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 최고의 순간 – 결혼식

영화 Hangover에 나온것처럼 일단 비자수속 등을 위해 조촐한 결혼식을 한번 치뤘지만 우리의 진정한 결혼식은 11월 8일에 우리소속 교회 새누리교회에서 예정되어 있었다. 보통 6개월은 준비한다는 정말 손발많이가는 미국결혼식, 분명 준비과정은 만만치 않았다.

1. 결혼식 준비과정

일단 가장 큰 문제는 나의 상태였다. 직장은 없고 운전은 못하고 마음은 위축될대로 되어 있었다. 남자가 수컷이 남자노릇을 못하면 참 초라해지는건 순식간인거 같다. 자질구레한 것들에 마음이 안가는데 해야 하니 그게 만만치않았다. 신혼살림보러 가구점 가기, 집안 정리, 소소한 결혼식 준비가 아주 썩 내키는 상황이 아니었다. 거기다가 미국결혼식은 한국결혼식과는 달리 정말정말 일이 많았다. 예식장 자리배치, 초대손님 정하기, 음식정하기, 장식하나하나 정하기, 식순 정하기, 음악 정하기, 식순의 다양한 프로그램 등등등.

결혼식 준비는 우리가 같이해본 최초의 상당한양의 ‘일’이었다. 시작한지 얼마 안되서 우리가 얼마나 일하는 스타일이 다른지 몸소, 뼈저리게 알 수 있었다. 모든게 계획이 있어야 하고 일에 있어서 정리된 순서가 중요한 나는 엑셀을 만들고 to-do list를 만들고 자 우리가 빨리 식장장식을 정하고 테이블을 정하고 이렇게 저렇게 해야 다음일을 할 수 있고 이러면서 민경이를 보채기 시작했지만, 민경이는 즉흥적이고 느낌으로 결정하고 순간을 즐기고 집중하는 스타일이어서 이런 방식을 많이 버거워 했다. 나는 나대로 빨리빨리 중요한 결정이 안내려져서 힘들고, 민경이는 내가 보채서 힘들고, 농담처럼 나는 민경이한테 “그분이 오셔야 일한다.” 고 놀리기도 하고 그렇게 하나씩 힘겹게 준비했다. (근데 내 아내지만 삘받으면 일 진짜 잘한다. 그분이 오셔야….”

말로만 듣던 양가 조율도 간단한 일은 아니였다. 너무나 좋은 부모님들이시고, 아무것도 하지 말자고 했지만 돈이 들어가고 기대치들이 있으니 신경쓸게 꽤 많았다. 결혼식 비용은 누가 내고 축의금은 어떻게하고, 혼수는 어떻게하고 신랑 양복은 한벌해야되고 뭐 이런것들이 내가 다 결정할 수 있는게 아니더라. 이 과정을 참을성있게 지혜롭게 해주신 부모님과 아내에게 많이 감사하지만 결코 간단치는 않았다. 하나의 에피소드만 소개하자면, 우리는 예배식으로 결혼식을 다 준비했고 피로연때 양가 아버님의 편지, 대표 친구의 편지, 서로에게 읽는 편지, 부모님께 깜짝 선물 비디오 등등을 준비했었다. 그러나 내가 미처 헤아리지 못했던 것은 한국적인 결혼문화만 본 우리 아버지께는 피로연에서 한마디 하고 결혼식중에 한마디도 안한다는건 받아들이기 힘든 일이었다는 것이다. 결혼식 전날 미국에 도착해서 이 이야기를 들은 아버지는 바로 이렇게 할거면 자기는 아무이야기 안하겠다고 단단히 선언하셨고 아무런 말도 통하지 않았다. 이때 장인어른과 주례보시는 손경일 목사님이 모두 이해해주시고 적극 나서서 아버지께 꼭 결혼식 중간에 말씀 전해주시라고 적극 권고해서 결국 아버지도 마지못해 수락하셨고 다시금 평화가 찾아왔다. 이 평화가 어떤 결과를 불러올지 결혼식 하기전에 나는 미처 몰랐었지만…

그래도 참 재밌었다. 마침 우리둘다 일도 안하고 특별히 할일도 없어서 한번 시애틀 신혼 자동차 여행 9일정도 다녀온것 빼고는 결혼식 준비에 매진했다. 장모님과 장모님 언니 (장모이모님?) 도 엄청 많이 도와주셨다. 하나의 축제를 준비하면서 부부가 한마음으로 일하고 하니 은혜도 많이 됐다. 그리고 미국결혼식은 미국 특유의 귀여움과 재미가 녹아 있어서 그런것도 좋았다. 같이 춤도 배워보고, 장식 하나하나를 만들어보고, 하객 선물도 하나씩 준비하고 등등. 그런거 준비과정에서 보니 우리 아내는 정말 반은 미국사람이더라. 그게 보기 좋았고 고마웠다. 팍팍했던 내 삶에 이런 위트와 작은 낭만들이 찾아오는 느낌이랄까.

2. 결혼식 순간들

정말 정말 감사하고 눈물이 많이 난 결혼식이었다.

1. 아버지의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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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 내가 웃고 있는게 아니다…

난 아버지 편지를 미리 읽거나 검열하지(?) 않았는데 그게 큰 판단착오였다. 아버지는 신부측 가족 손님이 대부분인 결혼식에서, 예배식 결혼식 중간에 청중을 앞도하는 엄청난 presence로 장장에 걸친 아들자랑을 시작하셨다. “오늘아침에 고니들이 멋지게 나는걸 보니 정말 특별한 축복이 느껴집니다. 우리 아들로 말씀드릴거 같으면 어렸을때 부터 공부를 이렇게 잘했고 이런 저런 일도 다 해내며 엄청나게 부모님을 행복하게 해줬는데 정말 우리아들이 최곱니다. ~~~.” 이런 논지였던 것으로 기억된다. 적어도 내 머릿속에는 이렇게 기억이 됐다. 손발에 진땀이 낫다. 할수만 있다면 정지 버튼을 누르고 싶었다.

그러나 그게 우리 아버진걸. 실제로 결혼식에 온 많은 사람들이 나중에 우리 아버지의 연설(?)이 가장 재밌게 기억에 남았다고 했다. 우리 아버지는 정말 못말리게 귀여우시다. (?) 한국에서 나라발전을 위해 열심히 봉사해야할 아들이 공무원 때려치고 미국에서 백수로 돈한푼없이 결혼하는데 아버지로선 엄청 자제하면서도 이런 이야기라도 하셨어야하리라. “여러분, 여러분이 잘 모르겠지만 우리아들 사실 대단한 아들입니다. 제게는 둘도 없는 아들이고 자랑입니다. “이런이야기라도.

2. 형의 편지

사실 날 가장 많이 울린건 형의 편지다. 형은 정말 대단하다. 말한마디 한마디에 힘이 있다. 형은 평소에 글을 쓰거나 말을 많이하지 않는다. 형이 이렇게 자신의 감정을 잘 표현하고 청중과 상대방을 아우르면서 이야기할 수 있는지 생각하고 표현할 수 있는지 미쳐 몰랐다.

“여러분, 제 동생은 참 잘났지만 전 평범했어요. 저도 그리 나쁜편은 아니었는데 제가 반에서 10등하면 쟤는 전교에서 1등해서 저를 기죽였고 저는 집에 성적표 못내밀고 그런식이었죠. 자라면서 그게 그리 쉬웠던건 아니에요. 근데 제가 많이 고마웠던건 저녀석은 항상 저의 좋은점만 보고 칭찬을 해주는 거에요. 친구들한테 가서도 항상 “우리형은 게임을 엄청잘해.” “우리형은 승부사야.” 뭐 이런말 해가며 칭찬할거 별로 없는 저의 작은모습 하나하나를 칭찬해줬어요. 산이가 좀 오버해서 칭찬 잘하죠? 그게 저처럼 칭찬할거 없는 사람 띄워줘가며 배운 능력이에요. 사랑한다 동생. 행복하게 잘살아. ”

난 정말 최악의 동생이다 어떤 면으로 봐도. 형이 나때문에 당한 피해를 생각하면 지금도 세상에서 가장 미안한 사람이다 형은. 형이 나한테 이렇게 이야기해주니 정말 펑펑 눈물이 났다. 글쓰는 지금도 눈물이 난다. 형은 내게 그런 사람이다.

3. 대현이의 편지

대현이는 어쩌다가 이동네까지 와서 소와 말처럼 일했다. 정말 엄청 부려먹었다. 그리고 그 와중에 편지까지 하나 써서 읽으라는 숙제까지 줬다. “니가 하라면 내가 그냥 깽 하고 해야지 별수 있겄냐.” 이렇게 쿨하게 한마디 하고 대현이는 당일치기 편지를 읽어줬다.

대현이가 해준말중 가장 기억에 남는건 그거였다. 항상 노력하는 친구. 그렇게 노력해서 자기가 사는 삶의 모습까지 많이 바꿔버린 친구. “산이를 아시는분은 아시지만 참 열심히 살아요. 옛날부터 그랬어요. 마치 굶어죽다 살아난 사람처럼 뭐 그렇게 하고싶은게 많고 열심히 하는지 친구들중에 이해한 사람은 아무도 없죠. 그래도 보기 좋았어요. 그리고 지금의 산이를 보니 정말 많이 바뀐게 느껴져요. 삶의 가치와 방향 까지도. 노력으로 삶 마저 바꾼 친구. 제 친구 산이는 저에겐 그런 애에요.” 마치 지나온 내 노력과 삶을 내 친구한테 다 인정받는 느낌이었다. 그게 그렇게 고맙고 뿌듯할수가 없더라.

4. 범준이형의 편지

스타트업 CEO로서 눈코뜰새 없이 바쁜 삶을 살고 있던 범준이형은 뉴욕에서 비행기타고 주말에 날아와서 결혼식을 축하해줬다. 형이 해준 말은 성경의 한 이야기였다. 다윗이 언약궤를 돌려 받고 체면 위신 하나 생각하지 않고 언약궤 앞에서 옷다벗고 춤춘 이야기를 해주면서 그렇게 기뻐하고 즐거워하라고 이야기해줬다. 나중에 더 알게된거지만 형은 나보다 훨씬 더 즐길 줄 알는 사람이다. 그래 형 말듣고 맘 더 놓고 즐길 수 있었다.

5. 장인 어른의 편지

아버님은 얼마나 딸을 떠나보내는게 힘드셨는지 말씀해 주셨다. 많이 놀라고 그래서 더 감사했다. 보통 장인들은 딸 결혼시킬때 엄청 질투하고 힘들어하고 사위에게도 힘든 시간(Hard time) 준다는데 왠걸 우리 장인어른은 거의 처음본 순간부터 “우리 산이, 산이산이산이,” 이러면서 엄청 친자식처럼 잘해주셨다. 한번도 눈치주거나 그러신적도 없고 항상 이뻐해주시고 기뻐해주시고 높여주셨다. 그래서 그렇게 힘들어 하셨다는걸 전혀 눈치 못챘다. 그리고 여기서 다 표현하기 어려울정도로 수많은 순간에서 자존심 굽히고 나와 우리 가족을 섬겨주셨다. 아버님의 말씀 한마디 한마디에서 딸을 시집보내는 성숙한 아버지의 모습을 본것 같다.

6. 민경이의 편지

민경이를 청년시절부터 본 손경일 목사님 (우리 주례를 봐주신)께서 민경이를 설명하면서 해준 표현은 “정말 순종적인 (submissive) 아이” 라는 거였다. 사귀고 결혼하는 과정에서 느낄 수 있었다. 그녀가 얼마나 나를 세워주고 나를 위해주고 내게 순종해 주는지. 정말 신실한 사람이다. 정말 심지가 굳고 보수적이고 단순한 사람이다. 그녀는 내게 순종과 신실함을 맹세했다. 그녀의 진심이 느껴졌다. Yes, I was and am the luckiest man.

“오빠를 따를게. 힘든시간도 있고 우리 싸우고 그런시간도 있겠지만 그래도 오빠를 따를게. 오빠를 섬길게. 우리 같이 하나님 따르면서 잘해보자. 너무 고마워요 남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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