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작스러운 변화에 달려와준 그녀. 그리고 백수생활

내 삶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 평생에 걸쳐 사랑할 사람과 갑작스런 변화를 맞이하고 위기에 대처했던 두달간의 이야기 – 남자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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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초가 되었을때 내 신상에 급격한 변화가 생겼다. 8월에 알게된 청천벽력같은 H-1 deny소식이 결국 해결책을 찾지 못하고 결국 나는 라인을 나오게 됐다. 상당히 갑작스런 결정이었고 한국에서 결혼을 하고 미국에서 다시 한다는 결혼, LA로 신혼집을 한다는 계획도 다 틀어질 수 밖에 없었다. 사실 일일이 다 이야기할 수는 없지만 나로서는 정말 힘든 순간이었다. 살면서 가끔 정말 찾아오는 너무 막막한 순간. 혼자라고 느껴지고 갈곳이 없다고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미국에 가족은 없고, 태평양 넘어에서 고생하고 있는 가족에게는 좋은 소식만 전하고 싶은게 내 마음이었고. 공원에서 하나님께 조금 하소연 하고 잠시 마음을 차린 후에 예비 장인어른과 예비 각시에게 차례로 전화해서 담담히 상황을 이야기했다. 그리고 그날밤 거짓말처럼 그녀가 내려왔다. 직장 갔다가 퇴근하고 나서 6시간 넘게 운전하고 새벽 2시에 우렁각시가 나타나 줬다. 아 그래…이제 혼자가 아니구나. 그렇게 나는 하루만에 모든 결정과 변화를 다 떠앉고 짐 싸서 차에 싣고 LA를 떠났다. 야반도주랑 전쟁피난 느낌이랄까 하하. LA – 정말 intense한 7개월여의 기간 좋은 추억도 많았지만 나와 가장 맞는 곳은 아니라는 느낌이었다. 다시오게 될지 we will see.

한국가느냐 미국에 남느냐 고민의 순간, 한국으로 옮기는게 맞다면 무언가라도 기회를 달라고 열어달라고 기도했었는데 기도에 특별한 답은 나오지 않고 그냥 미국에 있는게 더 맞다는 생각이 계속 들었다. 그냥 무작정 집에 가고 싶은 순간도 많았고 졸업하고 뭐 하고 있나 어쩌다가 비자 없이 거의 신분 없이 미국에서 뭐하는건가 이런 무력감이나 회의감도 한번씩 찾아왔지만 그럴때마나 항상 웃으며 괜찮다며 받아주고 사랑해주고 안아주는 처가집 덕분에 잘 이겨낼 수 있었다. 정말 장모님 장인어른은 한결같이 날 섬겨주셨다. 내가 좋아하는 음식, 내가 편안해 할 환경, 힘이되는 말, 이런 세심한 배려는 물론 집 구할 때 까지 집에 묵게 해 주셨다. 그래서 우리는 당초 예정했던 미국 결혼을 빨리 일단 식만올리고 신고한 후에 제대로 된 결혼식은 11월로 하고 한국 결혼은 영주권 나온 이후로 하자고 계획을 변경했다. (그리고 미국 밖으로 당분간 못나가게 되서 신혼여행도 취소했다.) 장인 장모님이 옆에서 영주권 신청부터 새 집 구하기, 살림살리 구하기 등등 이 모든 과정을 챙겨주셨다. 계속 받기만 했는데 이 기간중에는 특히나 더 어린애처럼 아주 intense하게 100% 받기만 했다 평생 못잊을거다.

이 기간은 나로서는 정말 무기력하고 정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기간이었다. 일단 운전면허가 expire됐는데 영주권 나오기 전까진 신분이 없어서 연장할 수가 없었다. 일할 수 있는 신분도 없었다. 완전히 애기가 됐고 장애인이 됐다. 민경이는 계속 일을 나갔고 나는 장모님 차를 얻어타고 필요할 때 운동도 가고 교회도 가고 IKEA고 가고 장보러도 가고 하는 주부 생활을 하게 됐다. 2013년말에 헤맬때도 주부 체험 조금 해봤지만 이번에 완전 제대로 해봤다. 교회 오전반에 성경공부도 등록해서 아주머니 10~20 여명과 매주 모여서 남편이야기, 자식이야기, 시부모님 이야기로 주로 요약되는 사람사는 이야기(?) 참 많이 듣기도 했다. 하루가 얼마나 그냥 슉 갈 수 있는지, 아침에 일어나서 운동좀 하고 뭐좀 먹고 누구 만나거나 뭐 하나 하면 금방 저녁거리 준비하러 장봐야 하고 저녁거들고 먹고 치우면 하루가 슝~. 만약 여기다가 집 치우기와 애까지 동반된다면?? 휴…주부는 정말 쉬운게 아니에요.

돌이켜보면 참 감사한게 많았다. 실리콘밸리도 돌아오자 너무 편안하고 포근했다. 내가 좋아하고 의지하는 사람들이 다 옆에 있었고, 새로 찾은 민경이와의 보금자리도 너무 좋았다. 둘이 막 이제 살아본다고 소꿉장난하듯이 같이 있는것도 정말 좋았다. 운좋게 찾은 산호세의 작은 우리만의 공간을 꾸미는 것도, 결혼식을 준비하고 여행을 준비하고 하는 것도. 하지만 일 안하고 발전 없이 하루하루가 지나는 것은 나로선 참 힘든 일이었다. 이 카펫을 살지 저 카펫을 살지, 이 가구를 고를지 저 색을 할지 이런 것들로 머리가 복잡해지기 시작하자 어제와 다를 것 없는 오늘이, 마라톤 뛰고 런닝머신에서 스퍼트 해야 되는데 잠시 기계 밖으로 나와서 그냥 멍하니 있는 내 꼴이 영 별로였다. 블로그에 글이라고 써보고 싶었지만 그마저도 잘 되지 않았다. 내 꼴이 너무 황당하고 한심하고 무기력할 때가 있어서 누구랑 연락해서 만나고, 나의 상황을 설명하고 그런 것도 그다지 내키지 않는 일이었다. 너무 감사했던건 그런 나를 주위에서 더 잘 이해해주고 그냥 받아주고 안아주고 많이 묻지 않고 잘 됐다고 더 잘 될거라고 해줬던거. 미국 이민사회다 보니까 비자나 신분문제 이런건 상투적인 일이었고 교회에서는 오히려 내가 자주 나온다고 너무 좋아해줬다. 그래저래 9월과 10월이 가고 나의 major task는 결혼준비와 여행준비 부모님과 함께하는 시간 준비가 되어가고 있었다.

4 thoughts on “갑작스러운 변화에 달려와준 그녀. 그리고 백수생활

  1. 미국에 있는 쏭민이 넘 그리운 쏭민 친구에요 ~~> <
    결혼 덕에 한국에 있는 동안 입덧때문에 힘들어하던데 요새는 어떻게 지내는 지 많이 괜찮은지 넘넘 궁금해요~ 최근소식도 전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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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진!나두너무그립구보고싶당ㅠ별일없지?ㅎㅎ 입덧은왔다갔다해~뭐할수없지잘견뎌보겠어ㅠㅠㅋㅋ요즘은거의집에서지내는데그러게시간여유있을때업데이트도해보고해야겠다ㅎㅎ 너무보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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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으히히 난줄 어떻게알았옹 ㅋㅋㅋㅋ
        웅 업데이트해줘! 넘 궁금해 사진도 많이올려주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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