너를 지켜줄께’ 하고. 그렇게 나는 엄마가 되었다.

pregnanttomom
1. 출산 직전 남편과 까불며 놀던 나                       2.하루가 나오자마자 엄마가 된 순간

엄마가 된다면 뭔가 좀 더 성숙해 지고, 그동안 고치지 못했던 못된 습관들도 저절로 고쳐지고, 나의 이런저런 부족한 부분들이 엄마가 됨가 동시에 조금은 나아질 수 있을거란 막연한 생각을 해 왔던거같다. 하지만 기대했던것 처럼 막무가네의 성숙은 이루어 지지 않았다. 아기가 있다 뿐이지 나는 여전히 나였다. 그렇지만 한가지 다른점이 있다면 엄마이기 때문에 ‘성숙’의 단계로 나아갈 수 있도록 push하는 요소들이 몇가지 생겼다는 점이다. 내 안에 어느 순간부터 ‘난 이런 엄마가 되고 싶어’라는 기대치가 있다는걸 발견했고 그 뿌리로 되돌아 가 보니 그곳에는 다름아닌 그동안 나를 키워주신 우리엄마의 모습이였다. 엄마가 된 후에 가장 많이 감사하고 미안하고 놀라운 사람, 우리 엄마. 엄마가 된 나의 이야기 이전에 먼저 엄마를 통해 만난 나의 ‘엄마 이상향’을 먼저 소개 하고 싶다.

 나는 우리엄마 같은 엄마가 되고 싶었다.

남편과 연애시절 이런저린 이야기를 하다가 남편이 물었다. “민경이는 삶을 통틀어 롤모델로 삼고 싶은 사람이 있어?” 참 다른 성향에 참 다른 환경에서 자라온 우리둘. 남편의 이 질문은 내겐 너무 생소한 topic이였다. 롤모델이라.. 물론 이런 저런 분야에서 존경하는 사람이야 있어봤지만 롤모델이 엄청많았고 앞만보고 열심히 달려온 남편에 비해 나는 비교적 순간순간을 즐기는 ESFP성향에 예수님 외에는 딱히 힘써 닮고싶다 느껴본적이… 그때 딱 한명 생각나더라. 맞다. 그때 생각났던 그 사람이 바로 우리 엄마다.

IMG_0694
엄마랑 시에틀 여행중_SAM

엄마는 나랑 참 다르다. 나는 얼굴도 성격도 완전 아빠를 닮았고 엄마랑은 사실 많이는 닮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자라면서 엄마는 내가, 나는 엄마가 답답할 때도 많았지만 (엄마는 매사에 신중하고 생각이 많고 조심하고.. 나는 매사에 급하고, 즉흥적이고) 그래서 인지 또 엄마의 조언은 거의 단 한번도 빗나가 본 적이 없다. 나를 완벽하게 파악하고 있어서 이기도 하겠지만 그 이상으로 날 너무나도 잘 아는 엄마는 항상 그녀만의 현명함과 mother instinct로 내가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이렇게만 얘기하면 너무 카운슬러같은 느낌만 들지몰라 소개를 조금 더 덫붙이자면 우리 엄마는 누구보다도 사랑이 많고 눈물도 많고 사진처럼 가장 소녀스러우면서도 가장 엄마다운 멋진 사람이다.

섬기는 사람

어릴적 부터 엄마는 나와 내 동생과 잘 놀아주셨다. 같이 원카드도 많이 했고 우리를 데리고 롯데월드에 놀러갈때도 굳이 한강유람선을 태워갈 만큼 (아기를 한명만 낳아보아도 그게 어른으로서 얼마나 번거로운 일인지 알 수 있을꺼 같다.) 우리가 좋아하고 재미있어 하는것들을 최대한 경험시켜 주는 열정이 있으셨다. 이런 엄마의 열심은 하나님 앞에서도 한결같았고 내가 기억하는 많은 엄마의 모습들 중에서도 섬김의 자리에서 순종하는 엄마의 모습은 내 마음속에 가장 진하게 남아있다. 엄마는 내가 어릴적부터 몸된 교회에서의 섬김을 그치지 않으셨다. 내가 이러한 엄마의 모습을 기억하는 시작점인 초등학교 4학년 가족들이 모두 함께 중국에서 지냈을때 엄마는 토요일날은 한글학교 선생님으로 주일날은 주일학교 선생님으로 섬김을 시작하셨다. 학교에 와있으면 다른애들은 다 혼자 와있는데 나는 옆반에 우리 엄마가 있었고 주일날은 유년뷰 예배실에서 엄마랑 같이 예배드릴 수 있어서 참 좋았던 기억이 난다. 특히 가장 기억에 남는건 매년 여름 열렸던 2박3일 열린 여름성경학교에서의 모습인데, 그때 어린나의 체감상 자는시간 빼고 하루종일 다른 선생님들이랑 미팅하면서 기도하고 프로그램 짜고, 프린트 물은 또 왜 그렇게 많은지 그 많은걸 공부해가면서 때로는 진행 때로는 율동 그 와중에도 밝고 행복해 보였던 엄마의 모습을 잊을 수 가 없다. 그리고 여름성경학교의 하이라이트 예수님십자가 촟불예식을 할때면 또 얼마나 울던지, 이친구 저친구 끌어안고 울면서 기도해 주고 제일 마지막에 예식이 끝나갈 때 쯔음 눈은 빨갛게 퉁퉁 부었는데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표정을 지으면서 나한테 다가와 나를 끌어안고 기도해 주고 사랑한다고 말해 주던 엄마의 온기 또한 잊을 수가 없다. 이런 엄마의 모습은 내게 어느순간 부터 엄마가 갖추어야할 당연한 characteristic이 되어버렸고 내가 엄마가 된 지금 가끔씩 우리 하루가 자란후 AWANA에 가게 된다면 또 주일학교를 시작한다면 그곳에서 혼신을 다해 섬기고 있는 내 모습을 그려보게 된다.

엄마의 이런 열정은 내가 좀 자란후에도 계속 되었다. 이번에는 목장과 어머니학교로. 내 기억이 틀리지 않는다면 아마 내가 중학교에 들어갔을때 부터 엄마는 벌써 어머니학교봉사를 시작 했던것 같다. (지금까지) 지금 생각 해 보면 너무 대단하게 느껴지고 엄마가 어머니 학교를 섬기는 모습을 통해 나에게 무의식적으로 학습된 엄마로서의 모습들이 너무 마음에 들고 감사하지만 그 당시에는 엄마랑 시간을 보내고 싶었던 때 다른것도 아닌 ‘어머니 학교’ 때문에 엄마를 빼앗겨 버린게 불만 이였던적도 꽤 있었다. 물론 지금 내 자신이 엄마가 되어 생각 해 보면 이제는 이해할 수 있고 엄마가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사명에 최선을 다해 신실하게 감당 해 온 그 모습이 자식된 나와 내 동생에게 특히 장래 엄마가 될 큰딸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큰 축복 이 였던게 틀림없지만.. 그 당시 엄마의 부재로 인한 순간순간의 섭섭함을 장래에 우리 딸 하루도 느낄지도 모른다 생각하니 벌써부터 미안한 마음도 들고 또 한편으로는 아이가 내게 온 순간부터 그 아이를 위해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 할 뿐 아이를 책임지고 바른길로 인도하시는 이는 하나님이 시라는 생각 밖에 들지 않는다. 언제나 섬김의 자리에 섰던 우리엄마도 이런 마음이지 않았을까 그리고 하나님께서도 그때 이러한 엄마의 기도를 듣고 계셨고 응답하신게 아닌가 생각이 든다.

돕는베필

어릴적 부터 아빠는 우리남매에게 친구같은 아빠였다. 만화영화, 영화, 어린이잡지, 볼링과 태니스등의 스포츠, 각종 게임과 개그로 우리의 마음을 사로잡았고 우리눈에는 가장 완벽한 엔터테이너였다. 그런 아빠의 권위를 지켜주었던건 언제나 엄마의 몫이였고 (물론 많은 경우 엄마도 함께 동참해 아빠 놀리기 놀이를 하곤 했지만) 정말 중요한 순간 우리집의 가장은 아빠고 아빠가 우리집 대장이라는 개념을 알게 해 준건 엄마였다. 우리가족이 특히나 더 보수적이였던 집안은 아니였지만 저녁시간 아빠가 뭐라도 먼저 한입 드셔야 우리는 먹기 시작 할 수 있었고 어린시절 sleepover를 허락 받는일도 어디가서 놀다와도 되는지에 대한 사소한 결정도 엄마는 항상 “아빠가 허락하시면 엄마도 오케이야”였다. 미국 오기전 멀쩡히 다니던 고등학교 한한기를 남겨두고 자퇴를 선언했을때 사대에 대한 꿈이 컸던만큼 학교라는 곳에 대한 애착도 강하고 학생은 학교에 소속되어있어야 된다는 개념이 아주아주 강한 엄마로서 분명 이해할 수 없었겠지만 아빠의 최종 결정을 따라 주었고, 대학교 한학기를 남겨두고 당시 방사선 사태로 난리 였던 일본으로 선교를 다녀오면 안되겠냐고 묻는 딸에게도 엄마는 내 이야기를 충분히 들어준 후 “아빠가 허락하면 엄마도 오케이야”라며 아빠에게 결정권을 드렸다. 나에대한 아빠의 결정들 속에 분명 썩 내키지 않고, 이해 되지 않았던 결정도 있었을것같다. 그리고 어쩌면 엄마이기 때문에 더 현명히 내릴 수 있었던 결정도 있었겠지만 엄마의 이런 모습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내게 성경적 엄마상이 무엇인지 알게 해 주셨다.

첫째,‘엄마’는 집안의 숨은 리더다 .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하라, 이는 남편이 아내의 머리 됨이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 됨과 같음이니 그가 바로 몸의 구주시니라.” 에베소서5:22-23 하나님 말씀이다. 어렸을때 이 말씀을 처음 접했을 때는 왠지 남녀 차별인것 같아 별로 안좋아했던 기억이 있지만 지금에서야 비로서 이 구절이 무엇을 말하는지 조금은 알 수 있을것 같다.  나의 묵상에서 남자를 여자의 머리로 두신 하나님의 진심은 결국 가정을 축복하고자 하는 마음이 아닐까 싶다. 이 구절에서 나로 하여금 주목하게 하신 하나님의 성품은 공평의 하나님이 아닌 질서의 하나님이셨다. 이땅에도 질서가 있듯 하나님의 나라에도 질서가 있고 그 질서가 지켜질때 하나님은 기뻐하신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가 기뻐하시는 가정을 하나님의 방법으로 축복하신다. 우리엄마는 이 원리를 잘 알고 있었던것 같다. 내가 막상 엄마가 되어보니 작은 하루를 내 팔에 안고있긴 하지만 그리고 또 앞으로도 내가 이 아이를 지켜보겠다고 몸부림 쳐보기도 하겠지만 사실 이 험난한 세상속에서 내가 이 아이의 팔을 잡고 있는 다고 이 아이를 바르고 안전하게 이끌수 있다는 보장이 전혀 없고 할수도 없는 일이다. 오히려 너무 소중한 이 생명을 지켜보고 싶다는 마음에 걱정이나 한가득 늘은것만 같다. 그런데 정말 현명한 엄마라면, 현명한 아내라면 내 아이 하루를 만드시고 모든것을 주관하시는 그 분의 질서를 지킴으로서 하루에게 축복의 통로는 될 수 있는것이다. 돌아보면 지금까지 엄마는 나를 키우면서 얼마나 많은 순종의 시간과 결단을 통해 믿음에 믿음을 더 하고, 하나님을 의지하지만 인간이라 어쩔수 없는 두려움에 눈물을 지나 또 얼마나 많은 연단의 시간을 통한 깍임이 있었을지.. 생각해 보면 생각 해 볼수록 고마움과 미안함과 또 감사함에 눈물이 절로난다. 1인자는 2인자가 지켜주고 존중해 주었을때만  1인자가 될 수 있는것 같다. 2인자가 인정해 주지 않는 1인자는 존재할 수 없고, 아빠의 권위또한 엄마 만이 지켜줄 수 있는 특권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축복의 질서를 지켜내준 엄마는 집안의 숨은 리더이다.

둘째, 부부는 한편이고 또 그래야만 한다는 것이다. 이전엔 몰랐다. 엄마가 “아빠가 오케이면 엄마도 오케이”를 이야기 할때 마다 마음속에서는 ‘그래~ 아무리 엄마가 반대해도 아빠는 내 편이야, 내가 마음만 먹으면 아빠는 무조건 설득할 수 있어’ 생각했었고 쉬원하게 답을 주지 않는 엄마에 비해 언제나 설득이 가능했던 아빠에게 오케이를 듣는 것은 비교적 쉬웠고 원하는 대답을 얻은 후 엄마 앞에서 의기양양한 마음까지 들었었다. 그런데 지금 내가 아이를 낳고 생각해 보니 엄마아빠는 한편 이 였던거다. 짜고 치는 고스톱이나 다름없었던 거다. 아빠는 엄마를 사랑하기 때문에 엄마가 죽어도 싫은 결정을 오케이 하지 않았을것이고, 엄마는 아빠를 존중해주었기 때문에 하나님께 순종하는 마음으로 순종 했을것이다. 내가 기억하는한 난 항상 아빠를 통해 결정에 대한 대답만 들었지 그 중간에 엄마아빠간에 대화는 실수로도 엿들어 본적이 없다. 하지만 확신할 수 있는건 오히려 어긋난 의견 속에서 엄마아빠는 더 하나되지 않았을까 생각이 든다. 그리고 우리 부부도 하루에 대한 의견이 갈릴때에 더욱더 하나 되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믿음이 있다.

가족을 하나 되게 하는 사람

어릴적 부터 엄마는 우리집 가족 뿐만 아닌 할머니 할아버지 아빠 쪽 식구들에게도 항상 최선을 다했던 기억이 있다. 시시때때로 안부전화를 드리고, 매주말 마다 친가집 식구들끼리 할머니네 모여서 밤 늦게까지 놀다오고, 명절 기념일때 정성스레 요리하고, 미국에 와서는 작은아빠네 두 아들 모두 유학하는 동안 우리집에서 생활했었는데 완벽할수는 없었겠지만 언제나 아이들이 잘 지내는지 혹시 뭐가 먹고싶은데 못먹고 있지는 않은지 신경쓰며 정성을 다했다 . 내 기억속에 엄마가 친가집 식구들에 대한 흉을 보거나 불만을 표하거나 속상함을 내비췄던 적은 정말 없었다. 그래서 나도 당연히 결혼을 하게 되면 그냥 저절로 식구가 되고 가족이 되었으니 섭섭한것도 좀 불편한것도 그냥 넘어가고 그렇게 자연스럽게 하나가 되어가는거구나 생각이 되었다. 그런데 막상 결혼을 해보니 엄마가 우리를 키워오면서 엄마의 시댁식구들에게 베푼 섬김과 사랑이 그냥 식구가 되었기 때문에라는 이유만으로 그냥 그렇게 노력없이 이루어 지는것이 아닌것을 알게 되었다. (오해는마세요 저희 시댁 식구들도 정말 좋고 감사한 분들 이 십니다히히) 아무리 가족이 되었어도 친해지기 위해서는 그만큼 마음을 쓰고 또 마음에서 그치지 않고 어떤 방법이든 행동으로 옮겨야 한다는걸 알게되었고 또 나와는 어떻게 보면 어려운 관계일 수 있는 남편의 부모님과 가족들을 정말로 사랑하기 위해서는 모든 사랑의 조건인 나를 낮추고 남은 높이고, 이해되지 않더라도 인정하고 사랑하기로 마음먹는 희생이 따른다는걸 점차 깨닫게 되었다. 너무 엄마 자랑같아서 쓸까말까 고민을 많이 했지만 엄마가 아빠의 식구들에게 지금까지 보여준 사랑과 희생은 앞서 이야기 했던 엄마의 quality들 중에서도 나의 현재 결혼생활에 있어 가장 많이 도움이 되고 감사한 부분이다.  덕분에 나는 보다 편안하게 시댁식구들을 가족으로 받아드릴 수 있었고 살아오며 간접적으로라도 내게 가족의 하나됨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value라는것을 알게 해준 엄마에게 너무나도 고맙다.

또 한명의 ‘엄마’ 롤모델: 잠언의 현숙한 여인

자라면서 봐온 엄마의 모습 외에도 내게 엄마/아내를 통틀어 한 여자로서 강한 인상을 준 롤모델이 한분 더 계시다. 바로 그 유명한 잠언31장 후반부에 나오는 현명한 여인인데 내 자신에게 스스로 remind하는 차원에서 기록 해 보고싶다.

10 누가 현숙한 여인을 찾아 얻겠느냐 그의 값은 진주보다 더 하니라 11 그런자의 남편의 마음은 그를 믿나니 산업이 핍절하지 아니하겠으며 12 그런 자는 살아 있는 동안에 그의 남편에게 선을 행하고 악을 행하지 아니하느니라 13 그는 양털과 삼을 구하여 부지런히 손으로 일하며 14 상인의 배와 같아서 먼 데서 양식을 가져 오며 15 밤이 새기 전에 일어나서 자기 집안 사람들에게 음식을 나누어 주며 여종들에게 일을 정하여 맡기며 16 밭을 살펴 보고 사며 자기의 손으로 번 것을 가지고 포도원을 일구며 17 힘 있게 허리를 묶으며 자기의 팔을 강하게 하며 18 자기의 장사가 잘 되는 줄을 깨닫고 밤에 듣불을 끄지 아니하며 19 손으로 솜뭉치를 들고 손가락으로 가락을 잡으며 20 그는 곤고한 자에게 손을 펴며 궁핍한 자를 위하여 손을 내밀며 21 자기 집 사람들은 다 홍색 옷을 입었으므로 눈이 와도 그는 자기 집 사람들을 위하여 염려하지 아니하며 22 그는 자기를 위하여 아름다운 이불을 지으며 세마포의 자색 옷을 입으며 23 그의 남편은 그 땅의 장로들과 함께 성문에 앉으며 사람들의 인정을 받으며 24 그는 베로 옷을 지어 팔며 띠를 만들어 상인들에게 맡기며 25 능력과 존귀로 옷을 삼고 후일을 웃으며 26 입을 열어 지혜를 베풀며 그의 혀로 인애의 법을 말하며 27 자기의 집안 일을 보살피고 게을리 얻은 양식을 먹지 아니하나니 28 그의 자식들은 일어나 감사하며 그의 남편은 칭찬하기를 29 덕행 있는 여자가 많으나 그대는 모든 여자보다 뛰어나다 하느니라 30 고운것도 거짓되고 아름다운 것도 헛되나 오직 여호와를 경외하는 여자는 칭찬을 받을 것이라 31 그 손의 열매가 그에게로 돌아갈 것이요 그 행한 일로 말미암아 성문에서 칭찬을 받으리라.    잠언31:10-31

이 구절들이 마음에 정말로 와 닿기 시작한 건 결혼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나의 인생 말씀을 받았다 느꼈었던 시기였다. 앞으로 내가 안고갈 사명이라 생각하는 말씀은 이사야서 61:1-3 이긴 하지만 비슷한 시기에 이 말씀도 크게 와 닿았고 그러면서 나의 짧은 추측으로는 나의 사명과 결혼이랑 뭔가 연관성이 있지 않을까 생각을 했었다. 그래서 사실 나의 꿈은 결혼 상담이라 생각했던것도 있지만 그길이 맞는지 아니면 아닐지 아직은 잘 모르겠다 아니 점점 더 모르겠다(ㅋㅋ ) 난 그저 이 순간 배울 수 있는 것들과 할 수 있는 것들을 천천히 배워가며 해볼뿐. 내 마음에 소원함을 허락 하셨으니 이루어 가실거라 작은 믿음을 앉고 걸어가볼뿐. 어쨌든 지금까지의 결론은 사명보다도 현제 내 삶을 어떻게 살아가고 있느냐가 훨씬 중요한거 같다. 그리고 이 부분에 있어 하루도 빠짐없이 나의 약함과 마주하기 때문에 때론 낙망될 때도 있지만 약할때 강함되시는 그 분을 의지하며 다시 일어나 보는게 나의 일상의 반복이다. 언젠간 안넘어지고 몇발자국 더 걷는날도 있겠지..

다시 돌아가서! 현숙한 여인을 통해 내가 소망하게 된 엄마됨의 캐릭터는:

첫째, 여호와를 경외함. 가장 와닿는 부분은 30절이다. 고운것도 거짓되고 아름다운것도 헛되나 오직 여호와를 경외하는 여자는 칭찬을 받을 것이라. 여자이기 때문에 겉보기에 곱고 아름다운 것들에 자연스레 눈이가고 특히 아기를 낳고나니 뭔가 더 아줌마 같아 보이기 싫고 과하지 않으면서도 정돈되어 보이고 싶고 아기 낳고도 살안쩠네 예뻐졌네 이런 소리가 듣고 싶어지고 그랬다. 그런데 성경이 딱 찝어 얘기하더라 다 헛되다고. 적어도 이제 엄마가 되었으니 겉모습에 신경쓰기 보다는 아이를 위해서라도 뚜렷한 가치관이 있어야 한다 생각이 들기 시작했고 그 기준이 여호와를 경외함에서 부터 시작되고 싶다 소망한다. 왜냐하면 우리가족을 축복하고자 하시는 하나님께서 보고 계시고 또 하루가 보고 있으니까. 이 아이는 좋던싫던 나를 통해 습득할 부분이 있을테니까. 하나님을 의식하고 살아가는 삶이고 싶다.

둘째, 부지런함. 이건 내게 정말 어려운 부분이다. 일단 이 현숙한 여인은 엄청난 아침형 인간에 집안일을 완벽하게 책임져내는 부지런한 사람인거 같은데 일단 난 아침잠이 너무 달고도 많다. 지인 중에 아이 둘 엄마인데 아이들도 아직 어리고, 그런데도 하루도 거르지않고 새벽기도를 간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너무너무 도전을 받았다. 모두들 그래야 한다는건 아니지만 내게는 정말 닮고 싶은 부분이고 엄마로서 아침마다 하나님 앞에 나아가 자신을 낮추고 뜻을 여쭙고 중보자로 선다는 얼마나 귀한지.. 내 눈에도 이렇게 귀한데 하나님 눈에는 얼마나 예쁠지. 새벽기도 뿐만아닌 부지런함은 삶을 두고 도전하고 싶은 덕목이다.

세번째, 양식을 공급함. 엄마로서 이건 꼭 하고 싶다. 말씀에 나오는 여인처럼 밤잠을 조금 안자더라도 남편과 아이의 육의 강건함을 책임지고 싶다. 뭐 말은 이렇게 하지만 사실 잠이 밀려오면 이유식 한끼 만드는것도 귀찮을때도 많고 하루종일 육아하고 남편 저녁만드는건 더 귀찮을때도 많다. (남편미안..) 하지만 말씀을 읽으면 읽을수록 공급함에 대한 부담감이 든다. 특히 “남편의 마음을 그를 믿나니” “자식들은 일어나 감사하며 남편이 칭찬하기를 그대는 모든 여자보다 뛰어나다” 이런 구절들은 나를 아내로서 엄마로서 전진하게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렇게 내 역활을 충실히 다 해냈을때 남편과 아이가 내가 공급한 음식들을 맛있게 먹어주고 칭찬해 주면 정말 날아갈것 같이 좋다. 만약 하나님께서 우리 가족에게 더 많은 아이들을 보내 주셔서 아이가 둘이되고 셋이되고 넷이 될지라도 한결같이 영육의 양식을 공급할 줄 아는 엄마가 될 수 있기를 기도 해 본다.

현숙한 여인에 대해 쓰면서 그 여인의 여호와 앞에서의 행실이 가족들로 하여금 얼마나 축복에 이르게 하는지 함께 적혀진 이 성경 구절을 볼때마다 막중한 책임감을 느낀다. 하나님께서 주신 엄마라는 역활이 얼마나 소중하고 중요한지.

둘에서 셋으로 ch 2

아공이를 갖고 임산부로서의 지난 10개월

결심했다! 정말 솔직하게 다 기록 하기로. 임신하기 전 앞서 이야기 한데로 ‘아이를 갖는건 충분히 행복했던 우리 결혼생활에 nothing but a plus라고’ 생각했던 그 아이디어에 아직도 동의하는가? 전체적인 그림으로 봤을때는 A big YES! cuz if I were to go back, I know I would have made the same decision. 하지만 임산부로서 10개월의 과정을 거치면서 정말 단 한번도 짧디 짧았던 신혼생활을 접고 이렇게 일찍 아이를 갖은것에 대해 후회는 없는가 물어본다면, ‘후회’라 하기에는 이 모든 과정이 내가 결정할 수 있었던 문제도 아니고 생각만해도 눈물날꺼같은우리 금쪽같은 아공이를 절대 후회라 표현할 수 없지만, 아직 예쁜옷 입는거에 관심많고, 남편한테 잘보이고 싶고, 활동적인 취미가 많고, 하고싶은 일도 많고, 여기저기 가고싶었던 곳도 많던 새댁의 입장에서만 봤을때 그냥 무조건 해피해피 플러스플러스는 솔직히 아니였다, 쏘리ㅜㅜ 임산부로 10개월을 지나 오며 육체적으로 심적으로도 광야 였던건 분명하다.

Physical Change – 충격적인 육체의 고통/변화

10개월에 거쳐 뿡뿡 늘어난 belly 사진
10개월에 거쳐 뿡뿡 늘어난 belly 사진

임신기간 중 신체적으로 힘들었던 몇가지를 꼽을 수 있는데 그 중 단연 1위는 뭐니뭐니해도 입덧 이였다. 모든 임신은 사람마다 다르기때문에 꼭 이럴꺼라 단정 지을 수 없지만 나 같은경우 임신 9주 정도쯤 시작한 입덧은 7개월동안 계속 되었고 (중간에 조금씩 나아지긴 했지만 꾸준히 돌아오더라) 그나마 쉬어가는 시간이라는 second trimester에도 계속 머리아프고 토하고 정말 변기통 끌어안고 산거같다. 정말 어느 순간에는 끝날때까지 잘 수만 있다면 일어나고 싶지 않더라. 입덧이 가장 심했던 12주에서 20주, 정상적으로 생활하는거 자체가 불가능 했다. 일단 몸을 일으켜 세우기만 하면 속이 들끓고 이 세상 모든 냄새가 다 괴로웠다. 음식냄새는 말할것도 없고 심지어 클렌징냄새 조차도 견디기 힘들어 한동안은 썬크림도 못바를 정도였다. 하루에 몇 번씩이나 토를 해대니 목에서 피도나고 그냥 빨리 오늘이 지나갔으면 제발 내일은 나아지길하며 괴로워 하기만 했다. 이럴때 주위에서 누구는 이런 태교책을 읽고 있고, 임산부 필라테스를 시작했고, 심지어 어떤 임산부는 입덧을 하면서 일까지 하고 있다는 부지런하고 생산적인 하루하루를 보내는 임산부들이 얼마나 부럽던지.. 내가 생각한 임신과 현실은 달라도 너무 달랐다.

입덧 외에도 심한 두통, 허리통, 무릎 발목 손가락 뭐 어디 한군데 안아픈데가 없고 맨날 남편한테 안마의자에서 20분만 앉아있다 오면 소원이 없겠다고 노래를 불렀다. 게다가 임신 중기 쯤 전치태반을 진단 받아 한동안은 잔뜩 겁먹은 적도 있었다(태반이 회음부쪽으로 너무 내려와 있어 임신말기때까지 회복되지 않으면 자연분만은 불가능하고 여러가지로 산모와 태아에게 위험을 끼칠 수 있는 그런거란다.) 다행히 말기를 들어서 태반은 원위치로 돌아갔지만 그 후로도 빈혈이다 뭐 부족이다 뭐다 아무튼 항상 건강체질로 평생을 살아온 내게 임신기간의 육체적 고통은 말로 다 할 수 없었다.

Emotional Struggle – ‘내가 왜 이러지..’ 업다운업다운

남편이 찍어준 심신이 괴로워 자빠져 있는 내 모습
남편이 찍어준 심신이 괴로워 자빠져 있는 내 모습

일단 몸이 힘드니 마음을 지키는것 또한 너무 힘겨웠다. 섭섭이가 조금만 머리를 빼꼼 내밀어도 서러움이 파도처럼 밀려왔고 마음 먹은대로 컨트롤 되지 않았다. 그렇다고 임신기간 내내 우울하고 힘들었던건 아니지만 입덧이 심했던 초기와 임신 막바지 쯤에 마음 지키기가 참 쉽지 않았다. 아무래도 몸이 힘드니 사람들을 만나는일도 줄어들고 한동안은 전치태반으로 움직임을 최소화 하라는 의사의 명령이 떨어져 집에서 하루종일 별 기력 없이 지내다보니 어느 순간에는 모든 예능프로를 마스터하기 시작하며 미디어 중독자가 되어가는 느낌에 견디기 힘들었던 적도 종종있었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나같은 경우 하루종일 매일매일 특별한 어젠다 없이 집에 있다보니 하루이틀은 몰라도 금방 무기력 해지고 간단하게라도 계획을 세우지 않으면 하루는 허무하게 너무 금방 끝나버렸다. 잠은 또 얼마나 쏟아지던지..나도 모르게 잠들어 몇시간씩 낮잠을 자다가 일어나고 이런 날들이 반복되면서 임신했다고 이렇게 나태해 져도 되는간가 싶어 찜찜해지기도 했다.

어디 그 뿐인가! 가장 어이가없었던건 너무 유치하고 스스로도 이해가 안되서 공유 하기에도 참 부끄럽지만.. 먹고싶은거를 먹지 못했을때 그렇게 서럽고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더라. 못먹고 사는것도 아닌데 그냥 그 시간에 그게 먹고싶은데 먹을 방법이 없을때 out of control이 되어 한번은 이 이유로 남편이 영문도 모르고 크게 당해서 미안함이 많이 남는다ㅠㅠ 내가 보기엔 이건 원래도 왕성한데 더 왕성해진 식욕도 한 몫 했겠지만 내심 의도적으로 ‘임산부’ 타이틀로 유세를 부리고 싶은 미운마음과 그래도 그러면 안된다는 착한마음이 부딪치면서 나온 이상한 현상이였던것 같다.

임신 광야 이겨내기! (1) – 나만의 Tip/필살기

나만 겪은 임신도 아니고 아공이를 생각하면 그 어떠한 힘듬과도 비교할 수 없는 기쁨이 있기에 유세떨수도 없지만 쉽지 않았던것도 사실이다. 그렇지만 사막 한 가운데도 오아시스가 있듯 10개월간에 불편함 가운데에서도 순간순간을 이겨낼 수 있었던 나만의 tip이 생겼고 이 tip들로 인해 임신광야도 행복할 수 있었다.

1.임산부 community를 찾자 – “많이 힘들지? 괜찮아, 괜찮아 금방 나아질꺼야.” 

1.임신기간 내내 힘이 되어주신 감사한 분들 2.우리 목장 임산부 community
1.임신기간 내내 힘이 되어주신 감사한 분들 2.우리 목장, 임산부 community

이 시기에 ‘나 너무 힘들어~ 죽겠어’ 했을때 ‘그러지말고 밖에 나가서 좀 걸어봐’, ‘계속 누워있어서 그런거 아니야? 뭐라도 좀 해서 정신을 분산시켜봐’ 이래봐 저래봐 이런 말들은 저언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분노게이지만 높아질뿐. 나라고 방법을 몰라서 이러고 있겠니..그럼 너가 한번 해보던가! (남편들이여 절대 절대 괜한 조언이나 문제해결하려 들지 말기를 추천한다.) 다행히 평소 문제해결을 좋아하는 우리 남편도 이때는 그 어떠한 조언도 하지 않았다 good job! 이 시기 남편과 친한친구의 사랑해와 화이팅도 큰 힘이 되지만 그래도 가장 큰 도움이되고 위로가 되었던건 이미 이 과정을 거쳐 지나 이미 아이엄마가된 ex임산부들의 진심어린 한마디와 practical한 조언들이였다.

임산부들끼리도 전우애 같은게 생기는 듯한 느낌있다. 감사하게도 한참 힘들었을때 섬기고 있던 교회 목장에 나보다 두달 빨리 임신한 언니가 있었고, 내가 두번째 그 후로도 두달차이로 두분이나 더 임신을 하시고, 전 교회 적으로도 꽤나 단단한 임산부 community가 꾸려져 있는 상태였다. 몇달 전까지만 해도 배불러 있던 언니들이 귀여운 아이들을 데리고 나타나서 입덧으로 점점 말라가고 있는 나를 진심어린 긍휼의 눈빛으로 바라보며 공감해주며 ‘민경아 힘들지.. 좀만 참아’ 이렇게 한마디 해주는게 얼마나 힘이 되던지. 하루는 정말 모든걸 실성한듯 누워서 괴로워하고 있는데 목장에 두달 먼저 임신한 언니가 어떻게 소식을 전해듣고 위로의 카톡을 보내왔는데 그 메세지를 잊을 수가 없다. “I know what you are going through..” 이 한마디가 얼마나 감동이 되던지 주책맞게 눈물이 펑펑나고 혼자가 아니라는 생각에 거짓말처럼 힘이 쏟아나더라.

 2. 밋밋하게 먹자 – 다시 뱉어낼것을 염두해둔 식단

이것도 임산부 community를 통해 알게된 사실인데, 뭐 계속 뱉어 내다 보면 스스로 깨닫게 될 수 도 있겠지만 나 같은 경우 친한언니를 통해 생생한 입덧의 경험담을 듣고 그 언니가 추천한데로 ‘민경아, 절대로 토마토는 먹지말고가장 좋은건 흰 두부야’라는 그 조언을 그대로 실행에 옮겼다. 빈속은 견디기 어렵고 그렇다고 땡기는것도 없고 뭐라도 먹자니 이따 어김없이 찾아올 구토의 시간이 걱정되는 그때 연두부는 제대로 효녀역활을 해주었다. 입덧이 오락가락 해졌을때는 아주 맵거나 간이 쌘것만 아니면 그냥 토를 하던말던 먹기 시작하긴 했지만 가장 심했던 몇주간은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냉장고에서 바로 나온 쉬원한 연두부를 막 퍼먹으면 정말 그야말로 살것 같았다. 연두부 말고도 흰 쌀밥을 아주아주 불려서 죽처럼 만들어 먹거나 가끔 바나나도 괜찮았고 아무맛 안나는 크래커를 우걱우걱 씹어 먹는것도 괜찮은 방법이다.

일단 몸이 힘들면 마음과 영도 힘들어지기 때문에 내 몸이 그나마 가장 편안한 상태를 유지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건 아기를 위해서도 엄마를 위해서도 지혜로운 일이다.

3. 나를 몰두시킬 수 있는 무언가를 만들자 – 나만의 태교

나만의 태교1: 재미있는 컨텐츠 접하기
belly laugh, 첫 아기를 가진 부모에게, 베이비위스퍼, Ovia Pregnancy app
왼쪽부터 belly laugh, 첫 아기를 가진 부모에게, 베이비위스퍼, Ovia Pregnancy app

사실 난 책을 그리 좋아하는 사람이 아닌데.. 책을 좋아하는 남편을 만나고 그의 영향으로 책이 재미있어진것도 있는것 같기도 하지만 임신기간에는 이상하게 영상을 오래 보면 머리가 띵한 느낌이 들어서 (아까도 잠시 얘기했지만 영상만 들여다 보고 있으니 잠시잠깐은 재미있을지 몰라도 멍청이가 되어가는 느낌에 더 무기력 해 져서) 책읽는게 더 도움이 많이 되었던거 같다. 특히 입덧 중에는 영상이든 책이든 아무것도 들어오지 않았었는데 이때 격하게 공감하며 웃어가며 단숨에 끝내버린 책이 한권있었더니 바로 Jenny McCarthy의 Belly Laugh: The Naked Truth about Pregnancy and Childbirth이였다. 한국어 버젼이있나 찾아봤는데 아직 없다는 사실이 정말 안타깝다. 여기 Jenny McCarthy라는 방송인이 임신과정을 거치며 reality show와 같은 전개로 그녀의 솔직한 경험담을 물불안가리고 마구 털어놓은 책인데, 정말 재밌다!  사실 뭔가에 집중하거나 몰두해있을때 입덧이 조금 나아지는 경향이 있긴하지만 그 집중이 왠만 해서는 호락호락하게 되지 않는다는게 함정인데, 이 책을 붙잡고 첫 챕터를 읽는 동시에 임산부 영혼의 간지러운 부분을 정확히 알고 박박 긁어주는 듯한 쉬원함이 있었다!

첫 아기를 가진 부모에게 (영문버젼)  는 곧 부모가될 크리스챤 이라면 꼭꼭 읽어보길 추천한다! 이 책은 뱃속에 있는 아이를 위한 태교 보다는 곧 부모가 될 엄마아빠를 위한 책이고 표면적인 준비를 위한 정보위주의 책이 아닌 부모가 되기 위한 마음가짐과 앞으로의 아이가 태어나면 개인 신앙생활에는 어떠한 영향을 미치게 될지 또 어떻게 영적으로 더 단단히 준비될 수 있을지에 대해 실제로 첫 아이를 갖게되며 여러가지 심적 변화를 마주한 부부의 실제적 경험담 + 저자 뿐만아닌 다른 부부들의 생동감 있는 이야기들도 담겨있다. 사실 결혼준비를 할때는 과거의 연애에서 겪은 시행착오로 인해 배운 부분도 있고, 결혼관련 서적이야 말로 어딜가나 쉽게 접할 수 있고 또 우리 부부같은 경우는 남편이랑 결혼 전 부터 서로의 여러가지부분을 체계적으로? 일부로 주제를 정해서 나누기도 했었기 때문에 결혼을 하면서는 아내로서의 내 모습과 결혼 후 우리부부의 모습을 어느정도는 그려볼 수 있었는데, 아이가 생기고나니 엄마로서의 내 모습도, 부모가 된 우리와 이젠 둘이 아닌 셋이서 만들어갈 가정의 모습도 전혀 머리속에서 정리가 되지 않았다. no idea 였다. 주위에서는 무엇을 상상하던 그 이상이라고들 하시는데 물론 지금도 어떤 그림을 기대해야 할지 또렷하게는 잘 모르지만 그래도 이 책을 통해 간접적으로 나마 경험해 볼 수 있었고 막달에 와서는 처음보다는더 공감이가고 적어도 어떤 마음으로 부모의 role에 임해야 할지 조금은 알것같기도 하고 용기도 난다.

그리고 베이비위스퍼 이건 워낙 유명한 책이라 아실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공유 해본다! 이유는 내가 읽은 유일한 정보 관련 책이라서… 이런 practical한 레슨을 배워야 할 책들은 내 몸이 좀 감당할 수 있을때 읽기 시작해도 늦지 않은거 같다. 특히 나 처럼 엄마의 심적건강이 최고의 태교라는 점에 동의 하는 분들은 굳이 남들 하는 태교 따라서 하는것 보다는 나만의 방법으로 몸과 마음을 fresh하게 10개월간 유지할 수 있는것이 훨씬 더 좋은 방법이라 생각된다. 사실 또 개인적으로 막상 아기가 태어나서 상황에 부딪치면 뭐든 어차피 다 하게될꺼고 잘 해낼 수 있을것 같다는 막연한 자심감에 그 좋다는 What to Expect When You Are Expecting도 안읽고 나 하고 싶은것만 하면서 뻗팅기고 있었는데 나중가서 남들 다 아는거 나만 모르고 있는듯한 느낌이 많이 들어서 조바심에 조금씩은 읽어 보았다. 근데 또 막상 읽어보니 새롭게 알아가는 맛이있어 재미있기도 하더라. 사실 그 외에도 책은 아니지만 What to Expect웹/app 이나 Ovia Pregnancy 라는 app도 주기적으로 아기의 싸이즈를 과일이나 야채에 비교해서 알려주고, 때에 따라 아기의 상태와 엄마가 겪게될 symptom에 대해서도 정보를 주어서 매일 체크하는 재미가 있었다. 오늘은 아기의 위장이 develop되고 있어요. 오늘은 아기가 처음으로 눈을 떴어요 등등 내가 모르는 사이 뱃속에서 일어나는 아공이의 상태를 조금이나마 파악 할수 있는 즐거움에 육체의 고통도 잠시나마 잊게 되곤했다.

나만의 태교2: 내 영혼의 쉼터 찬양팀 
남편과 섬길 수 있어 더 뜻 깊었던 새누리교회 찬양팀
남편과 섬길 수 있어 더 뜻 깊었던 새누리교회 찬양팀

사실 남편과 나 둘다 노래에는 그닥 소질이 없다. 하지만 둘다 노래하는거를 좋아하고 특히 찬양을 정말 좋아한다. (우리끼리 가정예배 볼때 나는 굳이 기타를 띵까띵까치고 오빠는 굳이 코러스를 넣고 아무튼 밖에서 누가 들으면 뭐지 싶을꺼다..) 찬양팀은 전부터 너무 섬기고 싶던 부서였는데 임신을 하고 나니 왠지 오래 서있으면 안될꺼같고 나름 노래는 배로 해야된다고 들었는데 배에 힘을 너무 주다가 무리가 오면 어쩌지란 생각이 들긴 했는데 입덧 기간중 그 혹한 괴로움을 잠시나마 잊게 해주는 순간이 딱 찬양하는 시간인걸 깨달았다. 찬양할때는 힘듬을 묵상하기 보다는 진짜 예배드릴 수 있었고 답답한 내 마음을 토해 낼 수 있었다. 특히 입덧이 유난히 심했던 고난주간 예수님께서 우리를 죄에서 벗기시고 새롭게 태어날 수 있도록 이 세상 모든 고난을 감당 하셨다는 20년 넘게 들어온 그 스토리가 얼마나 새롭게 와닿던지, 아기 한명을 이세상에 낳아주기 위해 엄마가 겪는 고통이 출산전부터도 이렇게 힘든데 예수님이 전 인류를 위해, 나를 위해, 이 힘든 입덧을 뛰어넘는 고통을 이겨내셨다 생각하니 눈물이 펑펑나고 찬양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감사함으로 시작한 찬양팀을 중간에 전치태반으로 인해 잠시 쉬어야 할때도 있었지만 그래도 다시 복귀해 얼마전까지 섬길 수 있었고 이를 통해 육체의 고통에서 자유했을 뿐만 아니라 남편과도 더 하나되는 느낌이 들었고 그 시간 만큼은 내 영혼이 확실히 쉬고 있다는 느낌에 행복하고 감사했다.

특히 아공이에게 가끔씩 말씀을 읽어준건 있어도 (읽어줬다기 보다는 그냥 내가 읽을 때 큰소리로 읽는 정도..) 태교 책을 읽어주거나 동요를 들려주거나 태담을 열심히 해주거나 이런건 특별히 없는거 같아 미안한 마음이 있었는데 찬양을 부를때 왠지 아공이가 찬양 부르는 내 목소리를 기억할 것 같고, 주님께 드리는 찬양이지만 아기도 뱃속에서 듣고 같이 찬양 하고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에 이거야 말로 내가 할 수 있는 나도 기쁘고 아공이에게도 좋은 진정한 태교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만의 태교3: 아공이에게 편지쓰기

태담은 너무 어색하고 민망했다. 어떤 분들은 꼭 극복하고 뱃속에서부터 목소리를 많이 들려줘야 아기가 나와서 덜 당황하고, 뇌가 발달하고 이렇고 저렇고 조언을 많이 해 주셨는데 죄송하지만 난 그게 마음처럼 잘 안되더라. 그래도 노력해 보려고 배를 쓰담아 보면서 ‘아공아 안녕? 엄마야~’ 한마디 하고 나면 더이상 할말이 없었다. 그래서 어떻하면 아기와 좀 더 친해지고 소통해 볼까 생각 해보다 짧게짧게 라도 편지를 써보기로 했다.

우리부부의 연애부터 결혼까지 모두 담겨져 있는 Evernote에 담아둔 아공이에게 보내는 편지
우리부부의 연애부터 결혼까지 담겨져 있는 Evernote에 기록한 아공이에게 보내는 편지

몇번은 ‘이거 나중에 아공이에게 보여줘야지’ 작정하고 써보기도 했지만, 나 같은 경우 그렇게 쓴 편지는 계획없이 슉 적은 편지에 비해 솔직함도 좀 떨어지고 뭔가 좋은 엄마로서 보여주려는 느낌이 많이 나는거 같아서 그 후로는 마음에 감동이 올때마다 자유롭게 사진도 넣고, 책에서 와 닿은 구절도 넣고하며 일기 형식으로 쓰기 시작했다. 사실 아주 많은 양을 쓴건 아니지만 쓰다보니 아공이와도 더 친해진것 같은 느낌이 들었고, 나의 하루를 아공이와 함께 보내는 듯한 느낌이 들어 마음도 잔잔하니 평안했다.

임신광야 이겨내기! (2) – 행복했던 순간들

광야여서 힘들었지만 또 광야 였기 때문에 소소한 행복도 더 크게 느껴졌고, 어쩌다 한번씩 찾아온 escape도 더 달게 느껴졌다. 지침가운데 단비처럼 느껴졌던 그 순간들도 기록하고 싶다.

1. 남편과 함께한 Sweet Escape – Babymoon & Camping

위에는 남편과 Los Cabos해변에서 빙빙 돌면서 찍은 영상이다. 일정을 길게 잡고 떠날수는 없던 상황이라 2박3일 짧게 다녀왔지만 날씨가 어땠고 호텔 시설이 어땠고를 다 떠나서 맨날 집에만 있다가 ‘남편과 떠난다’라는 사실 하나만으로 너무 행복하고 달달하기만 했다. 떠나기 몇일전 까지만 해도 입덧으로 힘들었고 3시간 비행기 타는것도 약간에 부담이 있었지만 작년 신혼여행계획으로 끈어놓았다가 비자문제로 떠나지는 못하고 대신 크레딧으로 받아놓은, 곧 expire 하는 Los Cabos행 비행기표가 있었기에 급 가자가자해서 만들어진 우리의 Babymoon! 사실 나의 몸상태도 온전하지 못해서 진짜 유명한 관광명소 이런데도 못가고 호텔에서 2박3일동안 미지근 했던 수영장물에 몸 좀 담구고, 해변가에서 사진 찍으면서 놀고, 주로 남편이랑 책보고 엄청먹고 여유부리면서 우리 집에서 주말에 노는거랑 비슷하게 놀다온게 전부이긴 하지만 sweet escape이여서 그런지 기억에 많이 남고 지금 생각해도 행복한 미소가 지어진다.

Los Cabos해변가에서 사진찍기 놀이
Los Cabos해변가에서 사진찍기 놀이

Babymoon을 다녀온지 약 두달 후, 입덧상황이 전보다는 훨씬 나아지기 시작하고 작년 씨애틀로 신혼여행 갔을때 사놓은 텐트도 안쓴지 오래됬고 더 늦기전에 우리끼리 캠핑을 한번 더 가야되지 않겠냐는 마음에 집에서 가까운 Henry Cowell State Park로 1박2일 다녀오게 되었다. 두번째 sweet escape! 사실 실수로 에어메트리스를 안가지고가서 자면서는 꽤나 고생스러웠고 늦게 도착하는 바람에 고기도 힘겹게 구워먹었지만 그때도 ‘남편과 함께 떠난다.’ 라는 생각만으로 행복했고 지금 추억해 보아도 신나기만하다.

텐트치고 고기먹고 trail걷고
Camping 사진: 텐트치고 고기랑 짜파게티먹고 trail걷고 낮잠자고

2. 감사한 분들과 함께 할 수 있어 더 뜻깊었던 Baby Shower

1.친정부모님과 찍은 사진 2.아공이 선물들과 함께
1.친정부모님과 찍은 사진 2.아공이 선물들과 함께

처음에는 누군가는 고생해야하고 번거로울꺼 같다는 생각에 안 하기로 마음먹었었는데 그래도 첫 임신이고 이것도 추억인데 해야하지 않겠냐는 친구들과 친정엄마의 유혹에 간단히 설득 당해 결국 친정엄마네서 친정 부모님이 열어주신 베이비샤워를 갖게 되었다. 이날 계획에 없었다고 하기에는 너무 화려하게 많은 분들 모시고 뜻깊은 시간 갖게되어 행복하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너무 받기만 하는것 같아 죄송한 마음까지 들었는데 결국 우리부부가 우리 삶속에 하나님께서 보내주신 이 감사한 분들께 해드릴 수 있는건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하는거 밖에 없다는 생각에 베이비샤워 이후에 개인적으로 삶속에서 중보기도가 많이 회복되어 더더욱 감사했다. 다시한번 너무 감사해요..

(위에는 친정아빠가 만들어 주신 그날 스캐치영상. 정말 감사합니다 ㅠㅠ)

둘에서 셋으로 Ch 1

2015.02.18 남편님의 생일, 우리 아공이는 임신테스트기를 통해 엄마아빠에게 살며시 Hello를 건냈다. 아주 생각지도 못한 임신은 아니였지만 당시 한 달 후인 3월14일 한국 결혼식을 앞두고 있었던터라 지금 생각 해 보면 약간의 당혹감이 있었을 수도 있었을 법했을텐데도 아공이의 Hello는 두번 생각할 겨를도 없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기쁨이 었다. 사랑하는 남편과 내가 섞인 우리의 2세가 지금 내 뱃속에서 꿈틀꿈틀 열심히 만들어 지고 있다니! 가장 먼저 혼자 방문을 닫고 감사기도를 드렸다. ‘주님 제게도 이 축복 감당케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남편에게 이 기쁜소식을 어떻게 전해야 할까요? 지금 당장 전화해서 알려주고 싶지만 그래도 얼굴보고 전달하는게 더 좋겠지요? 정말 감사해요 주님 짱이에요’

아공이 임신사실을 알고난 후 남편fb에 올라온 사진
아공이 임신사실을 알고난 후 남편이 fb에 올린 사진: “Omg. For sure the best B DAY of my life. Thank you Lord..”

아공이를 갖게되기 까지의 과정과 마음의 변화

임신 사실을 알게된건 남편생일 당일 이였지만 사실 하나님께서 아공이를 내게 보내 주신과정까지도 난 임신 journey안에 간직 해 두고 싶다. 남편과 나는 결혼 전부터 큰 가정을 꾸리고 싶다는 뜻에서는 한번에 의견충돌 없이 동의 해 왔다. 무슨이유에서 이런 숫자가 나왔는지는 잘 기억이 안나지만 9월달 혼인신고를 마치고부터 우리 머릿속에는 벌써 네 명의 아아들이 그려져 있었고 우리끼리의 신혼생활도 참 즐거웠지만 하나님께서 허락만 하신다면 굳이 신혼을 즐기기위해 2세를 미루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었다. 오히려 아이가 생긴다면 이 또한 공동 책임이고 미션이기 때문에 무언가를 함께 공유하고 같이 만들어 가는걸 좋아하고 즐기는 우리의 성향상 당시 충분히 행복했던 우리의 결혼생활에 nothing but 플러스 작용 밖에는 불러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였다. 지금 막달 임산부로서도 그때 그 생각에 변함이 없는가? 전체적인 그림으로 봤을때는 yes 하지만 그 안에 따라오는 여러가지 부수적인 디테일을 살짝이나마 맛본 소감은 humm..idk (웃음) 여기에 관해서는 뒷부분에 가서 나누고 싶다.

서서히 찾아온 불임에 대한 불안감 – 과연 나도 임신 할 수 있을까?

주위에서는 ‘넌 아직 나이가 그렇게 많은것도 아니고 시도를 해본것도 아닌데 도대체 왜?’라 물을 수 있겠지만 사실 여자가 갖는 불임/임신에 대한 두려움의 이유를 딱 한마디로 정리하기도 어렵고 그게 무슨 이유가 되냐고 판단 하기에도 이건 너무 복잡한 심경인것 같다. 아직 일어나지 않은일에 대해 미리 걱정하기 좋아하는 성향상 주위에서 들리는 불임에 대한 이야기들로 인해 막연히 ‘나라고 아닐거란 보장이 있나’ 라는 심리도 일수도, 딱히 병원에서는 별말이 없었지만 불규칙한 주기와 전혀 predict이 되지 않는 나의 상태로 인해 이게 도대체가 제대로 function을 하고 있는건지 불안할 수도 있는 법이고 더러는 혹시나 성경에서 종종 나오는 재앙처럼 과거에 저지른 죄의 결과로 인해 혹시나 하나님께서 나의 태를 막아버리셨으면 어떻하나 이런 걱정을 하는 크리스챤들도 종종 보았다. 나 또한 아이를 너무너무 원했고 길진 않았지만 몇번의 시도 끝에도 별다른 결과가 없었던 시간을 지나며 슬슬 불안한 마음이 타고 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불안함 마음이 들어올때 마다 나의 약함과 부족함 죄성들이 마음에 많이 거슬렸다.

구약성경을 읽다보면 성경속 인물들이 죄의 결과를 감당하는 경우들을 종종 접하게 된다. 그렇지만 지금 우리는 그리스도 십자가 사건 이후 은혜의 법 아래 살고있고, 생명과 성령의 법으로 인해 죄와 사망의 법에서 완전히 해방된 우리에게 성경은 분명히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 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 (요일1:9) 라 선포하고 있다. 하지만 성령의 열매가 있듯 죄 에도 열매가 맺히기 마련인데 비록 내가 지은 죄에 대한 회개로 나는 불의에서 씻김받고 주님께서는 이미 회개한 죄목에 대해서는 기억하지 않겠다고 분명히 말씀하셨지만 때론 이 죄로 인해 파생된 열매에 대한 대가를 감당 해야할 상황도 오기 마련이다. 예를들어 나의 죄로인해 상처받은 상대방이 있다면 내가 회개하고 용서받았단 이유로 그 상대방까지 즉시 나를 용서하고 받아드릴거라는 보장은 없는거다. 모든 문제가 해결 되기까지 오랜 기다림이 요해질 수도 있을테고, 이미 내 손을 떠난 부분에 대해서는 그냥 믿음으로 주님께 맡겨 드리고 기도 하는 수 밖에 없는거다. 좀 더 dramatic한 예로는 올초 접하게된 책 <<뜻밖의 회심>> 을 통해서도 볼 수 있었다. 이 책은 28세 공식적으로 본인이 레즈비언임을 선언하고 미국에서는 꽤 유명한 페미니스트 교수로 인정받으며 포스트모더니즘에 푹 젖어 크리스챤이란 존재는 반지성적이고 배타적인 존재라 인식하고 있던 Rosaria Butterfield 이라는 한 여성이 회심해가는 과정에 대해 본인이 쓴 간증글이다. 비록 이 책의 주요 내용은 이게 아니지만 결론적으로 이 여성은 회심 후 결혼을 했을 당시 이미 39세, 가임연령을 넘긴 상황 이였기에 아이를 갖을 수 없었다.

(동성연애라는 주제를 떠나 한 영혼이 주님안에서 회심하게 되는 과정을 낱낱이 사실적으로 기록 해 주셨다. 어떻게 이렇게 솔직하게 다 공개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회심에 대해 다시 한번 깊이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 될것이다.)

이 여성의 회심이 주님께서 보시기에 아름다운 회심이 였다면, 용서 하셨고 다시는 이 여성이 회심한 부분에 대한 죄를 기억하지 않으신다면 왠만하면 아기를 낳을 수 있는 function까지 허락 해 주시지.. 그거야 말로 얼마나 우리가 바라던바이고 완벽한 은혜일까. 책을 읽고 난 후 이런 생각이 들었고 책에서 로자니아 역시 이렇게 고백한다 “아무런 제약 없이 맘껏 죄와 더불어 산 사람은 반항심 가득한 철부지처럼 행동한다는 것이다. 아무런 제재를 받지 않을 때 죄는 사람들을 아이처럼 만든다. 나는 내가 아주 성숙하고 유능하며 ‘중요한’ 사람인 줄 생각했었지만 사실은 제 나이에 맞게도 살지 못한 인간이었던 것이다. 회심을 하고 난 뒤 나는 내 실제 나이에 충격을 받았다.” 과거의 죄에 대한 후회는 회심 후에도 어쩔 수 없이 감당해야 할 부분이겠지만 at the same time 분명한 사실은 십자가의 은혜 보다 완벽한 은혜는 이세상에 없고, 이에 비해 우리 눈에 보이는 결과와 기준은 너무 주관적이고 완벽할 수 없다는거다. 비록 로자니아는 임신의 축복을 누리지는 못했지만 하나님께서는 입양을 통해 이 가정에 아이를 무려 네명이나 허락 하셨고 이들은 모두 홈스쿨링을 통해 건강히 자라고 있다한다. 비록 이 모든 과정을 직접 겪어보지 않은 입장에서 그 어떠한 코멘트도 모두 조심스럽지만 로자니아가 지나온 이 모든 과정들 가운데 불안과두려움 보다는 그것을 뛰어넘는 평안이 있지 않았을까 감히 짐작 해 본다.

나 또한 얼마나 죄 많은 인간이고 또 회심한 그리스도인으로서 많은 경우 회개를 하면서도 용서를 받은거 같으면서도 죄의 열매까지 모두 맡겨드리는 과정에서는 무너져버리는 경험을 수없이 많이 해보았다. 믿는다고 이야기 하면서도 마음에는 평안이 없고 이미 회개한 죄인데도 왠지 이 죄는 그 죄보다 좀 더 중한거 같은데 한번으로 안될꺼 같은데하며 은연중 죄의 정도까지도 나의 기준으로 판단하며 은혜의 자리로 나아가기를 두려워 할때도 종종 있다. 특히 아기를 갖고 싶단 생각을 하다보니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들어오더라. 결론만 이야기하자면 하나님은 아기를 갖고 갖지 못하고의 주제에서 떠나 나와 먼저 대면하고 싶어하셨다. 그리고 당시 날 불안하게 했던 그 동안 몇번이고 회개한다고 눈물로 올려드렸지만 그래도 뭔가 부족하단 생각에 완벽하게 맡겨드리지 못하고 자유 하지 못해온 나의 묵은 죄와 약함과 마주할 수 있는 사건을 접하게 하셨고 그때 그 시간을 통해서야 드디어 완벽하게 나의 죄와 그 죄로 부터 파생된 열매 까지도 모두 주님께 믿음으로 드릴 수 있게 되었다고 감히 이야기 해본다. 하나님께서 날 용서 하셨다는데 내가 믿지 못하고 놓지못하는건 어리석을 뿐만 아닌 교만 임을 깨닫고 진짜 회심뒤에는 그 이후의 모든 결과 까지도 주님께 맡겨 드릴 수 있는 평안이 따라온다는것도 알게되었다. 얼마나 감사한지 .. 만약 두려움이 해결되지 않은 상태에서 아공이가 생겼다면 믿음의 결과로 얻은 평안이 아닌 아공이로 인한 평안이 되었을 테고 그랬다면 왠지 첫단추가 잘못 끼워진것 같은 찝찝함이 있지는 않았을까 생각이 들기도 한다.

아공이가 아공이된 이야기 – 아공이가 우리부부에게 와준 이야기

계산해 보니 아공이가 와준건 1월달, 남편은 거의 한달간 뉴욕출장을 떠나 있었고 우리가 함께 보낸 시간은 비자관련 인터뷰를 보기위해 남편이 4일정도 집에 와있었던 기간이 전부였다. 그리고 찾아온 2월달, 남편의 뉴욕일정을 마무리하며 결혼하고 첫 발렌타인데이를 뉴욕에서 보내보자는 큰 기대와 함께 남편이 돌아오기 3일 전에 나도 뉴욕으로 향했고 (발렌타인데이의 추억은 잘 모르겠고 오랫만에 만나서 기뻤던거랑, 엽기떡볶이를 같이 안먹으러 가줘서 삐진거랑 남편 미팅따라서 toy fair 구경간거 정도 였던거 같다ㅋㅋ) 비록 같이 보낸 시간이 길지는 않았지만 또 날짜가 다가오다 보니 별 생각없었다가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도착한 첫날 테스트기를 구입했다. 그날 저녁 무슨 이유 였는지 기억도 잘 안나지만 우리 둘 사이에는 묘한 탠션이 흐르고 있었고 그 와중에 난 궁금함을 참지 못하고 버스 정류장 화장실에서 테스트기 두개 중 한개를 사용했다.

너무너무 추웠지만 기억 만큼은 따스한 2월의 뉴욕
너무너무 추웠지만 기억 만큼은 따스한 2월의 뉴욕

당시 다음달인 3월 말에는 섬기는 교회에서 남아공 단기선교 일정이 잡혀 있었고 선교가 너무 가고싶었던 나로서는 아이가 생기면 한 동안 어려울지도 모르니 올해는 연초에 어디라도 다녀오고 싶은 마음이였다. 하지만 이제는 싱글이 아닌 결혼한 유부녀인데 남편의 확실한 동의와 지지없이 그냥 내 맘대로 가고싶다고 무조건 주장해서 가는것도 아닌거 같다는 생각에 두가지 경우를 걸고 기도했다. 첫째: 3월달까지 임신이 아닐경우. 둘째: 남편이 먼저 남아공 선교에 대해 다녀오라고 권할 경우. 두 조건이 일치하면 answer이라 여기고 기쁜마음으로 다녀와야지 하고 있었는데 일단 그날 버스정류장에서는 어느정도 기대하고 있었던 두줄을 보지 못했다. ‘에이 이번달은 좀 늦나보다’하고 툭툭 털고나와 남편한테 ‘아닌가봐~’하고 소식을 전했는데 약간 냉전상태 였는데도 남편의 입에서 나온 첫마디가 ‘그래? 그럼 남아공 선교 갔다 와야하지 않겠어?’ 하는게 아닌가! 너무 신기해서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냐고 물어보니 남편도 두가지 경우를 놓고 기도하고 있었다고 했다. 첫째: 뉴욕으로 이사를 가지 않게될 경우 (당시 회사의 사정에 따라 이사를 가느냐 마느냐 갈림길에 놓여있었다.)  둘째: 임신이 아닐 경우. 남편은 이 두 가지 조건이 일치하면 answer이라 여기고 기쁜마음으로 아내를 선교에 보낼 작정이였다고. 비록 임신은 아닌가보다 했지만 올해도 내게 선교여행을 허락 해 주신 하나님께 너무 감사했고 더군다나 남아공이라니! 처음으로 접하게 될 아프리카의 어린 아이들, VBS율동을 따라하며 신나할 모습과, 그런 그들의 예배를 기뻐 받으실 하나님의 미소를 생각하니 마음이 너무 들떴다. 그날 바로 일본선교때 함께 했던 당시 졸업 후 자유를 만끽하고 있던 나의단짝을 같이 가자고 꼬시기 시작했다. 몇일 지나지 않아 하나님께서는 선교메이트라 해도 과언이 아닌 나의 단짝의 마음도 열어주시고 그렇게 우리는 google doc을 통해 손발척척 팀워크를 발휘하며 VBS준비를 시작했다. 그런데 이상했다. 첫 태스트기를 사용한건 14일 그 후 캘리포니아로 돌아와 4일이 지난 18일은 이미 날짜를 일주일 이상을 넘긴 시점 이였고 그래도 몸에 아무런 신호가 없었던 적은 거의 없었는데.. 하던일을 잠시 멈추고 뉴욕에서 샀던 남은 태스트기를 들고 화장실로 직행했다. 그리고 그날, 남편의 생일날 아공이의 존재에 대해 알게 되었다.

그래서 아공이는 ‘아공이’가 되었다. 남아공의 ‘아공’이다 남아공 선교대신 우리 부부에게 허락하신 장기선교(ㅋㅋ) 남아공도 못가게 되고 올해 아니 어쩌면 앞으로 몇년간은 해외단기선교를 떠나기에는 무리가 있겠지만 아공이는 내게도 남편에게도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큰 기쁨이고 처음보다 지금, 어제보다 오늘 더 하나님께서 우리 부부에게 맡겨주신 이 생명을 사랑해주고 올바른길로 인도해 주어야 할 책임 또한 더욱더 가까이 피부로 와 닿는다. 그리고 이제 얼마 후 ‘하루’라는 이름으로 이 세상을 살아갈 우리 아공이가 세상에 나오게 되면 부모로서의 mission에 대해 더 배우고 깨닫는 바가 많겠지. 지금까지 맛보지 못한 기쁨과 웃음이 있겠지만 그에 버금가는 아픔과 눈물도 많겠지.아직 아무것도 모르고 체험하지 못한 새로운 journey라는 생각에 exciting하고 이 과정을 내가 이세상에서 가장 사랑하고 좋아하는 두 사람, 남편과 아공이와 함께 할 수 있음에 감사하고, 무엇보다도 주께서 got our back하고 계시니 든든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