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로,부모로 Ch 1 – 엄마 이상형

2015년 10월29일 16시04분. 기다리고 기다리던 딸과 첫 눈을 맞추었다. 3.1kg에 50cm 밖에 안되는 이 조그마한 사람이 자그마치 10개월간 내 속에 있다가 손가락 10개 발가락10개 다 달고 나와 가슴위에 올라와 있다는게 실감이 잘 안났다. 하지만 아기가 나오기 바로직전 얼마후 처음 겪게 될 예측가지 않는 상황과 고통에 대한 두려움의 눈물은 어느샌가 감사와 감격의 눈물로 바뀌어져 있었고 그 순간 내 품안에 안긴 따끈따끈한 쪼그만 심장이 콩닥콩닥 뛰는 움직임이 느껴질때 마다 마음속으로 무조건 다짐할 수 있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엄마가 꼭 너를 지켜줄께’ 하고. 그렇게 나는 엄마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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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출산 직전 남편과 까불며 놀던 나                       2.하루가 나오자마자 엄마가 된 순간

엄마가 된다면 뭔가 좀 더 성숙해 지고, 그동안 고치지 못했던 못된 습관들도 저절로 고쳐지고, 나의 이런저런 부족한 부분들이 엄마가 됨가 동시에 조금은 나아질 수 있을거란 막연한 생각을 해 왔던거같다. 하지만 기대했던것 처럼 막무가네의 성숙은 이루어 지지 않았다. 아기가 있다 뿐이지 나는 여전히 나였다. 그렇지만 한가지 다른점이 있다면 엄마이기 때문에 ‘성숙’의 단계로 나아갈 수 있도록 push하는 요소들이 몇가지 생겼다는 점이다. 내 안에 어느 순간부터 ‘난 이런 엄마가 되고 싶어’라는 기대치가 있다는걸 발견했고 그 뿌리로 되돌아 가 보니 그곳에는 다름아닌 그동안 나를 키워주신 우리엄마의 모습이였다. 엄마가 된 후에 가장 많이 감사하고 미안하고 놀라운 사람, 우리 엄마. 엄마가 된 나의 이야기 이전에 먼저 엄마를 통해 만난 나의 ‘엄마 이상향’을 먼저 소개 하고 싶다.

 나는 우리엄마 같은 엄마가 되고 싶었다.

남편과 연애시절 이런저린 이야기를 하다가 남편이 물었다. “민경이는 삶을 통틀어 롤모델로 삼고 싶은 사람이 있어?” 참 다른 성향에 참 다른 환경에서 자라온 우리둘. 남편의 이 질문은 내겐 너무 생소한 topic이였다. 롤모델이라.. 물론 이런 저런 분야에서 존경하는 사람이야 있어봤지만 롤모델이 엄청많았고 앞만보고 열심히 달려온 남편에 비해 나는 비교적 순간순간을 즐기는 ESFP성향에 예수님 외에는 딱히 힘써 닮고싶다 느껴본적이… 그때 딱 한명 생각나더라. 맞다. 그때 생각났던 그 사람이 바로 우리 엄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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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랑 시에틀 여행중_SAM

엄마는 나랑 참 다르다. 나는 얼굴도 성격도 완전 아빠를 닮았고 엄마랑은 사실 많이는 닮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자라면서 엄마는 내가, 나는 엄마가 답답할 때도 많았지만 (엄마는 매사에 신중하고 생각이 많고 조심하고.. 나는 매사에 급하고, 즉흥적이고) 그래서 인지 또 엄마의 조언은 거의 단 한번도 빗나가 본 적이 없다. 나를 완벽하게 파악하고 있어서 이기도 하겠지만 그 이상으로 날 너무나도 잘 아는 엄마는 항상 그녀만의 현명함과 mother instinct로 내가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이렇게만 얘기하면 너무 카운슬러같은 느낌만 들지몰라 소개를 조금 더 덫붙이자면 우리 엄마는 누구보다도 사랑이 많고 눈물도 많고 사진처럼 가장 소녀스러우면서도 가장 엄마다운 멋진 사람이다.

섬기는 사람

어릴적 부터 엄마는 나와 내 동생과 잘 놀아주셨다. 같이 원카드도 많이 했고 우리를 데리고 롯데월드에 놀러갈때도 굳이 한강유람선을 태워갈 만큼 (아기를 한명만 낳아보아도 그게 어른으로서 얼마나 번거로운 일인지 알 수 있을꺼 같다.) 우리가 좋아하고 재미있어 하는것들을 최대한 경험시켜 주는 열정이 있으셨다. 이런 엄마의 열심은 하나님 앞에서도 한결같았고 내가 기억하는 많은 엄마의 모습들 중에서도 섬김의 자리에서 순종하는 엄마의 모습은 내 마음속에 가장 진하게 남아있다. 엄마는 내가 어릴적부터 몸된 교회에서의 섬김을 그치지 않으셨다. 내가 이러한 엄마의 모습을 기억하는 시작점인 초등학교 4학년 가족들이 모두 함께 중국에서 지냈을때 엄마는 토요일날은 한글학교 선생님으로 주일날은 주일학교 선생님으로 섬김을 시작하셨다. 학교에 와있으면 다른애들은 다 혼자 와있는데 나는 옆반에 우리 엄마가 있었고 주일날은 유년뷰 예배실에서 엄마랑 같이 예배드릴 수 있어서 참 좋았던 기억이 난다. 특히 가장 기억에 남는건 매년 여름 열렸던 2박3일 열린 여름성경학교에서의 모습인데, 그때 어린나의 체감상 자는시간 빼고 하루종일 다른 선생님들이랑 미팅하면서 기도하고 프로그램 짜고, 프린트 물은 또 왜 그렇게 많은지 그 많은걸 공부해가면서 때로는 진행 때로는 율동 그 와중에도 밝고 행복해 보였던 엄마의 모습을 잊을 수 가 없다. 그리고 여름성경학교의 하이라이트 예수님십자가 촟불예식을 할때면 또 얼마나 울던지, 이친구 저친구 끌어안고 울면서 기도해 주고 제일 마지막에 예식이 끝나갈 때 쯔음 눈은 빨갛게 퉁퉁 부었는데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표정을 지으면서 나한테 다가와 나를 끌어안고 기도해 주고 사랑한다고 말해 주던 엄마의 온기 또한 잊을 수가 없다. 이런 엄마의 모습은 내게 어느순간 부터 엄마가 갖추어야할 당연한 characteristic이 되어버렸고 내가 엄마가 된 지금 가끔씩 우리 하루가 자란후 AWANA에 가게 된다면 또 주일학교를 시작한다면 그곳에서 혼신을 다해 섬기고 있는 내 모습을 그려보게 된다.

엄마의 이런 열정은 내가 좀 자란후에도 계속 되었다. 이번에는 목장과 어머니학교로. 내 기억이 틀리지 않는다면 아마 내가 중학교에 들어갔을때 부터 엄마는 벌써 어머니학교봉사를 시작 했던것 같다. (지금까지) 지금 생각 해 보면 너무 대단하게 느껴지고 엄마가 어머니 학교를 섬기는 모습을 통해 나에게 무의식적으로 학습된 엄마로서의 모습들이 너무 마음에 들고 감사하지만 그 당시에는 엄마랑 시간을 보내고 싶었던 때 다른것도 아닌 ‘어머니 학교’ 때문에 엄마를 빼앗겨 버린게 불만 이였던적도 꽤 있었다. 물론 지금 내 자신이 엄마가 되어 생각 해 보면 이제는 이해할 수 있고 엄마가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사명에 최선을 다해 신실하게 감당 해 온 그 모습이 자식된 나와 내 동생에게 특히 장래 엄마가 될 큰딸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큰 축복 이 였던게 틀림없지만.. 그 당시 엄마의 부재로 인한 순간순간의 섭섭함을 장래에 우리 딸 하루도 느낄지도 모른다 생각하니 벌써부터 미안한 마음도 들고 또 한편으로는 아이가 내게 온 순간부터 그 아이를 위해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 할 뿐 아이를 책임지고 바른길로 인도하시는 이는 하나님이 시라는 생각 밖에 들지 않는다. 언제나 섬김의 자리에 섰던 우리엄마도 이런 마음이지 않았을까 그리고 하나님께서도 그때 이러한 엄마의 기도를 듣고 계셨고 응답하신게 아닌가 생각이 든다.

돕는베필

어릴적 부터 아빠는 우리남매에게 친구같은 아빠였다. 만화영화, 영화, 어린이잡지, 볼링과 태니스등의 스포츠, 각종 게임과 개그로 우리의 마음을 사로잡았고 우리눈에는 가장 완벽한 엔터테이너였다. 그런 아빠의 권위를 지켜주었던건 언제나 엄마의 몫이였고 (물론 많은 경우 엄마도 함께 동참해 아빠 놀리기 놀이를 하곤 했지만) 정말 중요한 순간 우리집의 가장은 아빠고 아빠가 우리집 대장이라는 개념을 알게 해 준건 엄마였다. 우리가족이 특히나 더 보수적이였던 집안은 아니였지만 저녁시간 아빠가 뭐라도 먼저 한입 드셔야 우리는 먹기 시작 할 수 있었고 어린시절 sleepover를 허락 받는일도 어디가서 놀다와도 되는지에 대한 사소한 결정도 엄마는 항상 “아빠가 허락하시면 엄마도 오케이야”였다. 미국 오기전 멀쩡히 다니던 고등학교 한한기를 남겨두고 자퇴를 선언했을때 사대에 대한 꿈이 컸던만큼 학교라는 곳에 대한 애착도 강하고 학생은 학교에 소속되어있어야 된다는 개념이 아주아주 강한 엄마로서 분명 이해할 수 없었겠지만 아빠의 최종 결정을 따라 주었고, 대학교 한학기를 남겨두고 당시 방사선 사태로 난리 였던 일본으로 선교를 다녀오면 안되겠냐고 묻는 딸에게도 엄마는 내 이야기를 충분히 들어준 후 “아빠가 허락하면 엄마도 오케이야”라며 아빠에게 결정권을 드렸다. 나에대한 아빠의 결정들 속에 분명 썩 내키지 않고, 이해 되지 않았던 결정도 있었을것같다. 그리고 어쩌면 엄마이기 때문에 더 현명히 내릴 수 있었던 결정도 있었겠지만 엄마의 이런 모습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내게 성경적 엄마상이 무엇인지 알게 해 주셨다.

첫째,‘엄마’는 집안의 숨은 리더다 .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하라, 이는 남편이 아내의 머리 됨이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 됨과 같음이니 그가 바로 몸의 구주시니라.” 에베소서5:22-23 하나님 말씀이다. 어렸을때 이 말씀을 처음 접했을 때는 왠지 남녀 차별인것 같아 별로 안좋아했던 기억이 있지만 지금에서야 비로서 이 구절이 무엇을 말하는지 조금은 알 수 있을것 같다.  나의 묵상에서 남자를 여자의 머리로 두신 하나님의 진심은 결국 가정을 축복하고자 하는 마음이 아닐까 싶다. 이 구절에서 나로 하여금 주목하게 하신 하나님의 성품은 공평의 하나님이 아닌 질서의 하나님이셨다. 이땅에도 질서가 있듯 하나님의 나라에도 질서가 있고 그 질서가 지켜질때 하나님은 기뻐하신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가 기뻐하시는 가정을 하나님의 방법으로 축복하신다. 우리엄마는 이 원리를 잘 알고 있었던것 같다. 내가 막상 엄마가 되어보니 작은 하루를 내 팔에 안고있긴 하지만 그리고 또 앞으로도 내가 이 아이를 지켜보겠다고 몸부림 쳐보기도 하겠지만 사실 이 험난한 세상속에서 내가 이 아이의 팔을 잡고 있는 다고 이 아이를 바르고 안전하게 이끌수 있다는 보장이 전혀 없고 할수도 없는 일이다. 오히려 너무 소중한 이 생명을 지켜보고 싶다는 마음에 걱정이나 한가득 늘은것만 같다. 그런데 정말 현명한 엄마라면, 현명한 아내라면 내 아이 하루를 만드시고 모든것을 주관하시는 그 분의 질서를 지킴으로서 하루에게 축복의 통로는 될 수 있는것이다. 돌아보면 지금까지 엄마는 나를 키우면서 얼마나 많은 순종의 시간과 결단을 통해 믿음에 믿음을 더 하고, 하나님을 의지하지만 인간이라 어쩔수 없는 두려움에 눈물을 지나 또 얼마나 많은 연단의 시간을 통한 깍임이 있었을지.. 생각해 보면 생각 해 볼수록 고마움과 미안함과 또 감사함에 눈물이 절로난다. 1인자는 2인자가 지켜주고 존중해 주었을때만  1인자가 될 수 있는것 같다. 2인자가 인정해 주지 않는 1인자는 존재할 수 없고, 아빠의 권위또한 엄마 만이 지켜줄 수 있는 특권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축복의 질서를 지켜내준 엄마는 집안의 숨은 리더이다.

둘째, 부부는 한편이고 또 그래야만 한다는 것이다. 이전엔 몰랐다. 엄마가 “아빠가 오케이면 엄마도 오케이”를 이야기 할때 마다 마음속에서는 ‘그래~ 아무리 엄마가 반대해도 아빠는 내 편이야, 내가 마음만 먹으면 아빠는 무조건 설득할 수 있어’ 생각했었고 쉬원하게 답을 주지 않는 엄마에 비해 언제나 설득이 가능했던 아빠에게 오케이를 듣는 것은 비교적 쉬웠고 원하는 대답을 얻은 후 엄마 앞에서 의기양양한 마음까지 들었었다. 그런데 지금 내가 아이를 낳고 생각해 보니 엄마아빠는 한편 이 였던거다. 짜고 치는 고스톱이나 다름없었던 거다. 아빠는 엄마를 사랑하기 때문에 엄마가 죽어도 싫은 결정을 오케이 하지 않았을것이고, 엄마는 아빠를 존중해주었기 때문에 하나님께 순종하는 마음으로 순종 했을것이다. 내가 기억하는한 난 항상 아빠를 통해 결정에 대한 대답만 들었지 그 중간에 엄마아빠간에 대화는 실수로도 엿들어 본적이 없다. 하지만 확신할 수 있는건 오히려 어긋난 의견 속에서 엄마아빠는 더 하나되지 않았을까 생각이 든다. 그리고 우리 부부도 하루에 대한 의견이 갈릴때에 더욱더 하나 되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믿음이 있다.

가족을 하나 되게 하는 사람

어릴적 부터 엄마는 우리집 가족 뿐만 아닌 할머니 할아버지 아빠 쪽 식구들에게도 항상 최선을 다했던 기억이 있다. 시시때때로 안부전화를 드리고, 매주말 마다 친가집 식구들끼리 할머니네 모여서 밤 늦게까지 놀다오고, 명절 기념일때 정성스레 요리하고, 미국에 와서는 작은아빠네 두 아들 모두 유학하는 동안 우리집에서 생활했었는데 완벽할수는 없었겠지만 언제나 아이들이 잘 지내는지 혹시 뭐가 먹고싶은데 못먹고 있지는 않은지 신경쓰며 정성을 다했다 . 내 기억속에 엄마가 친가집 식구들에 대한 흉을 보거나 불만을 표하거나 속상함을 내비췄던 적은 정말 없었다. 그래서 나도 당연히 결혼을 하게 되면 그냥 저절로 식구가 되고 가족이 되었으니 섭섭한것도 좀 불편한것도 그냥 넘어가고 그렇게 자연스럽게 하나가 되어가는거구나 생각이 되었다. 그런데 막상 결혼을 해보니 엄마가 우리를 키워오면서 엄마의 시댁식구들에게 베푼 섬김과 사랑이 그냥 식구가 되었기 때문에라는 이유만으로 그냥 그렇게 노력없이 이루어 지는것이 아닌것을 알게 되었다. (오해는마세요 저희 시댁 식구들도 정말 좋고 감사한 분들 이 십니다히히) 아무리 가족이 되었어도 친해지기 위해서는 그만큼 마음을 쓰고 또 마음에서 그치지 않고 어떤 방법이든 행동으로 옮겨야 한다는걸 알게되었고 또 나와는 어떻게 보면 어려운 관계일 수 있는 남편의 부모님과 가족들을 정말로 사랑하기 위해서는 모든 사랑의 조건인 나를 낮추고 남은 높이고, 이해되지 않더라도 인정하고 사랑하기로 마음먹는 희생이 따른다는걸 점차 깨닫게 되었다. 너무 엄마 자랑같아서 쓸까말까 고민을 많이 했지만 엄마가 아빠의 식구들에게 지금까지 보여준 사랑과 희생은 앞서 이야기 했던 엄마의 quality들 중에서도 나의 현재 결혼생활에 있어 가장 많이 도움이 되고 감사한 부분이다.  덕분에 나는 보다 편안하게 시댁식구들을 가족으로 받아드릴 수 있었고 살아오며 간접적으로라도 내게 가족의 하나됨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value라는것을 알게 해준 엄마에게 너무나도 고맙다.

또 한명의 ‘엄마’ 롤모델: 잠언의 현숙한 여인

자라면서 봐온 엄마의 모습 외에도 내게 엄마/아내를 통틀어 한 여자로서 강한 인상을 준 롤모델이 한분 더 계시다. 바로 그 유명한 잠언31장 후반부에 나오는 현명한 여인인데 내 자신에게 스스로 remind하는 차원에서 기록 해 보고싶다.

10 누가 현숙한 여인을 찾아 얻겠느냐 그의 값은 진주보다 더 하니라 11 그런자의 남편의 마음은 그를 믿나니 산업이 핍절하지 아니하겠으며 12 그런 자는 살아 있는 동안에 그의 남편에게 선을 행하고 악을 행하지 아니하느니라 13 그는 양털과 삼을 구하여 부지런히 손으로 일하며 14 상인의 배와 같아서 먼 데서 양식을 가져 오며 15 밤이 새기 전에 일어나서 자기 집안 사람들에게 음식을 나누어 주며 여종들에게 일을 정하여 맡기며 16 밭을 살펴 보고 사며 자기의 손으로 번 것을 가지고 포도원을 일구며 17 힘 있게 허리를 묶으며 자기의 팔을 강하게 하며 18 자기의 장사가 잘 되는 줄을 깨닫고 밤에 듣불을 끄지 아니하며 19 손으로 솜뭉치를 들고 손가락으로 가락을 잡으며 20 그는 곤고한 자에게 손을 펴며 궁핍한 자를 위하여 손을 내밀며 21 자기 집 사람들은 다 홍색 옷을 입었으므로 눈이 와도 그는 자기 집 사람들을 위하여 염려하지 아니하며 22 그는 자기를 위하여 아름다운 이불을 지으며 세마포의 자색 옷을 입으며 23 그의 남편은 그 땅의 장로들과 함께 성문에 앉으며 사람들의 인정을 받으며 24 그는 베로 옷을 지어 팔며 띠를 만들어 상인들에게 맡기며 25 능력과 존귀로 옷을 삼고 후일을 웃으며 26 입을 열어 지혜를 베풀며 그의 혀로 인애의 법을 말하며 27 자기의 집안 일을 보살피고 게을리 얻은 양식을 먹지 아니하나니 28 그의 자식들은 일어나 감사하며 그의 남편은 칭찬하기를 29 덕행 있는 여자가 많으나 그대는 모든 여자보다 뛰어나다 하느니라 30 고운것도 거짓되고 아름다운 것도 헛되나 오직 여호와를 경외하는 여자는 칭찬을 받을 것이라 31 그 손의 열매가 그에게로 돌아갈 것이요 그 행한 일로 말미암아 성문에서 칭찬을 받으리라.    잠언31:10-31

이 구절들이 마음에 정말로 와 닿기 시작한 건 결혼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나의 인생 말씀을 받았다 느꼈었던 시기였다. 앞으로 내가 안고갈 사명이라 생각하는 말씀은 이사야서 61:1-3 이긴 하지만 비슷한 시기에 이 말씀도 크게 와 닿았고 그러면서 나의 짧은 추측으로는 나의 사명과 결혼이랑 뭔가 연관성이 있지 않을까 생각을 했었다. 그래서 사실 나의 꿈은 결혼 상담이라 생각했던것도 있지만 그길이 맞는지 아니면 아닐지 아직은 잘 모르겠다 아니 점점 더 모르겠다(ㅋㅋ ) 난 그저 이 순간 배울 수 있는 것들과 할 수 있는 것들을 천천히 배워가며 해볼뿐. 내 마음에 소원함을 허락 하셨으니 이루어 가실거라 작은 믿음을 앉고 걸어가볼뿐. 어쨌든 지금까지의 결론은 사명보다도 현제 내 삶을 어떻게 살아가고 있느냐가 훨씬 중요한거 같다. 그리고 이 부분에 있어 하루도 빠짐없이 나의 약함과 마주하기 때문에 때론 낙망될 때도 있지만 약할때 강함되시는 그 분을 의지하며 다시 일어나 보는게 나의 일상의 반복이다. 언젠간 안넘어지고 몇발자국 더 걷는날도 있겠지..

다시 돌아가서! 현숙한 여인을 통해 내가 소망하게 된 엄마됨의 캐릭터는:

첫째, 여호와를 경외함. 가장 와닿는 부분은 30절이다. 고운것도 거짓되고 아름다운것도 헛되나 오직 여호와를 경외하는 여자는 칭찬을 받을 것이라. 여자이기 때문에 겉보기에 곱고 아름다운 것들에 자연스레 눈이가고 특히 아기를 낳고나니 뭔가 더 아줌마 같아 보이기 싫고 과하지 않으면서도 정돈되어 보이고 싶고 아기 낳고도 살안쩠네 예뻐졌네 이런 소리가 듣고 싶어지고 그랬다. 그런데 성경이 딱 찝어 얘기하더라 다 헛되다고. 적어도 이제 엄마가 되었으니 겉모습에 신경쓰기 보다는 아이를 위해서라도 뚜렷한 가치관이 있어야 한다 생각이 들기 시작했고 그 기준이 여호와를 경외함에서 부터 시작되고 싶다 소망한다. 왜냐하면 우리가족을 축복하고자 하시는 하나님께서 보고 계시고 또 하루가 보고 있으니까. 이 아이는 좋던싫던 나를 통해 습득할 부분이 있을테니까. 하나님을 의식하고 살아가는 삶이고 싶다.

둘째, 부지런함. 이건 내게 정말 어려운 부분이다. 일단 이 현숙한 여인은 엄청난 아침형 인간에 집안일을 완벽하게 책임져내는 부지런한 사람인거 같은데 일단 난 아침잠이 너무 달고도 많다. 지인 중에 아이 둘 엄마인데 아이들도 아직 어리고, 그런데도 하루도 거르지않고 새벽기도를 간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너무너무 도전을 받았다. 모두들 그래야 한다는건 아니지만 내게는 정말 닮고 싶은 부분이고 엄마로서 아침마다 하나님 앞에 나아가 자신을 낮추고 뜻을 여쭙고 중보자로 선다는 얼마나 귀한지.. 내 눈에도 이렇게 귀한데 하나님 눈에는 얼마나 예쁠지. 새벽기도 뿐만아닌 부지런함은 삶을 두고 도전하고 싶은 덕목이다.

세번째, 양식을 공급함. 엄마로서 이건 꼭 하고 싶다. 말씀에 나오는 여인처럼 밤잠을 조금 안자더라도 남편과 아이의 육의 강건함을 책임지고 싶다. 뭐 말은 이렇게 하지만 사실 잠이 밀려오면 이유식 한끼 만드는것도 귀찮을때도 많고 하루종일 육아하고 남편 저녁만드는건 더 귀찮을때도 많다. (남편미안..) 하지만 말씀을 읽으면 읽을수록 공급함에 대한 부담감이 든다. 특히 “남편의 마음을 그를 믿나니” “자식들은 일어나 감사하며 남편이 칭찬하기를 그대는 모든 여자보다 뛰어나다” 이런 구절들은 나를 아내로서 엄마로서 전진하게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렇게 내 역활을 충실히 다 해냈을때 남편과 아이가 내가 공급한 음식들을 맛있게 먹어주고 칭찬해 주면 정말 날아갈것 같이 좋다. 만약 하나님께서 우리 가족에게 더 많은 아이들을 보내 주셔서 아이가 둘이되고 셋이되고 넷이 될지라도 한결같이 영육의 양식을 공급할 줄 아는 엄마가 될 수 있기를 기도 해 본다.

현숙한 여인에 대해 쓰면서 그 여인의 여호와 앞에서의 행실이 가족들로 하여금 얼마나 축복에 이르게 하는지 함께 적혀진 이 성경 구절을 볼때마다 막중한 책임감을 느낀다. 하나님께서 주신 엄마라는 역활이 얼마나 소중하고 중요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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